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간 전쯤 들어와 있던 환자는 연방 신음을 내고 있다 그 소리는 절반은 여왕의 목소리 절반은 이방인의 목소리를 닮았다 소리는 전언의 중계자를 찾고 있었지만 신경 쓰는 사람은 나 하나인 듯했다 나는 통역의 능력을 갖지 않았다 그는 곧 이곳의 여왕이 될 것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이 성 안에는 나의 여왕이 있다 이 성에서 밤을 새 본 문지기는 알고 있을 것이다 이 밤중을 찾을 여왕 추대자들은 없으리라 그 대신 앞으로도 계속 들이닥칠 먼 나라의 사자들이 성 밖에 이미 도착해 준비하고 있다 소리는 점차 중계자 없이도 여왕의 권위를 닮고 있었다 나의 늙은 여왕은 그 사이에도 수많은 사자를 물렸고 그럴 때마다 칭병을 핑계로 삼았다 하지만 먼 나라에서 온 사자는 사랑도 없이 사랑의 징표를 잔뜩 준비했다 나는 늙은 여왕을 사랑했고 나는 기꺼이 문지기를 하고 있었고 나는 먼 나라에서 온 사자의 목적을 안다 문지기는 때로 근위병으로 여왕 찬탈을 막아야 하고 때로 성 밖의 사자들을 미리 알아 물리칠 파수꾼도 되어야 하지만 결국에는 점령군 앞에서 무기력한 투항자가 되어 여왕에게로 길을 안내하게 될 것이다 여왕의 소리가 들린다 나의 여왕이다 이방인의 소리가 들린다 나의 늙은 여왕은 이방인에게도 축복의 말씀을 내린다 이방인의 소리는 중계자와 관계없이 성 안을 울려퍼진다 곧 투항이거나 전쟁이 있을 예고의 소리마냥 비감하게 들리다가 두렵게 들린다 문지기에게는 그 소리를 통역할 능력이 없다 문지기는 통역할 수 없으니 침묵을 지키기로 한다 잠시 조는 동안 문지기는 그녀가 나의 여왕의 그림자 무사가 되는 꿈을 꾼다 잔인하게도 그림자 무사는 사자들의 표적이 된다 문지기는 성 안에 성벽을 쌓는다 문을 단단히 닫아 잠그고 신음도 새어 나가지 않게 한다 그녀는 난데없는 즉위식을 올리고 문 밖에는 사자들이 줄지어 서 있다 문지기는 한없이 비루하고 비겁해졌다 문지기는 침묵 뒤로 숨기로 한다 비겁하고 비열한 문지기였다
(1992.2.9.) (202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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