자전거 달렸다는 제목을 보고 여유 많네 하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퇴근하신 마눌님 강요로 집에서 입고 있는 옷 그대로 자전거를 끌고
양재천을 나간 일이랍니다.
비는 왔겠다, 아마도 물이 넘쳐 있을 거라는 예상을
재 뿌리는 말로 듣고, 흥!
마눌님은 복장도 다 갖추시고
지난 번 내가 한 걸 따라하시겠다고 아이폰에 아이팟 노래 연결해서 이어폰으로 꽂아 들으며
룰루랄라 양재천으로 들어섰습니다.
나는 따라 나섰고
뭐, 비는 잔뜩 왔고
구름은 낮게 덮여 있고
가시는 (바퀴)-(바퀴)마다 물이 잔뜩 튀어
등에는 벌써 진흙물이 배었습니다.
거 봐, 내 말이 맞지...
이럴 때는 '의기양양'이 맞는 표현이긴 한데,
조금만 더 티를 내면 즉각 보복을 당할 수 있습니다.
그 대신 약간씩 약을 올리며 흉을 봅니다.
이것도 충분히 조심해야 합니다.
어쨌든 자전거 타기 싫어서 그런 건 아니야, 정숙 씨.
양재대로 아랫편의 천변은 공연장처럼 꾸며진 시설이 있는데, 그 앞으로는 물이 아직 안 빠졌습니다.
물살은 빠르고 괜히 기분은 싱숭생숭합니다.
왜냐구?
아내에게 몇 번은 얘기해 주었지만 처음인 척
장마 때 소 떠내려가는 걸 본 얘기며,
괜히 비가 좋아... 하는 얘기며,
다시 해 줍니다.
물론 어린 시절 얘기이지요.
누군가에게 장관은 다른 누군가에게는 참상이 될 수도 있는 건 분명한데,
아마도 내 어린 시절에는 비와 관련한 좋은 사연이 있었던 겐가 봅니다.
기억이 나지는 않습니다.
한강물 범람한 것 좀 보려 했지만,
다시 비가 오고
더는 자전거를 탈 수 없게 길이 막혔고
아이 학원 끝날 시간이 되어 데리러 가야 해서
돌아 왔습니다.
물과 관련한 에피소드 하나 올려 놓지요.
대학 1학년 때 전남 곡성으로 농활을 갔습니다.
그때 농활은 죽어라고 하는 주간 노동과 동네 주민들과 함께 하는 분임 활동, 그리고 졸면서 하는 야간 학습으로
활동이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하여간 새벽 6시에서 밤 2시까지 세 끼 혼합식에 된장국으로 13일을 버텨야 했던 생고생 중 생고생이었습니다.
그래도 보람도 있고, 의미도 있고, 몸과 마음이 다 깨끗해지는 기회였더랬습니다.
나는 청소년반을 담당했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공부도 하고, 놀기도 하고.... 그게 다 주간 노동이 끝난 다음에나 하는 것이었지만....
농활 끝나기 전전날, 청소년반을 맡은 몇몇이 아이들 댓 명과 인근 보성강으로 놀러 나갔습니다.
도시락...이랄 건 없고 귀하신 환타 모시고
빵과 과일을 준비해서 갔습니다.
섬진강 지류인 보성강(보성천)은 당시에 하천변 정비 공사가 한창이었습니다.(아마도 나중에 만들어진 주암댐 때문이었겠지요.) 어쨌든 그러한 까닭에 강기슭은 준설 흔적도 있고 콘크리트로 제방 보강을 해 놓은 것이 보였습니다.
물놀이 시간.
농활이 놀러다니는 일이 아니었던 까닭에 수영복이 있을 리 없고
이냥저냥으로 어쨌든 신나게 물놀이를 했습니다.
수영이랄 건 없었지만, 뭐 허리밖에 안 되는 물에서 힘들면
발을 내딛고 다시 헤엄을 치지... 하며
별 두려움 없이 신나게 자유형영을 시도했는데,
내딛은 발이 바닥에 닿지 않았습니다.
까짓 것.
더 내려가서 힘차게 내딛고 올라오면 되는 일.. 하며
약간의 두려움만으로 물속으로 내려가는데,
바닥은 꺼져 있는지 닿지 않았습니다.
그때 이곳이 준설 중이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내가 딱 20초 수영을 할 수 있다는 것도 깨달았습니다.
허우적대면 죽는다는 것도 깨달았고
더 내려갔다가는 올라오기 전에 숨이 차 견디지 못할 것도 깨달았습니다.
하지만 그 순간 인생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가거나 하는 일은 없었습니다.
그저 있는 힘을 다해 물 위로 올라와야겠다는 생각만 들었고
그러다 보니, 일단 물밖으로 머리를 내밀 수 있었습니다.
경험적으로 숨이 차고 물에 가라앉을 것 같으면
몸을 뒤집어 배영 자세로 고개를 뒤로 젖히면 물에 적당히 뜬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몸을 뒤집고 마음을 가다듬었습니다.
물길은 서서히 흐르고
나도 물 따라 흘러가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아, 살았구나.
고개를 약간 돌려 보니 강가에서는 꽤 떨어져 와 있고
아이들과 선배, 동기들은 즐겁게(라고 생각되었는데) 놀고 있었습니다.
나 없어도 세상이 잘 돌아갈 것만 같았습니다.
그래서
가까스로 가장자리까지 헤엄칠 수 있었습니다.
죽을 뻔한 얘기였다는 거지요.
에필로그..... ㅋ
그 이틀 후
동기들과 전국을 돌며 그 지역 동기들의 주머니를 털기 시작했습니다.
ㅋㅋ
보너스....
마눌님 뒷모습입니다.
휴대폰으로 찍은 거라 제대로 나올 리가 없습니다.
게다가 자전거를 타면서 찍었기에 초점도 맞지 않습니다.
이렇게 변명을 해 놓고,
여러분은 눈썰미가 있으십니다.
복장을 다 갖추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ㅋㅋ
(2011.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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