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은 지나서
상주 김천 넘어가는 길은
한창 배가 고플 때였다
불을 밝혀 식당을 찾아 내달리는
고개와 모퉁이들은 교대하며
식탐을 선동하고
갈 길은 여전히 멀었다
속도를 줄였다가는 내지르며
차는 반복하여
식육 식당들이 연이어 자리 잡은
더 깊은 길로 들어섰다
확고한 편견이 내 어깨 너머로부터 팔을 뻗어와
더 먼 곳을 향해 있었다
-- 거기 식육 식당에선 어떤 야만이 벌어지는 게요?
잘 갈린 칼 대신
도끼가 돌려 있을 법한 식당
주방이 언뜻 보이고 사라질 때마다
자취처럼 차창에 남겨진 '식육'에서
식인을 연상하고
식당 뒤켠 어딘가의 능지처사(凌遲處死)를
연상하고
소나 돼지의 고통스런 사람 흉내를
연상했다, 초파일 연등처럼
식육 식당들이 그림자를 흐려 가며 쫓아오고
차는 가슴을 움찔거리다 내달렸다, 경험이
내 발등을 밟고 있었다
-- 우리도 정육점을 함께 하는 식당들이 있다오. 식당의 급은 좀 떨어지지
나는 가도 가도
정육에 곱게 포장된 도살의 본질이
도살되는 실체에서
실체를 연상하지 않게끔 하는
훈련된 문명의 속임에 믿음에 기대어
육즙 배인 육회를 씹고 있는
형상의 망상을 지워 버리려고 했다
대충 썰어 내온 몸통의 조각들을 생각하지 않으려
생각을 하고
뼈와 부산물이 끓어 넘치는 가마솥을 떠올리지 않으려고
생각을 했다 사시미처럼
가다듬어진 사시미처럼
정갈한 사시미처럼 기원의 흔적을 지워 버린
문명을 되돌리려고 생각을 했다
----->| 여기 네 거리에선
-- 어디 방향으로 가도 멀지 않은 곳에 한우마을이 자리를 잡고 있지
그때 |----->
멈추지 않는 식탐과
억압되지 않는 판단과
가리지 않는 상상과
왜곡되지 않은 경험이
일순 해방되면서
텅 빈 뱃속
육체 한 가운데의 진공,
중심의 비어 있음을 깨닫는 열락이
주린 배보다 먼저 채워야 하는
기름통으로부터 울려 왔다
끓어 넘치는 도가니탕과
(2009. 9.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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