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계란의 껍질이 벗겨지듯 묵은 사랑이 벗겨질 때 붉은 파밭의 푸른 새싹을 보아라 얻는다는 것은 곧 잃는 것이다 먼지 앉은 석경 너머로 너의 그림자가 움직이듯 묵은 사랑이 움직일 때 붉은 파밭의 푸른 새싹을 보아라 얻는다는 것은 곧 잃는 것이다 새벽에 준 조로의 물이 대낮이 지나도록 마르지 않고 젖어 있듯이 묵은 사랑이 뉘우치는 마음의 한복판에 젖어 있을 때 붉은 파밭의 푸른 새싹을 보아라 얻는다는 것은 곧 잃는 것이다 - 김수영, 1연 또 역설에 대해 글을 쓰게 되었다. 쉽지 않은 주제이다. 하지만 오늘 쓰는 글은 어려운 주제에 관한 것이라기보다는 지극히 단순한 혼동에 관한 것이다. 역설에 대한 지식이 잘못 투입되는 예를 확인하는 것이다. 김수영의 는 밭에 심은, 어느 덧 말라 죽은 것 같은 마른 파..
파랑새, 한하운 나는 나는 죽어서 파랑새 되어 푸른 하늘 푸른 들 날아다니며 푸른 노래 푸른 울음 울어 예으리. 나는 나는 죽어서 파랑새 되리. (보리피리, 인간사, 1955) 이 작품은 썩어 가는 육체 속에 깃든 한 불우한 자아의 간절한 소망을 담은 시이다. 그의 소망은 죽음을 통해 비로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정작 시적 자아는 이러한 아이러니를 회피하거나 미화하기보다는 오히려 아무렇지도 않은 체한다. 자신의 삶을 모질게도 포기해 버릴 수 없다면, 어쩌면 이것이 유일하게 취할 수 있는 태도일는지도 모르겠다. 당시로서는 나을 수 없는 병이라고 체념할 수밖에 없었던 나병에 걸려 살이 문드러져 가는 자신의 모습을 보아야 했던 시적 자아로서는 오히려 그러한 몸뚱이를 가벼이 버리는 편이 나을지도 모..
몇 년 전에 한 고등학교 선생님으로부터 메일을 받았다. 메일 내용은 아래와 같다. --------------------------------------------- 안녕하세요. 저는 현재 안산에서 고등학교 문학을 지도하고 있는 ○○○입니다. 재작년에 한양대 특강 때 교수님 강의 들었습니다. 덕분에 시를 이해하는 안목을 넓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어서 매우 기뻤습니다. 이렇게 갑자기 교수님께 메일을 쓴 이유는 표현기법 중에 반어법과 역설법에 대해 정확하게 알고 싶어서입니다. 학생이 가져온 문제를 풀어주는데 반어법인지 역설법인지 명확하지가 않아서요. 다른 선생님들도 너무 의견이 분분한 상황입니다. 정호승의 '또 기다리는 편지'의 마지막 구절인데요. 지는 저녁해를 바라보며 오늘도 그대를 사랑하였습니다. 날저문 ..
이형기의 ‘폭포’와 김수영의 ‘폭포’에 대한 해석 이하는 2006년 11월 11일에 당시 2학년이었던 우기성 학생이 개인 메일로 물어왔던 질문입니다. 함께 읽어도 괜찮을 것 같아서 litedu.net에 옮겨 두었던 것을 플렛폼 이전으로 다시 함께 옮겨 둡니다. -------------------------------------------------------------------------------------------- [Q] 폭포 이형기 그대 아는가 나의 등판을 어깨에서 허리까지 길게 내리친 시퍼런 칼자욱을 아는가. 질주하는 전율과 전율 끝에 단말마(斷末魔)를 꿈꾸는 벼랑의 직립(直立) 그 위에 다시 벼랑이 솟는다. 그대 아는가 석탄기(石炭紀)의 종말을 그때 하늘 높이 날으던 한 마리 장수잠자리의 ..
재호 군의 '빈 자리' 개념에 대한 질문에 답을 하자, 민웅 군이 이 개념을 역설과 관련지어 생각하고는 또 질문을 했습니다. 그래서 거기에 대해서도 답을 해 주었습니다. ---------------------------------------- 선생님!!^^, 문학텍스트의 빈자리로 인해 역설도 생긴다고 봐도 될까요? 또한 복합적 정서가 나타날 수도 있는 거죠?(어제 공부한 건데..맞길 바라면서..ㅠㅠ) ---------------------------------------- 내가 '빈자리' 개념이 전제가 필요하다... 이렇게 말한 까닭을 생각해 봐라. 나는 이 결혼 반댈세 하는 태도가 느껴지지 않니? 빈자리는 본질적으로 저자(시인)의 진술에 담긴 진정성과 실체성을 인정하는 개념이야. 쉽게 말하자면, "독자..
꿈에 어제 꿈에 보았던 이름 모를 너를 나는 못 잊어 본 적도 없고 이름도 모르는 지난 꿈 스쳐간 여인이여 이 밤에 곰곰히 생각해 보니 어디선가 본 듯한 바로 그 모습 떠오르는 모습 잊었던 사람 어느 해 만났던 여인이여 어느 가을 만났던 사람이여 난 눈을 뜨면 꿈에서 깰까 봐 난 눈 못 뜨고 그대를 보네 물거품처럼 깨져버린 내 꿈이여 오늘밤에 그대여 와요 난 눈을 뜨면 사라지는 사람이여 난 눈 못 뜨고 그대를 또 보네 무러품처럼 깨져 버린 내 꿈이여 오늘밤에 그대여 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