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버렛소리 가득 차 있었다
우리집도 아니고
일가집도 아닌 집
고향은 더욱 아닌 곳에서
아버지의 침상(寢床) 없는 최후(最後)의 밤은
풀버렛소리 가득 차 있었다.
노령(露領)을 다니면서까지
애써 자래운 아들과 딸에게
한 마디 남겨 두는 말도 없었고
아무을만(灣)의 파선도
설룽한 니코리스크의 밤도 완전히 잊으셨다
목침을 반듯이 벤 채
다시 뜨시잖는 두 눈에
피지 못한 꿈의 꽃봉오리가 깔앉고
얼음장에 누우신 듯 손발은 식어갈 뿐
입술은 심장의 영원한 정지(停止)를 가르쳤다.
때늦은 의원(醫員)이 아모 말 없이 돌아간 뒤
이웃 늙은이 손으로
눈빛 미명은 고요히
낯을 덮었다
우리는 머리맡에 엎디어
있는 대로의 울음을 다아 울었고
아버지의 침상 없는 최후의 밤은
풀버렛소리 가득 차 있었다.
(분수령, 1937)
공간을 중심으로 읽기
조부 때부터 소금 밀무역에 종사해 온 이용악의 집안 내력은 그에게 특이한 북방 체험을 안겨 주었고 이는 시작 과정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이 시 또한 두만강과 압록강을 넘나들며 살아갈 수밖에 없던 한 조선인 가족의 비애를 다루고 있다.
가족들을 데리고 행상을 하며 연명하는 한 조선인 아버지가 죽었다. 가족들의 곡소리를 지워버릴 만큼 ‘풀버렛소리 가득 차’ 있는 이곳은 우리집도, 일가집도, 더욱이 고향은 될 수도 없는 공간이다. 이 이역 땅에서의 급작스러운 사망은 당시 조선의 모든 유이민에게는 숙명처럼 짐 지워진 것이었다.
아무런 설명도 없지만, 이 시의 감상을 위해서는 이렇게 질문해야 한다. ‘아버지가 죽음을 위한 어떤 준비도 없이 돌아가셨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침상도 없고(1연), 유언도 없고(2연), 편안한 죽음으로 인도할 의원도 없는(3연) 아버지의 객사(客死)는 작게는 무너져 버린 한 가족의 생존 기반을 보여 주며, 크게는 자기 땅 없이 유랑할 수밖에 없는 조선인의 처참한 삶의 조건을 보여 준다.
이 죽음을 자식의 시점에서 그려내면서도 객관적인 태도를 취한 것은 의도적인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말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지극한 슬픔을 드러내기 위함이다. 아버지의 주검 앞에서 자식들은 슬픔으로 가득 차 통곡하고 있는데, ‘풀버렛소리’는 이것을 지워 버릴 정도로 크게 들려온다. 내적 공허감이 그만큼 컸다는 뜻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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