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시 반쯤 집을 나와 언주로를 타고 북으로 달리다가 두 번 방향을 꺾어 동호대교를 건넜다 이렇게 몇 차례 길을 타고 방향을 꺾어가며 병원 장례식장에 이르렀을 때 삼일 낮밤이 꿈결 같이 지나갔던 지난 해 끝자락 아버지의 마지막 거소의 그 익숙한 분향소 안으로 걸어들어가는 내 검은 구두가 형광등에 연신 빛나고 검은옷의 얼굴들과 초췌한 유족 무심히 자기들끼리 얘기를 나누는 근조화환들이 분별되지 않은 채 늘어서 있었다 몇 번쯤 손을 탔을까, 지쳐 있는 국화 다발 속에서 그나마 앳된 놈 하나 뽑아 제단 위에 올려두고 한 번도 뵌 적이 없는 고인 앞에 예를 올렸다 그분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어느 문상객이 엎드려 절하는 도중 되내이고 또 되내이면서 아무리 반복해도 익숙하지 않을 이 일에서 얼마나 도망치고 싶어했을..
하룻밤이 지났다 모든 것이 그대로였다 밤을 새워 고심하던 문서 연애에 관한 문서 아직 이름도 갖지 못한 문서 하나 사라졌을 뿐이다. 새기지 않은 서판에 남겨져 있지 않은 흔적에 미련이 머문다 만들다 만 요리에는 남겨져 있지 않은 흔적 존재하지 않는 조리에만 남은 차가운 흔적 연애에는 남아 있지 않고 좌절된 생각들에 상처로 남은 흔적 (2012.03.21) * 어떤 문서일지 고심하면서 백만 개의 단어를 소환하였다 모든 가능한 의미들에 '연애'가 가장 부합하였다 놓아 두었던 단어가 다시 돌아왔다
지난 해 돌아가신 아버지는 은퇴 전에는 목사이셨다. 32년인가 목회 활동을 하셨는데, 그중 절반 이상 병중에 계셨다. 그래도 젊은 시절에는 매우 활달하셔서 일에 대한 욕심도 크고 타지로 다니시기도 꽤 하셨더랬다. 해외 선교도 자주 나가셨는데, 그 당시 선교사를 지원 받는 처지에 있던 한국의 상황에서 외국으로 선교를 나간다는 건 어린 나이에도 좀 이상하게 여겨졌다. 나중에 생각하기로, 그건 아버지의 자기 성취욕을 반영하는 것이었다. 아버지가 봉사하는 교회의 규모는 내가 대학생이 되면서 집을 벗어나기까지의 20년 가까이 별로 바뀐 게 없었다. 게다가 이미 80년대에 들어서면서 이른바 기독교의 부흥기에 동료 목회자들의 교회는 준대형이나 대형 교회로 커 가고 있었다. 그 시절 아버지의 입장에서는 다른 방향으로의..
오늘은 Lamy 2000. 라미의 대표적인 만년필이지요. 강화 유리섬유(Makrolon) 재질에 EF, F, M, B 네 가지 닙의 만년필들을 가지고 있지요. 단단한 촉감이지만 부드럽게 써지는 것이 강점입니다. 잉크가 잘 마르지 않도록 닙의 상당 부분이 피더 안으로 들어가 있습니다. 그중 이 녀석은 실사용. 캡의 끝 부분에 크랙이 있어서 글루 처리를 한 녀석입니다. 다른 식으로 말하면, 편하게 가지고 다니고 편하게 써도 부담이 없다는 것! 귀찮아서 그냥 외관만 찍어 두었습니다만, 잉크 주입 방법은 플랜저 방식이며, 불투명에 가까운 반투명 창을 통해 잉크 주입 상태가 확인이 됩니다. 오늘은 톨스토이와 함께 사진을 찍었습니다. 연달아 사진만 올려 놓습니다. "근대적이며 기능적이고 인간 환경공학적 기술의 명백..
지난 토요일, 곧 3월 1일에는 둘째 딸아이와 서울풍물시장에 다녀왔습니다. 오랜만에 출사를 하려고 계획을 세웠다가 오히려 딸아이가 여길 가 보자고 보채는 바람에 그냥 D-lux4 하나 들고 지하철로 나왔습니다. 거리 노점이 철시되어 겉멀쩡한 시장으로 탈바꿈한 것은 서울시에서 개발한 재미없는 홈페이지를 통해 진작부터 알고 있었거니와, '2층에 담배 냄새가 심하다', '바가지 씌우는 게 도가 지나치다.' 등등의 구설들 때문에 실망하면 어떻게 하나 하고 걱정이 많이 되기도 했습니다. 이쪽으로 옮기기 전에 동대문 운동장 일부를 사용할 때에는 비록 단층이라고는 해도 분위기는 골동품 상가라기보다 고물 상가 같은 느낌이었더랬지요. 옮긴 곳은..... 여전히 마찬가지였습니다. 도저히 예상되는 고객이 있을 리 없을 고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