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력 없는 정치인들이 기초하고
상상력이 두려운 교육자들이 정당화하고
상상력이 과한 시인들이 뒷받침했다
슬픔 없는 나라를 만들려면
정치인들은
불행한 일을 없애야 한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가장 현실적이고 효과적인 일은
슬픔을 연상시키는 단어들을 금지하는 법을
만드는 일이라는 것을
너무 일찍 알고 있었고
그 단어들 없이는 정치를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것도 당장 그만 두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나
다행히 60년쯤 유예할 수 있는 인류 중대사,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일을 한 것이라는 것을
자부심을 갖는 것도 괜찮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슬픔 없는 나라를 만들려면
교육자들은
아이들이 삶을 긍정하도록 배워야 한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가장 현실적이고 효과적인 일은
좋은 것만 배우게 하는 것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고
슬픔을 연상시키는 단어들을
교과서에서 모두 빼 버리고
교실에서 추방하고
모든 언어들에서 추방해야 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법적 강제가 없다면 교화만으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나
사람은 한 번에 바뀌지도 않고
세상이 바뀌기 전에 아이들이 바뀌기란
검은색 물감으로 희게 칠하는 것만 같다는 것을,
한 방울의 슬픔도 없는 시들로 먼저 교과서를 충만하게 해야 한다는 것을,
30년쯤 시인들이 문학사를 새로 쓸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슬픔 없는 나라를 만드는 일이
슬픔을 느껴야 시작되는 건 아니라는 것을
시인들은
모를 리 없었다
기쁨, 소망, 사랑만으로 문학을 이루는 불가능 같은 시도나
협조하는 이를 협조하는 절묘한 수사적 책략도
참으로 문학적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고
세상의 시집들을 모아놓고
슬픔을 노래하는 시들을 모두 빼 버리고
슬픔을 연상시키는 모든 단어들을 빼 버리고
문학사를 새로 써 보자고 호기 있게 나서는 순간,
알고 있었다
웃어도 울 수 있고
모르는 척 하는 것도 슬퍼서 그럴 수 있다는 것을
세상의 시집들을 다 뒤적이다가
슬픔을 문학에서 모두 빼려면
새로운 시대에 어울리는 시인들이 새로 나와
새 시집을 만드는 것이 어쩌면 가장 현실적이고 효과적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해 새로운 시 목록이 만들어졌다
30년이 지나고 새로운 교육이 시작되었다
60년이 흘렀다
(2012.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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