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주, 국화 옆에서
한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보다
한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보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든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노오란 네 꽃잎이 피려고
간밤엔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 보다
'국화 앞에서'가 아니라 '국화 옆에서'다.
국화를 보며 자신을 비추어보는 게 아니라 국화 옆에서 국화에 빗대어 본다는 거다.
그러니까 이 작품은 나이든, 누님이든 인생에 관한 시가 아니라
국화라고 하는 존재에 관한 시인 것이다.
그래도 문학의 세계에서는, 그리고 서정시의 세계에서는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으므로
결국에는 나에 관한 시가 될 것이다.
사실 주된 독법이 '국화 앞에서'로 읽는 것이었고 '옆'의 의미를 그다지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
그렇다면 시인은 국화를 보면서 이 시를 쓰게 되었고, 첫 발상에서 누님이 시적 계기가 된 것일까?
만약 그렇다면 이 시는 누님의 삶, 혹은 누님이 처한 것과 같은 상황 존재성의 측면에서 인간에 관해 하고 싶었던 말이 생겼던 것일까?
이때 발상의 순서로는 두 가지가 가능할 터인데, 어느 가을날 국화를 보았더니 거기서 '내 누님'의 모습이 겹쳐져 보인 것이고 그래서 그 모습에 대해 말하기 위해 시를 쓴 것일 수도 있겠고, 내 누님을 보고 있자니 마치 국화 같은 모습 같았고 그래서 이를 국화의 이미지로 형상화하여 시를 쓰게 된 것일 수도 있겠다. 그런데 말하는 대상은 '국화'임에 분명하고, 이를 '내 누님'에 빗대고 있으니, 이 시가 누님에 관한 시가 아님은 분명하다. 그런 즉, 국화를 보다가 누님을 생각한 것으로 추정하기보다는 누님으로부터 국화를 말하게 된 것으로 추정하는 것이 좀 더 텍스트의 기본적인 맥락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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