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마다 자신이 속한 세대에 대한 그럴 듯한 이유를 붙이길 좋아한다. 비록 무임승차를 한 셈이라도 6.25세대이니, 6.3세대이니, 유신세대니, 80세대이니, 386세대이니 하는 식의 세대 범주 속에서 자신을 정당화하는 걸 용케도 잘 배운다. 그 세대가 나이를 먹어가면서 여전히 유지되지도 않을텐데, 집착하는 것은 결국 자신의 정체성을 현재나 미래에서 못 찾고 과거에서 찾으려 하기 때문은 아닐까. 그래도 세대 범주의 유용성이 여전히 남아 있는 한, 사람들은 이름 붙이기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나도 그렇다. 대학생 때는 아직 386세대니 뭐 그런 명칭도 없었거니와 민주화세대 이런 이름이 가당치도 않았으므로 무슨 정체성에 대한 혼동이 좀 있기는 했는데 그때 내게 '6.8세대'는 6.3세대나 80세대보..
[시사인] 113호(11.14)에 실린 이영미의 '사극의 최정점에 등극했노라'라는 비평은 의 성공의 비밀에 대해 이렇게 결론 내린다. 무언가 배우고 싶을 정도로 수많은 미덕(단순한 매력이 아닌)을 지니고서도 나쁜 정치인일 수밖에 없는 미실을 얼굴의 오른쪽과 왼쪽, 입과 눈과 눈썹이 다 따로따로 움직이며 복잡한 심리를 보여주는 섬세한 연기로 강렬하게 소화해 낸 고현정은 이 작품이 성공한 이유이자 일등공신이다. 다른 대목은 다 지워 버리고 이것만 남겨 놓아도 이 비평은 매력적이다. 얼굴의 오른쪽과 왼쪽, 입과 눈과 눈썹이 다 따로따로 움직이며 고현정을 보면서 그런 생각이 잠깐 들기는 했더랬는데, 그걸 입 밖으로 내다니. 거기서 연기를 읽어내다니. 대단하다. (이건 분명한 칭찬이다.) ps. 이제 연기자는 얼..
그저 알맞지 않은 성능의 카메라라 해도 한가위에는 차오른 달을 찍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다. 교과서 원고 쓰다가 갑자기 너무 늦지는 않았나 걱정하며 주섬주섬 카메라를 챙겨 나섰다. 세상이 너무 많은 빛을 끌어다 쓰고 있어서 밤이 늦어도 어둡지 않고 별은 빛을 내지 못하고 있었다. 삼발이(Tripod)에 캐논 30D을 얹고 무선 리모콘을 장치한 다음에 시간 우선으로 몇 장 찍었다. 필터 없이 노출만으로 달을 잡으려니 대부분은 노출 과다로 실패. 간신히 몇 개 건졌다. 렌즈는 시그마 18-200mm 1:3.5-6.3. F 6.3 노출 1/4000 ISO 400 초점 200mm.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미안하다. 난 아직 찍는 게 고작이라 잘못 설정한 것 잘 모른다. 그냥 달 보고 소원을 말해 보기 어려워서.....
(며칠 지나기는 했지만 찍어두었던 사진이 보이는 바람에 포스팅해 둠) 답사 인솔을 갔다가 평가원 회의의 토론을 맡은 까닭에 바삐 서울로 올라왔다. 토론회 있는 30일 아침, 눈을 뜨고 보니 내가 있어도 존재감은 투명인간 같다. 집안에 아무도 없고, 국과 밥과 반찬은 각기 제자리에 있으되 낯설다. 밥 먹은 자리 흔적처럼 남겨두기도 싫고 설거지 할 그릇 여럿 만들어 두기도 싫어 간단히 빵식으로 대신하기로 한다. 준비하는 것도 간단하고 먹는 것도 간단하다. 이러면 신문을 읽을 수 있다. 먹을 땐 신문에 곁가지 붙은 듯했는데 먹고 나니 색감이 그럴 듯하다. 먹은 것들은 배를 불렸고 저 남은 것들은 눈을 즐겁게 한다. 먹고 난 장면이 괜찮게 느껴지는 건 오랜만이다. 너저분하지 않아서이다. 어떻게 먹었는지 짐작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