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필 그때 방송에 나온
구질구질하고 유쾌하던 이 잡는 얘기에
어린 시절 겨울 화롯가에서
옷 벗어 불에 쬐며 똑같은 경험을 했던 얘기를
덧붙이며 신나게 꺼내들다가
택시운전기사 아저씨와 키득거리다가
궁금해졌다
내가 가르치는 스무 살 청춘들과는
소통도 되지 않는 이야기로 신이 나 있는
나의 기억 속의 이들은 어디 갔을까
증명도 할 수 없고
옛이야기로 물릴 수도 없는
이 생생한 허구가 내 기억 속의 온갖 사태들을 호출해 낸다
이 어정쩡한 사십대는
한때 유신 시대 끝물에 떠밀려
칠십구년 시월이 우울하도록 강요당했고
책을 덮고 그 대신 책을 꺼내 읽으며
그러면서도
책을 부둥켜안고
놓치지 않으려고 거리에 나가서도
팔사년, 팔오년, 팔육년, 팔칠년
시간의 능선 아랫길을 조심조심 걸었더랬지
황공하게도 삼팔육이라는 이름에 묻어가다가
죄송하게도 삼팔육이라는 이름 잘못 되었거든요
하며 뒷자리에 박혀 앉은 채
벌써 한 칠팔년은 그대로 묵혀 있었는데
다른 것들은 고집스럽게도 굵고 깊은 홈을 파놓았는데
기억 속의 이들은 간 델 알 수 없구나
이들을 따라 기억의 절반은 간 델 알 수 없구나
(2008.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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