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은 불완전한 존재가 아니다.
모든 사람은 불완전하다는 의미에서 학생의 불완전성을 말하는 것이라면 모르겠으되, '학생'이라는 존재 조건으로 인해 불완전한 것은 아니다.
학생은 존재 조건이라는 측면에서는 차라리 완전한 존재라는 것이 좀 더 설득력 있는 규정이라 하겠다.
바로 그 성격이 역설적이게도 교육을 필요로 하게 하는 것이다.
사람은 성장하며 그 성장은 현재의 결핍을 충족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의 결핍을 대비하는 것으로서의 지향성을 갖는다.
매순간 사람은 그 삶의 조건에 충족되도록 적응하며 대개 그것에 성공한다.
학생이라 불리는 특정 연령대의 아동들은, 말하자면 성공적으로 아동기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아동을 불완전한 존재로서 규정하는 것은, 명백히 불공정한 것이다. 그들을 성인과 직접 비교하면서 불공정한 게임의 룰 속으로 밀어넣는 것이다.
그 순간 아동은 자기주도적인 존재가 아닌 독립적인 존재라는 기준에서 불완전해진다.
독립성은 아동에게 요구되는 인성이나 덕목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아동을 규정하는 상위 판단 준거로까지 지위가 상승한다.
교육에서 아동을 열등한 지위에 놓고
교육을 시혜적 행위로 여기며
교사를 보호자나 규율자로 판단하는 것은
그 모든 선의에도 불구하고 아동을 불완전한 존재로 보기 때문이다.
초월적인 차원에서가 아니라 적응의 차원에서 말하자면, 사람은 매순간 완전하며 시간이 지났을 때에도 여전히 완전하다.
다만 그 사이의 변화를 감당하기 위해 스스로 불완전해지기를 감수하는 것이며
그 감수가 사람을 의미 있는 존재로 만드는 것이다.
모든 배우려는 사람은 적어도 이 점에서는 성자와 같다.
보충적 생각
모든 사람은 나이를 먹고 발달하며 성숙해지는데 아직 어리고 발달 이전이며 미성숙한 사람이 불완전한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닌가 하고 당연한 의구심이 생길 수 있다.
이는 사람을 어떤 커다란, 위대한, 알 수 없는 목적 속에 태어나고 자라고 늙고 죽는 존재로 보기 때문이다.
사실 이 부분은 믿음의 영역인지라 굳이 그렇게 믿기로 한 사람들을 설득할 방법은 없다.
하지만 거꾸로 그 믿음의 상대성을 주장해 본다면, 사람은 어떤 목적 속에 살아지고 죽게 되는 존재가 아니다.
어쩌다 보니 태어났고, 어쩌다 보니 살아 왔던 것이다.
이러한 과거는 어떤 노력을 기울이더라도 바뀌지 않는다.
의미는 변화를 의도하는 순간부터 발생하며 의미의 의미는 그 변화를 위해 자신을 불완전하게 만들려는 자발성에 기대어 평가될 수 있는 것이 된다.
(2018.6.25)
(사진은 이미지 무료 공유 사이트인 pixabay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https://pixabay.com/ko/달걀-둥지-외아들-완전한-가득차-있는-새-둥지-16008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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