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경제의 2021년 2월 21일 인터넷 기사에 '여여여여여여여여여..남교사 실종사건'이라는 기사가 실렸다. 이미 다들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이 문자의 시각화 전략은 꽤나 선동적이다. 초등학교 현장에서 여교사의 편중이 심하다는 전제에서 시작한 기사는 그 편중됨의 문제로서 "학생들이 다양한 시각을 기를 기회를 갖지 못한다"는 것을 지적한다. 맞다. 그럴 우려가 있다. 아니다. 그거 잘못된 문제 설정이다. 사실 '성 역할 교육'이라는 것이 '성 역할 고착화 교육'으로 여겨질(최대한 중립적인 표현을 사용했다) 우려가 있다는 생각을 해 보면, 기사의 '다양한 시각'은 섣부른 논리화를 전제한 것이 맞다. 그런데 교육 현장에서 다수의 여교사와 이른바 '다양한 시각'을 자연스럽게 연결하는 것도 현재로서는 어려운 것..
학생은 불완전한 존재가 아니다. 모든 사람은 불완전하다는 의미에서 학생의 불완전성을 말하는 것이라면 모르겠으되, '학생'이라는 존재 조건으로 인해 불완전한 것은 아니다. 학생은 존재 조건이라는 측면에서는 차라리 완전한 존재라는 것이 좀 더 설득력 있는 규정이라 하겠다. 바로 그 성격이 역설적이게도 교육을 필요로 하게 하는 것이다. 사람은 성장하며 그 성장은 현재의 결핍을 충족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의 결핍을 대비하는 것으로서의 지향성을 갖는다. 매순간 사람은 그 삶의 조건에 충족되도록 적응하며 대개 그것에 성공한다. 학생이라 불리는 특정 연령대의 아동들은, 말하자면 성공적으로 아동기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아동을 불완전한 존재로서 규정하는 것은, 명백히 불공정한 것이다. 그들을 성인과 직접 비교..
선생님의 침이 튀는 곳이 명당자리입니다 그렇군요 생명수 생명의 말씀 은혜를 폭포수 같이 입기 위해 나란히 줄지어 선 자리의 끝자리의 이슬이라도 묻기 위해 애쓰는 그곳은 그래도 명당자리, 그 가느다란, 알 수 없는, 동아줄 - 딸의 졸업식장에서 교장님의 말씀이 오직 공기로만 전달되는 끝자리에서 자리에 대해 얻게 된 깨달음 (2015. 3. 19) * 왜 이 두 사진이냐고 묻는다면, 결국 저 침 튀기는 거리만큼 가까워지기 위해 필요한 것이 같기 때문이라고..... * 왜 사진들이 적당히 과거의 것들이냐고 묻는다면, 다 알면서.....
“교육은--특히 문학 교육은-- 사회 집단이 보유하고 있는 기억 장치의 근대화된 형태이다. 즉, 소위 문화라는 것을 구성하는 일단의 지식과 지혜를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전수하는 기능을 한다.” 전통적으로 지식과 지혜의 전수라는 측면에서 교육은 교육의 내용을 결정하는 선임자들의 집단과 이를 습득하여 계승하는 후임자들의 집단으로 이원화(二元化)되어 왔다. 연륜(年輪)이나 고전(古典)은 지식과 지혜를 보증하는 가치의 기반이었다. 그런데 생물학적 세대 관념이 퇴색한 현대 사회에 이르러 선임자와 후임자간의 동시대성은 이러한 교육적 기반을 흔들어 놓고 말았다. 또한 인간의 기억을 대리할 저장매체들의 등장은 선임자들과 이 매체들에 급속히 접근하게 된 후임자들간의 경쟁을 낳았다. 그에 따라, 앞 세대의 기억 속에 ..
국가교육과학기술자문회의에서 나온 두 개의 문건을 올려놓습니다. 하나는 자문회의의 구상(안)이며, 다른 하나는 자문회의 산하 교육과정특별위원회 TF에서 나온 요약 내용입니다. 이 문건들에서 사용된 이른바 '미래형 교육과정'은 '2009 개정 교육과정'으로 공식적 용어를 사용하게 된답니다. 그냥 넘기지 말고 꼼꼼히 따져 보아야 하겠습니다. 제 스타일대로 편집을 좀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