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다] 시를 쓰거나 당신과
시를 쓰다가 그렇지, 밥상 앞에서 당신과 마주 앉아 당신을 보면서 얘기를 하거나 혹은 듣거나 전화기를 내려놓고 당신과 마주 앉아 잠시 물어보자고 당신이 주는 힌트를 시에 걸쳐 놓고 늘어지기 전에 한 줄, 그리고 놓치기 전에 한 줄 마주 앉아 당신과 얘기를 하거나 혹은 듣거나 쓰자고 (2008.09.09)
시를 쓰다가 그렇지, 밥상 앞에서 당신과 마주 앉아 당신을 보면서 얘기를 하거나 혹은 듣거나 전화기를 내려놓고 당신과 마주 앉아 잠시 물어보자고 당신이 주는 힌트를 시에 걸쳐 놓고 늘어지기 전에 한 줄, 그리고 놓치기 전에 한 줄 마주 앉아 당신과 얘기를 하거나 혹은 듣거나 쓰자고 (2008.09.09)
그 사람은 옛날 눈부신 여름 무작정 버스에 올랐던 여행의 종착 낯선 동네엔 햇살 가로수 햇살 아래 눈부신 자태 가만히 듣던 모습 아득했던 길었던 한낮 향기롭던 눈부신 젊은 날 무작정 버스에 올랐던 여행의 시작 (2008.09.09)
존경하는 재판장님 존경하는 의원님께서 존경하는 의원님 하고 부르는 걸 못하게 막아주세요 존경하는 의원님은 존경하는 의원님 하고 부르기는 해도 한 번도 존경 않는 의원님 하고 부르지는 않아요 답답한 의원님 한심한 의원님 멍청한 의원님 하지도 않고 앉으나 서나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존경하는 의원님, 네, 존경하는 의원님 하면서 매번 시간을 저당하고 있네요 아마 다 모으면 존경하는 재판장님 (2008.09.08)
존경하는 재판장님 어제는 재판장님께 편지를 썼쎄요 재판을 잘 해 주셔서 고맙다고 썼쎄요 아직 판결도 나지 않았는데 썼쎄요 판결이 났더라면 안 썼쎄요 내일이라면 안 썼쎄요 어제라서 재판장님께 쓴 거에요 존경하는 재판장님 (2008.09.08)
도심에 부는 바람 불온한 기운 전혀 없는 건조한 바람 시청 앞 광장을 헤매다가 태평로 앞을 되돌아나올 땐 아무의 바람 마저 갖지 않게 된 늦은 오후의 바람 큰 길을 따라 내려오다가 계절이 바뀌는 바람에 길을 잃어 버린 바람 그 너머 국일관 앞길에 울리던 구호를 자욱히 덮어 버렸던 바람 그 너머 비 내리는 종오 거리에서 신문팔이 소년 떠밀고 지나갈 때부터 있던 바람 사라진 거리에서 버젓이 불고 있는 바람 한 사람의 잘못이 가져온 시작은 아주 작았던 어긋남 (2008.09.04)
- If I have a hammer(peter, paul and mary)의 몹쓸 변주 기도하자 내게 만약 쥘 수 있는 주먹 있다면 꼭 해야 할 일 있노라고 애써 손 내밀지 않고 불면의 낮과 밤 바꾼 두 손의 축복 감사히 받아들이겠노라고 만약 내게 쥘 수 있는 주먹이 있다면 가슴을 툭툭 쳐 내가 가진 믿음을 증거하며 쥘 수 있는 주먹 있다면 그 주먹 불끈 쥔 팔을 들어 내보이겠노라고 만약 쥘 수 있는 주먹 있다면 당신들을 일으켜 세우고 여전히 힘이 남아 쥘 수 있는 주먹 할 수 있는 일이 남거든 착각과 오해의 벽을 깨뜨려 다행히도 좀 더 강한 쥘 수 있는 주먹을 기억하게 하겠노라고 당신들이 내 쥘 수 있는 주먹을 떠올렸을 때 그 기억 속에 나는 없고 주먹만 남았을 때 당신들이 온전히 기억해야 할 일 그..
- 고개를 돌리지 않고 영화를 끝까지 견디게 하는 여섯 가지 기술 이런 생각을 했을 거야, 감독은 미국 사람들이 흔히 갖다 붙일 이유가 없을 때 이러잖아, 잘못된 시간, 잘못된 곳이었을 뿐야 어쩔 수 없이 위험에 빠진 미진은 어쩔 수 없잖아, 죽을 운명이었어 죄 없이 남의 안부에 관심이 많고, 지나치게 타자와의 유대에 의존하면 그것도 죽을 운명이지 이런 엑스트라적 인생을 위해서는 죽는 순간쯤은 곧바로 건너뛰게 할 영화적 기법이 있어 저마다 고독한 비정, 몹쓸 세상에서 미진 그녀의 어린 딸이 손을 내밀면, 그런다고 잡아줄 수는 없는 거야, 아마추어 같이 슬픔을 견디기 어려운 자에게는 비를 우는 소리 고통스러운 자에게는 라디오 음악을 친절하게도 교통사고와 깊은 잠을 함께 제공하는 자비, 가능하면 그것도 그냥..
사십이 되자 아내는 마음먹었던 대로 학생이 되었다 다들 부러워하는 시간을 얻었다면서도 아주 죽을 맛이라며 학교를 다니고 있다 가정은 나에게 맡긴다고 선언했던 그녀는 가엽게도 선언만 하고 끝냈다 아침이 되자 여전히 주부였고 다들 깨우는 일이 여전히 그녀의 몫이었다 아이들은 그녀가 학생이라는 걸 별로 의식하지 못했고 나는 월요일마다 짐 싸기에 바빴다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학생이다 아닌 게 아니라 그게 아내의 사십이다 가슴에 작은 고양이를 안고 파란 스웨터 까만 테 안경 고개를 약간 숙이고 아름답게 남겨진 아내의 이십대의 시절이 사진에 새겨져 있다 나에겐 그것이 학생을 막 끝낸 그녀의 모습이다 하지만 사랑한다는 말이 쑥스럽게 된 나이 사십이 다들 거쳐 가는 나이 사십이 아내를 막 지나치려 한다 사십의 아내는 ..
노트북은 간편하라고 준비해 놓고 키보드가 작아 어색하다 어색하지만 노트북보다 더 큰 키보드를 꺼내 키보드 앞에 키보드 놓고 글을 쓴다 쓰지 않는 키보드는 먼지 먹어 쓸 수 없고 쓰는 키보드는 거추장스러워 갑갑하다 노트북은 골렘처럼 커 간다 나갈 일 있어 노트북을 챙기려면 도무지 가방 안이 또 갑갑하다 그냥 책상 위에 놓아두고 이 모든 건 저 쓰지 않는 키보드 탓이다 (2008. 03)
우공이 산 처럼 앞에 놓여 있다 돌아갈 수는 있지만 그럴 수는 없는 우공이 산 처럼 두터운 시집을 건네주시며 별 말씀도 안 하신다 지난 번 여행시초를 시초(詩草)라 하셨을 때 우공이 산 으로 들로 다니실 때만 사진에 시를 담았던 것이 아니라는 질투가 샘 솟았다 이게 시라도 되었으면 질투가 나의 시라도 된다면 우공이 산 과겸자 (2008.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