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8일부터 10월 1일까지 학과의 학술답사가 있었습니다. 답사 인솔을 위해 월요일 새벽 차로 학교에 내려가 간단히 준비하고 출발을 했지요. 3년마다 같은 코스를 다니게 되는데, 이번 답사는 전남 일대를 대상으로 합니다. 한 십 년전까지도 방언조사 같은 분과 활동도 있었지만 이제는 대개 문학 기행의 성격이 크지요. 송강정, 면앙정, 한국가사문학관, 소쇄원, 식영정, 영랑 생가, 다산초당, 그리고 보길도의 구석구석. 올라오는 길은 좀 여유있게 들러보는 것으로 하구요.
네비게이션 장치가 생기니 길눈이 더 어두워져서 이제 날로 새롭다는 생각이 잔뜩 듭니다.
소위 '미래형 교육과정'과 관련한 토론회에 참석해야 하는 터라 일정을 중간에서 마치고 부리나케 올라와야 했습니다. 그래서 이튿날 일정까지밖에 함께 하지 못했지요. 다행인지 영랑 생가까지 함께 갈 수 있어서 학생들에게 덜 미안했다고나 할까.
오늘 포스트는 태백산맥 문학관에서 본 만년필 얘기입니다.
작년 봄 경북 일대 답사 과정에 김동리, 황순원 문학관에서 본 아피스 만년필이 아직 기억에 생생한데, 이번엔 파카51입니다.
제게 만화의 궁극을 알려주신 화가-만화가 이희재 님이 그린 조정래 작가의 초상이 눈에 확 들어오는 문학관의 입구에는 육필원고지가 무겁게 쌓여 있었더랬습니다. 2층에는 아드님과 며느님이 필사하신 원고지들도 있더군요.
문학관은 여태껏 보았던 곳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 곳 중 하나였습니다. 벌교의 한 구석에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았습니다.
그 문학관 1층 중앙홀에 있는 진열대에서 조정래 작가가 사용하던 만년필을 보았습니다.
사진 아래 적힌 글 보이십니까?
다시 적어 놓자면, "'태백산맥'을 펴낸 만년필. 처음엔 볼펜으로 썼으나, 볼펜은 오래 쓸수록 볼펜 잉크 찌꺼기가 지저분하게 묻어날 뿐만 아니라 볼펜대가 가늘어 손가락과 손목의 피로를 더했다. 만년필은 그 두 가지 문제를 거뜬히 해결해 주었다. 아무 말 없이 그 많은 글씨들을 술술 만들어간 만년필의 노고가 컸다."
이 파카 51은 아마도 Mark 1인 듯한데요. 다들 아시겠지만, 5' 1/4'' 길이에 펜촉이 피드에 대부분 들어가 있어서 잉크 마름 현상이 현저히 약한, 따라서 흐름도 좋고 필압도 덜 요구되는 좋은 만년필입니다. 다만 제 개인적인 취향으로는 연성 닙을 좋아하는 터라 자주 쓰게 되진 않는 펜이기도 합니다. 기본으로 하나씩 가지고 다니긴 합니다. 어쨌든 이로써 작가의 펜을 하나 더 확인하게 되었네요.
* kyt0208의 지적에 따라 다시 살펴보았습니다. ㅠㅠ 그러니까 그 전까지는 제대로 살펴보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ㅠㅠ 제가 가지고 있는 만년필 중에 parker가 가장 적은 편이고, 관심도 덜했던 데다가 하필 21 모델이 없어서 구분하지 못했습니다. parker 21이 맞네요. 캡 하단의 모양이 달라져 있군요. 51과......
보너스로 옆 진열대에 있던 이름 없는(.... 링 모양 때문에 짐작은 되는데.... 정확한 이름은 모르겠습니다.....) 만년필들을 함께 구경하시겠습니다. 이런 글을 쓰노라면 제 책상 위나 서랍 속, 혹은 필통과 연필 주머니 들에 들어 있는 녀석들은 언제쯤 볕을 볼라나 안쓰러워지기도 합니다.
옛 사진을 찾아서 고 김동리 작가가 사용하던 아피스 만년필과 제가 따라 구해 본 Pilot 잉크펜을 보여드리겠습니다.
(20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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