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원장이 부르더라. 노력해보기는 할 테지만 아무래도 인문계 진학까지는 밀어주기 곤란하다 카더라. 내 동기들은 다 고아원에서 나갔다. 말은 안 해도 나도 그래 나갔으만 하는 눈치더라. 그란데 나는 이래 끝내고 싶지는 않아여. 그래갖꼬 오늘 담임한테 가서 한번만 도와달라 캤다.”
“뭐라카더나?”
“수산고등학교 가라 카더라. 학비가 공짜인 대신에 군대에서 하사로 오래 근무해야 된다 카데.”
“그라만 되겠네.”
태식이가 원재를 골똘하게 쳐다봤다. 그 눈길에 원재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나는 싫다 그랬다. 아직까지 내 꿈은 선원이 되는 게 아이라. 나도 너처럼 대학교 전산학과 가고 싶어여. 다른 형들처럼 감방이나 들락거리는 그런 인생을 살고 싶지는 않아여. 그래갖꼬 나는 일단 돈 벌어서 검정고시 치기로 했다. 너하고는 대학에서 다시 만날 수 있을 끼라. 아마 내가 먼저 가 있을 끼다. 너 선배가 될 끼다.”
이를 악물면서 태식이는 하모니카를 내밀었다.
“이거는 너 가져라.”
“이걸 왜 날 주나?”
“내가 제일 소중하게 여기는 물건이다.”
“니가 제일 소중하게 여기는 물건을 왜 나를 주나?”
“내가 지금 한 말을 먼 훗날까지 잘 지켜나갈라고 그런다. 내가 우째 될란지 지켜볼 사람은 이 세상 천지에 하나도 없응께 니가 이거 갖꼬 있다가 내가 진짜 어떤 사람이 되는가 잘 지켜보란 말이라. 나중에 대학교 전산학과에서 다시 만나만 나한테 돌려주라. 그때 다시 만나서 오늘 일 얘기하만 얼마나 좋겠나.”
보랏빛 꽃잎 몇 점이 태식이의 짧은 머리칼 위에 내려앉았다. 태식이는 돌의자에서 벌떡 일어섰다. 꽃잎들이 흩어졌다.
“나가기 전에 내가 너들한테 선물 하나 하고 나갈 끼라. 너도 다시는 체력단련 끝나고 <캔디> 같은 노래 부르지 마라. 애꿎은 사람 눈물 흘리게 하지 말란 말이라. 매 맞는 거 참는 거는 노예들이나 하는 짓이다. 참고 참고 또 참지 말고 니가 원하는 사람이 돼라. 니가 원하는 대로 꼭 과학자 돼라. 나도 내가 원하는 대로 꼭 과학자 될 끼다. 그래갖꼬 담임한테 매 안 맞고도 훌륭한 사람 될 수 있다카는 거를 보여줘야 한다. 담임은 우리 때 얼마나 견딨는가 모르겠지만, 저래 선생질밖에 더 하나? 안 그렇나?”
태식이가 씽긋거리며 말했다. 원재도 마주 보며 어색하게 웃었다. 둘은 그저 미소만 짓다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껄껄거렸다. 둘의 웃음소리에 젖은 보랏빛 등잎이 눈처럼 쏟아져 내렸다. 그 순간 원재는 제 안에 들어 있던 뭔가가 영영 사라졌음을 알게 됐다.
가는바람이 불어왔겠지. 등나무 잎들이 흔들렸다. 원재는 등꽃이 주렁주렁 매달렸던 자리를 올려봤다. 지난봄, 그 많았던 보랏빛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얼마나 많은 보랏빛들이 저물고 나면 여름이 찾아오는 것일까?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리고 나면 소년들은 어른이 될까? 제 몸이 아름다운 줄도 모르고 등꽃 그 빛들은 스러진다. 제 몸이 아름다운 줄도 모르고 소년들은 슬퍼한다. 비에도 지지 말고 바람에도 지지 말고. 눈에도, 여름 더위에도 지지 않는 튼튼한 몸으로 원재는 등나무 그늘 아래에 섰다.
“뭐라카더나?”
“수산고등학교 가라 카더라. 학비가 공짜인 대신에 군대에서 하사로 오래 근무해야 된다 카데.”
“그라만 되겠네.”
태식이가 원재를 골똘하게 쳐다봤다. 그 눈길에 원재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나는 싫다 그랬다. 아직까지 내 꿈은 선원이 되는 게 아이라. 나도 너처럼 대학교 전산학과 가고 싶어여. 다른 형들처럼 감방이나 들락거리는 그런 인생을 살고 싶지는 않아여. 그래갖꼬 나는 일단 돈 벌어서 검정고시 치기로 했다. 너하고는 대학에서 다시 만날 수 있을 끼라. 아마 내가 먼저 가 있을 끼다. 너 선배가 될 끼다.”
이를 악물면서 태식이는 하모니카를 내밀었다.
“이거는 너 가져라.”
“이걸 왜 날 주나?”
“내가 제일 소중하게 여기는 물건이다.”
“니가 제일 소중하게 여기는 물건을 왜 나를 주나?”
“내가 지금 한 말을 먼 훗날까지 잘 지켜나갈라고 그런다. 내가 우째 될란지 지켜볼 사람은 이 세상 천지에 하나도 없응께 니가 이거 갖꼬 있다가 내가 진짜 어떤 사람이 되는가 잘 지켜보란 말이라. 나중에 대학교 전산학과에서 다시 만나만 나한테 돌려주라. 그때 다시 만나서 오늘 일 얘기하만 얼마나 좋겠나.”
보랏빛 꽃잎 몇 점이 태식이의 짧은 머리칼 위에 내려앉았다. 태식이는 돌의자에서 벌떡 일어섰다. 꽃잎들이 흩어졌다.
“나가기 전에 내가 너들한테 선물 하나 하고 나갈 끼라. 너도 다시는 체력단련 끝나고 <캔디> 같은 노래 부르지 마라. 애꿎은 사람 눈물 흘리게 하지 말란 말이라. 매 맞는 거 참는 거는 노예들이나 하는 짓이다. 참고 참고 또 참지 말고 니가 원하는 사람이 돼라. 니가 원하는 대로 꼭 과학자 돼라. 나도 내가 원하는 대로 꼭 과학자 될 끼다. 그래갖꼬 담임한테 매 안 맞고도 훌륭한 사람 될 수 있다카는 거를 보여줘야 한다. 담임은 우리 때 얼마나 견딨는가 모르겠지만, 저래 선생질밖에 더 하나? 안 그렇나?”
태식이가 씽긋거리며 말했다. 원재도 마주 보며 어색하게 웃었다. 둘은 그저 미소만 짓다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껄껄거렸다. 둘의 웃음소리에 젖은 보랏빛 등잎이 눈처럼 쏟아져 내렸다. 그 순간 원재는 제 안에 들어 있던 뭔가가 영영 사라졌음을 알게 됐다.
가는바람이 불어왔겠지. 등나무 잎들이 흔들렸다. 원재는 등꽃이 주렁주렁 매달렸던 자리를 올려봤다. 지난봄, 그 많았던 보랏빛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얼마나 많은 보랏빛들이 저물고 나면 여름이 찾아오는 것일까?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리고 나면 소년들은 어른이 될까? 제 몸이 아름다운 줄도 모르고 등꽃 그 빛들은 스러진다. 제 몸이 아름다운 줄도 모르고 소년들은 슬퍼한다. 비에도 지지 말고 바람에도 지지 말고. 눈에도, 여름 더위에도 지지 않는 튼튼한 몸으로 원재는 등나무 그늘 아래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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