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롭자고만 쓰는 시는 아니지만, 쓰고 나서 며칠 지나 보면 시는 어느새 먼저 태어난 것들을 많이 닮아 있다. 아마도 쓰고 나서 차츰 닮게 되는 것 같고, 어쩌면 이미 태어나기 전부터 닮아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닮지 않기를 의식한 적이 없으니 닮기를 의식한 적도 없을 터인데, 이것 참, 곤란하다. 눈에 밟히니 온전히 내것 같지도 않고 아닌 것 같지도 않다. 온전하다는 말이 무리다, 하고 위안하려고 해도 신장개업해 놓고 이웃 중국집 짜장면 흉내낸 것 같은 꺼림직한 느낌이 가셔지지 않는다.
호흡론을 제기해 놓고, 나는 과연 어떤 호흡으로 말을 꺼낸 걸까 하고 생각해 본다. 그러고 보면, 내 자연스러운 호흡이 시로 모습을 얻기 위해서는 일정 부분 표현의 강제 같은 것을 경험하게 된다. 이를테면 바로 앞의 시에서 2연,
넘기다가
이상하기도 해라
우리집에선 병아리를 키운 적이 없다
나 모르게 꾸미고 있을지도 모르는
가족들의 음모
아이의 비밀
궁금하구나
이 부분이 딱 그렇다.
여기서는 일상의 틈새가 만들어지는 계기를 보이는데, 사실 이 계기란 것이 특별한 것은 아니다. 생각이 바뀌는 것인데, 아는 사람-누구라도-은 생각이 바뀌는 것이 손바닥 뒤집기처럼 쉽고 까닭없기도 하다는 걸 잘 안다. 신문 넘기다가 그냥 드는 생각을 나타내야 한다.
넘기다가.... 한 호흡 건너 문득
이상하다 하고 느끼는 거다. 그런데 이 부분. '이상하다' 해 놓으니 호흡이 안 맞는다. '이상하구나' 해 보니 이건 주어가 있어야 이상하지 않겠다. 그렇다고 설명이 들어갈 자리는 아니다.
고치고 고친 끝에 '이상하기도 해라'로 낙찰되었는데, 그게 이제 꼭 어디서 본 것 같은 표현이 되었다는 말이다. 그래서 시에도 침 발라 놓는 게 있고, 브랜드가 있는 게지.
하여간 이 연에서는 4-6행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빼버리고 싶은데, 자연스러운 호흡을 유지하느라 그냥 놓아 두었다. 음모라니... - -;; 시 전체는 무심함과 열망의 어긋남, 알아도 안 바뀌어지는 생리를 말하고 있는데, 이 부분은 별로 기여하는 바 없다. (지방 근무한다는 것이 멀찍이서 암시가 되고, 그것이 무심함의 한 배경이 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한 이유가 되기는 하지만.....) 좀 다듬었으면 하는 생각이다.
그냥 '가족들의 음모'를 뺄까? 하지만 한 번 빨라지면 '아이의 비밀'이 생리적으로 억지스러워진다.
(20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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