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 돌아가신 아버지는 은퇴 전에는 목사이셨다. 32년인가 목회 활동을 하셨는데, 그중 절반 이상 병중에 계셨다. 그래도 젊은 시절에는 매우 활달하셔서 일에 대한 욕심도 크고 타지로 다니시기도 꽤 하셨더랬다. 해외 선교도 자주 나가셨는데, 그 당시 선교사를 지원 받는 처지에 있던 한국의 상황에서 외국으로 선교를 나간다는 건 어린 나이에도 좀 이상하게 여겨졌다. 나중에 생각하기로, 그건 아버지의 자기 성취욕을 반영하는 것이었다. 아버지가 봉사하는 교회의 규모는 내가 대학생이 되면서 집을 벗어나기까지의 20년 가까이 별로 바뀐 게 없었다. 게다가 이미 80년대에 들어서면서 이른바 기독교의 부흥기에 동료 목회자들의 교회는 준대형이나 대형 교회로 커 가고 있었다. 그 시절 아버지의 입장에서는 다른 방향으로의..
아버지의 머리 위에 하얀꽃 핀 뒤로 산꽃들은 죽고 죽은꽃들이 살았다 아버지 머리 위에 죽은꽃들이 산꽃들 대신 어리광을 부렸다 아버지 머리 위에 죽은꽃들이 시들시들 검은꽃이 피어났다 아버지 머리 위에 검은꽃 핀 뒤로 죽은꽃들은 죽고 대신 산꽃들이 꽃단장했다 나는 아버지 머리 위에 하얀꽃 뿌리며 죽은꽃 피기 전의 옛일들을 생각하였다 산꽃들이 지천에 있었다 (2011.12.27)
(1) 시작이 그랬다는 것이다 만나기 전부터 오래 우리의 관계는 태어나기 전부터 미리 장만해 두셨다는 소년소녀 세계명작전집 그 속에 굳어져 있었던 당신의 거울 이미지 어린 시절은 서로에게 장남이라는 족쇄를 채우고 커 가면서 종교라는 믿음의 회의라는 형식과 회의의 믿음이라는 형식으로 서로 충돌하면서도 다 커서 서로의 삶에 대한 간섭으로 부딪----히----는 고통을 겹겹이 껴 안으면서도 커 가면서 집에서 벗어나는 시간이 길어지고 다 커서는 만나지 않는 시간의 간격이 길어지면서도 미워하고 미워하고 미워하고 미워하면서도 그렇게 벗어나지 못했던 우리의 관계는 (2)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당신을 병원에 모시고 난 뒤 드문드문 얼굴을 보이면서 죽음이 저만치서 자기의 시간을 노래하고 특별히 집착할 것도 슬퍼할 것도 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