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계란의 껍질이 벗겨지듯 묵은 사랑이 벗겨질 때 붉은 파밭의 푸른 새싹을 보아라 얻는다는 것은 곧 잃는 것이다 먼지 앉은 석경 너머로 너의 그림자가 움직이듯 묵은 사랑이 움직일 때 붉은 파밭의 푸른 새싹을 보아라 얻는다는 것은 곧 잃는 것이다 새벽에 준 조로의 물이 대낮이 지나도록 마르지 않고 젖어 있듯이 묵은 사랑이 뉘우치는 마음의 한복판에 젖어 있을 때 붉은 파밭의 푸른 새싹을 보아라 얻는다는 것은 곧 잃는 것이다 - 김수영, 1연 또 역설에 대해 글을 쓰게 되었다. 쉽지 않은 주제이다. 하지만 오늘 쓰는 글은 어려운 주제에 관한 것이라기보다는 지극히 단순한 혼동에 관한 것이다. 역설에 대한 지식이 잘못 투입되는 예를 확인하는 것이다. 김수영의 는 밭에 심은, 어느 덧 말라 죽은 것 같은 마른 파..
시론에서 시에 관한 정의를 찾아 읽다 보면 종종 시의 정의가 서구의 것에 의존하고 있다면서 문제를 제기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들 논의에서는 詩의 어원을 살펴 시경이나 그밖의 고문의 풀이를 인용하는 장면도 함께 보여 준다. 이식되거나 임차한 것이 아님을 강조하려는 의도야 좋고 나쁘고 할 일이 아니다. 하지만 세상의 어떤 것도 죽어 이미 완료된 상태로 있지 않는 한 변해야 하고 변할 수밖에 없는 게 이치인데, 시라고 옛것이 그대로 남아 있을 리 만무하다. Poetica(아리스토텔레스)의 Poesis가 지금의 시와 같지가 않고 詩經(공자)의 詩가 또한 그 모습으로 지금 남아 있지 않다. 그러니 남의 정의를 가져다 쓰는 것에 부동의하여 옛것을 들추는 것이나 결국 남의 것으로 남의 것을 빌어온 것이라 책하는 ..
텍스트 이해는 언제나 해석학적 접근의 문제의식과 만난다. 이와 관련하여 나의 관점은 ‘문학적 이해’(혹은 ‘예술적 이해’)가 작품에 의미의 객관적 기반을 둔다고 보는 허쉬(Hirsch, E.D. 1988)의 관점과는 거리를 둔다. 해석의 타당한 근거를 마련해 두고자 했던 허쉬는 ‘의도의 오류’를 지적한 윔셋과 비어즐리(Wimsatt, W. K & Beardsley, C., 1972)와는 달리 역사적 변화에 영향 받지 않는 일종의 이상적 대상(eidos)으로서 의도를 설정하고, 이러한 저자의 의도를 파악하는 것이 유일하게 바른 이해에 도달하는 것이라고 판단한다. 그는 독자들이 서로 다른 조망에서 다른 이해에 도달하게 되는 것은 작품의 ‘의의(significance)’에 접근하는 것으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
아래 글은 2009년 6월 8일 리테두넷(litedu.net)에 올린 글입니다. 플랫폼 변경으로 인해 이곳으로 옮겨 놓았습니다. 문화일보를 읽지 않으니 몇일자로 실린 기사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인터넷신문에는 6월 7일자로 등록된 기사이군요. 제목이 입니다. 꽤나 섹시한 제목이지요. 무겁다구요? '대산문화' 여름호와 관련된 기사인데요. 특집으로 '문학과 윤리'를 다루었답니다. 이 기사는 이 특집 기사를 인용하고 있지요. 그러면 인용된 부분 잠깐만.... ------------------------------------------------------------------------------- 소설가 현길언(67)씨가 ‘문학은 장막에 가려진 인간의 진실을 찾아가는 길’이라는 글에서 ‘문학은 윤리적이어야 한..
그들은 지독한 염세주의를 노래했고 요절을 했다. 뇌졸중과 폐결핵이 멀다면 먼 병증이겠지만 페시미즘 가득한 세상을 애써 벗어나려 하면서도 벗어나지 못하며 영원히 머물러 버렸다. '날이 갈수록'은 1975년 '바보들의 행진'(최인호 원작, 하길종 감독)에 삽입된 노래이다. 송창식이 불렀던 것을 1981년 김정호가 다시 불렀다. 이미 남의 노래인 것을 다시 불렀으니, 그 선택의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대학을 겉도는 우울한 청춘들의 대학 시절 / 기형도 시 나무의자 밑에는 버려진 책들이 가득하였다 은백양의 숲은 깊고 아름다웠지만 그곳에서는 나뭇잎조차 무기로 사용되었다 그 아름다운 숲에 이르면 청년들은 각오한 듯 눈을 감고 지나갔다, 돌층계 위에서 나는 프라톤을 읽었다, 그때마다 총성이 울렸다 목련철이 오면..
재호 군의 '빈 자리' 개념에 대한 질문에 답을 하자, 민웅 군이 이 개념을 역설과 관련지어 생각하고는 또 질문을 했습니다. 그래서 거기에 대해서도 답을 해 주었습니다. ---------------------------------------- 선생님!!^^, 문학텍스트의 빈자리로 인해 역설도 생긴다고 봐도 될까요? 또한 복합적 정서가 나타날 수도 있는 거죠?(어제 공부한 건데..맞길 바라면서..ㅠㅠ) ---------------------------------------- 내가 '빈자리' 개념이 전제가 필요하다... 이렇게 말한 까닭을 생각해 봐라. 나는 이 결혼 반댈세 하는 태도가 느껴지지 않니? 빈자리는 본질적으로 저자(시인)의 진술에 담긴 진정성과 실체성을 인정하는 개념이야. 쉽게 말하자면, "독자..
(이 게시물은 다음 카페 '현대시 공부하기'에도 올려 놓은 것입니다... 만, 회원 아닌 학생들도 있고 해서...) 재호 군이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그래서 답변을 해 주었습니다. -------------------------------------------------------- “문학텍스트의 특성은 그것이 가지고 있는 본질적인 빈자리에 있다. 그리하여, 수용자는 이전의 독서경험과 일상적인 경험, 곧 기대지평으로써 그 빈자리를 메꾸어 가는데, 이것이 바로 심미적 경험의 확장이며 그 자체 교육적인 구조를 갖게 된다.” 구인환 외「문학교육론」발췌 각주 1. “카스너에 따르면 세계는 공간세계와 시간세계로 양분된다. 공간세계는 과거, 즉 이상적인 관념의 세계이고, 시간세계는 현재, 현실적인 정신의 세계이다. ..
이런 질문을 받았을 때, 난감하지요. "현대시를 잘한다." 이 말의 뜻을 무엇일까요? 어쩌면 이 질문을 던진 학급의 아이는 어떻게 하면 현대시에 관한 시험 문제를 잘 풀 수 있겠느냐는 궁금증을 가졌을 법합니다. 어쩌면 그 아이는 잘 이해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물었을 수도 있고, 혹시나 시를 잘 쓰는 방법을 물었을지도 모르겠네요. 이 질문을 받은, 실습 나갔던 학생이 내게 던졌던 질문이 예전 게시판에 올라와 있더라구요. 그에 대한 내 답변은 아래와 같았습니다. ---------------------------------------------------------- 나도 여태 그걸 잘 모르겠다. 6(=.=) 내 나름으로 정리한 바로는 체험하라. 체험을 위해서는 상상하라. 상상할 수 있기 위해서는 상황을 구..
교수는 학습 점검을 위한 발문을 통해 실현되기도 하고, 평가를 통해 실현되기도 합니다. 많은 경우, 교수=발문=평가의 맥락이 형성됩니다. 문학 교수 학습 전략은 그 자체로 문학 평가 방법으로 활용될 수 있습니다. 한 학생이 만든 문제입니다.(-라고 쓰고 수정해 놓습니다.) ----------------------------------------------------------------------------------- 김수영의 '눈'을 감상하고 해석하기 위한 토론 과정에서 제기된 물음 중 적절한 물음이 아닌 것은? (1) 화자는 왜 하필 '눈 위에 대고' 기침을 하라고 했을까? (2) '눈'의 의미는 '가래' 혹은 '기침'과 무슨 관계가 있을까? (3) '젊은 시인'을 시인 자신으로 보았을 때 시의 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