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전까지만 해도 얼리어댑터였다.
10년 전에는 얼리의 욕망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그 전까지는 구닥다리 지향이었다. 이를테면 오래된 타이프라이터와 축음기, 사진기 등등...
나이가 먹어가면서 얼리로 가는가 싶을 정도로 한 동안 신기한 스터프들에
전기, 전자 제품들이 잡동사니처럼 모였다.
그게 다 부질 없는 것마냥 좀 시들해졌다.
무엇보다 얼리를 따라가기 벅차게 되었기 때문이다.
계속 얼리어댑터로 남기 위해서는 두 가지 요건이 갖추어져야 한다.
하나는 같은 일도 계속 새로운 방식으로 실행할 만한 집착이나 여유가 있어야 한다.
또 하나는 이 일에 쓰일 제품들을 끊임없이 확보할 만한 돈과 정보가 있어야 한다.
집착이 안 생기고, 여유가 없어지고, 돈이 부족하고, 정보만 들고 나니,
얼리어댑터로서의 장점도 그닥 없어지고 말았다.
뭐, 능력이 안 되서 눈을 돌린 건 아니고.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고 있는 중이다.
스터프들은 모아서 처분할 방안을 모색하고 있는 중이고,
이제 그 자리에
타자기, 만년필, 연필, 연필깎이, 공책 등등이 자리를 잡기 시작한다.
요즘 취미가 뭐냐고 누가 묻는다면, 그래서, 세 가지쯤 얘기하게 된다.
그 첫째는 궁극의 First Aid Kit을 만드는 것.
따지고 보면, 일반적인 First AId Kit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생존 도구들에 대한 집착이라고 할 것 같다.
평소에는 별 필요도 없는 것이지만, 하나하나 장만하고 패킹을 하면서 그냥 흐뭇해진다.
아마도 어릴 적의 공포의 반공교육 때문에 무의식에 각인된 취향인지도 모른다.
요근래에는 에너지 확보와 문명적인 삶이라는 주제로 인터넷을 뒤지고 다니는 중이다.
(우스운 것은 이렇게 해서 평생 혼자서도 생존할 수 있고 심지어는 노트북까지 사용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 봐야 먹을 게 없어서 달포도 못 견디는 일이 생길 것이 분명하다는 것이지만....)
둘째는 기록 매체를 수집하는 것이다. 이미 말했지만....
필기구로부터 노트, 수첩, 저장장치와 매체, 각종 형식의 문서 작성기, 그리고 노트북, 녹음기, 사진기, 캠코더 같은 것들이 모두 여기에 해당한다.
아무래도 비용이 많이 들어가서 틈틈이 실행할 수 있는 것은 필기도구와 수첩들이 고작이지만,
그래도 항상 목록을 만들어 가면서 외장 기억의 안전한 실현을 꿈꾸고 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동안에는 황동으로 만든 연필깎이를 이베이에서 구입하고 있다.
이것도 출발은 Graf von Faber Castell의 Perfect Pencil 때문이었다.
그걸 예전 모델과 새 모델 다 구비하고 나서 보니
이번에는 실사기가 필요하다.
전자동 연필깎이까지 구비해 두었고, 매카니컬 팬슬, 이른바 샤프도 그저 원 없이 가지고 있지만
칼로 연필을 깎거나 수동 연필깎이로 연필을 깎는 즐거움은 비할 바 아니다.
어디까지 수집이 될지 자못 궁금하다.
그리고 셋째는 기록하는 것이다.
주로 취미와 직업에 두루 적용되고 있다.
직업만큼 취미에 기록의 시간을 쓰고 있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이 일은 항상 하고 있는 일이니까.....
지금도 그 일을 하고 있는 게 아니냐.
(20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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