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는 아직 멀고 나는 집을 나서
살던 옛 동네
응암동의 언덕을 향한다
거기엔 언제나 까만 염소의 등을 쓰다듬고 있는
빵모자 쓴 꼬마 아이가 있다
아이는
언덕 아래를 말끄러미 내려다보며
작고 동그란 눈을 빛낸다
미안하게도 나는
아이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다
아마 그건 아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아이의 어깨를 짚을 수 없는
멀지 않은 거리를 두고
나는
아이의 내일을 마치 아이가
나의 어제를 비추어보듯이
비추어본다
아이는 언덕을 내려와
세상에 집을 짓는다
집 너머로 멀리 산이 보이고
그 앞에 언덕이 있다
아이는 꿈을 꾼다
앞산 너머에 바다가 있다
아이는 언덕을 향해 내달린다
앞산 너머에 태양이 숨어 있다
한 패의 소년들이 집 앞으로 몰려든다
열세 살 소년이 별을 달고
여덟 살 소년이 나무 기관총을 매고
여섯 살 소년이 열세 살 소년 어깨 뒤에 숨고
일곱 살, 아홉 살, 열 살이
아이를 불러낸다
그들은 새로 문을 연 학교다
웅덩이마다 담긴 이야기를
비오기 전까지 익히고
비 그치면 새로운 이야기를 웅덩이에서 건져내다가
아이는
개울 건너 돌 던지는 법을 배운다
돌이 날아왔을 때 울지 않는 법을 배운다
산을 집들이 하나 둘 막아선다
집들 사이로 골목이 생긴다
산 너머에 또 산이 생긴다
새로운 태양이 더 이상 산에서 떠오르지 않는다
아이는 언덕을 오르는 꿈을 꾸는 대신
클 것도 없는 풍선을 타고 골목을 따라
옛 동네 언덕을 찾는다
아직은 오후가 되기 전이었고
텔레비전에서는 초원의 집을 하고 있었다
(20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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