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를 모두 끝냈다 내게 또 다른 4시간, 또는 24시간이 생기지 않았다 과제를 내어 주고 과제물을 받았다 한 장 한 장이 숙제처럼 도무지 넘어가지 않았다 미뤄 두었던 상담 계획을 다시 세우기도 전에 학생들이 집으로 돌아갔다 미뤄 두었던 논문들을 진행하기도 전에 학술대회 발표의 기억들이 사라지고 있었다 새벽은 어제와 다름없이 흰 벽지만큼 밝고 그 틈에 더위가 장마와 함께 밀려왔다 나는 며칠 입은 후줄근한 바지를 다시 입고 샌들을 신고 점심 때 가까이 되어 출근했다 그것이 나의 소심한 반항이었고, 연달아 세 번의 회의가 무관심한 관심의 표정으로 나의 외모를 관조했다 (2018.06.27.)
"내 사랑아" 너는 말했다. "내 사랑아" 나는 말했다. "눈이 온다" 너는 말했다. "눈이 온다" 나는 말했다. "좀더, 좀더" 너는 말했다. "좀더, 좀더" 나는 말했다. "이렇게, 이렇게" 너는 말했다. "이렇게, 이렇게" 나는 말했다. 그런 뒤, 너는 말했다. "난 네가 참 좋아" 그리고 나는 말했다. "난 네가 더 좋아" "여름은 갔어" 너는 말했다. "가을이 왔어" 나는 답했다. 그리고 난 뒤 우리의 말은 처음처럼 비슷하지는 않았다. 마지막에 너는 말했다. "사랑아, 네가 좋아." 해맑고 숭고한 가을날의 화려한 저녁빛을 받으며 그 말에 나는 말했다. "다시 한번 말하렴" - 어쩌면 나르시소스의 독백처럼, 어쩌면 이미 잃어버린 님을 안타깝게 붙잡고 있는 심정을 그려낸 것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