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글은 2005년 8월 14일에 리테두넷(litedu.net)에 올린 글입니다. 플랫폼 변경으로 이곳으로 옮겨 둡니다.
벼르고 벼르고 벼르면서도 계속 그러고만 있었는데, 반디앤루니스에 들렀다가 반짝반짝 눈에 띈 김에 사고 말았습니다. Robert Sabuda라는 아주 뛰어난 팝업북 창작가에 의해 다시 태어난 Lewis Carroll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Allice's Advantures in Wonderland)'.
책도 읽었고, 영화도 봤고, 애니메이션으로도 봤지만, 팝업북은 느낌이 또 다르고 참 오묘하기까지 합니다. 책장을 열 때마다 튀어나오고 솟아오르고 펼쳐지고 움직이는 그림들이 상상을 제한할 것 같은데, 오히려 풍부해지는 느낌이 강합니다.
물론 잘 만들어야 그런 평가를 받을 수 있겠지요? 그런데 여태 십여 종의 팝업북들을 보았지만, 이 책은 참 잘 만들어졌습니다. 그러니 원작을 새롭게 해석해 냈다고 할 만도 하겠습니다.
가격이 만만치 않아서 딸 아이 선물이라는 명목으로 사 들고 왔는데, 밤이 되자마자 둘째 아이가 읽어달라고 합니다. "너 영어 아니?"(물론 적절히 회피하려는 전략이지요. 둘째 아이한테 걸리면 족히 한 시간은 붙잡혀서 같이 책을 읽어야 합니다.)
이쯤이면 물러서 주면 좋으련만 그러니까 읽어달라는 표정으로 바짝 붙어 있습니다. 하는 수 없이 동화 구연을 하듯 그림과 함께 읽어 줍니다.
둘째 아이에게 밤에 책 읽어주는 것은, 부끄럽게도 제가 먼저 생각해 낸 것은 아닙니다. 아이가 그렇게 만든 것이지요. 둘째 아이 정윤이는 글 읽기는 아직 서툴기만 한데, 책 읽기는 무척 좋아합니다. 그래서 일찍부터 책을 읽기(보기) 시작했습니다.
읽기에 관해서는 나도 할 말은 있소... 하는 편이지만, 딸 아이의 문제가 되고 나니 대책이 잘 서지 않습니다. 어떻게 해야 좋은 걸까, 어떤 방식으로 읽어 줄까, 뭐 이런 생각 끝에 역시 그래서 전문가가 필요한 거야 하고 살짝 물러섭니다.
그래서 특별한 대책은 가지고 있지 못하지만, 내게는 만병통치약이 있잖습니까. 다섯 살 둘째 아이에게 좋기로야 문학 작품이 제일이지요. 문학이 대수겠습니까? 신나게 상상하고 꿈 꾸고 즐기게 하는 것. 다행히도 아직 글을 잘 읽지 못하니, 글 읽기에 고통받게 하지 말고, 더듬더듬 읽는 한 단어를 가지고도 마음껏 상상하게 하자는 것.
Sabuda씨가 많이 도와 주었습니다. 세심하게 그림들 안쪽(바로 아래 사진에 나오는 집의 안쪽에도 그림들이 있습니다.)까지 처리해 놓았기에 둘째 아이와 관찰 놀이까지 해 봅니다.
우리 나이로 다섯 살이 된 올해부터 둘째 아이는 특별히 책 읽기에 많은 관심을 갖습니다. 하루 종일이라구요? 절대 아님. 낮 동안은 온갖 조립 놀이에 몰두합니다. 그리고 밤이 되면 사람이 변해서 책 읽기 모드로 들어갑니다.
함께 밤에 책을 읽는데, 피곤하거나 귀찮아서 하루를 미루면 그 다음날은 아주 성화입니다. 주중에는 청주에 내려와 있으니, 집에서 지내는 동안은 꼭 지켜주어야 하는 의무가 되어 버렸습니다.
미국 영화에서 아이에게 책 읽어 주고 잘 자라고 키스해 주고 방 불 꺼 주고 문 닫아주고 아버지가 나오는 장면, 아주 미국적인 아버지상이자, 가족 이미지릴텐데요. 그게 미국 문화이든, 보편적인 문화이든 간에 아주 힘든 일인 건 분명합니다. 책을 읽어주어야 할 밤이 되면 입을 여는 것이 고역이 될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게 일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아이쿠.
그래도 쭉 해 줘야 할 것 같습니다. 어쨌든 지금으로서는 내가 아이를 위해 해 줄 수 있는 교육의 전부인 셈이니까요. 함께 책을 읽는 습관 말이지요
(20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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