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최근 몇 년 동안 내가 근무하는 대학 밖에서 이와 비슷한 주제의 강연을 대여섯 번 정도 한 적이 있습니다. 매번 강연 원고를 준비하는 일이 만만치 않아서 고생을 하였는데, 이번에는 그 정도가 더한 것 같습니다. ‘국어교사의 전문성’이라는 큰 주제 아래 중등 국어과 임용 시험, 본래 이름대로라면 ‘중등교사신규임용후보자선정경쟁시험’에 대해 강연을 해 달라는 것 아니겠습니까? 학술 강연회를 기획하신 소장님이나 운영위원회에서 내가 이 주제를 감당할 만한 자격과 능력을 갖추고 있을 것으로 판단하신 게 아닌가 싶어 적이 부담스러웠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한 내 생각을 먼저 이야기함으로써 강연으로 비롯된 소통의 전제로 삼고자 합니다. 이것을 이해하는 것은 여러분에게 매우 중요할 수 있습니다. 나는 ‘국어교사의 전문성’에 관해서도 아직 충분한 식견을 갖추지 못하고 있고 중등 국어과 임용시험에 대해서도 아직 잘 모르는 것이 많습니다. 몇 차례 이 제도의 운용 과정에 참여한 적이 있습니다만, 책임 있는 발언을 할 만한 위치에 있어 본 적이 없습니다. 이태 정도 관련된 논문을 쓴 적이 있습니다만, 그것은 확신에 관한 것이 아니라 기대와 희망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말하자면 나는 중등 국어과 임용시험에 대해 여러분에게 명쾌한 답을 줄 수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주제의 강연을 맡게 된 것은 아마도 나 자신의 자격이나 능력보다는 이 주제와 관련하여 누구도 이와 같은 처지에서 자유롭거나 무관하지 못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올해에도 어김없이 중등 국어과 임용시험이 치러지게 될 것이고, 내년도 그렇게 되겠지만, 적어도 올해까지는 이 제도의 운용을 행정적으로나 기술적으로 전담하는 부서나 인력이 없다는 점을 확인해 둘 필요가 있습니다. 이 말은 중등 국어과 임용시험에는―다른 교과의 시험도 마찬가지입니다― 매뉴얼이나 관례는 있어도 기획은 없다는 것을 뜻합니다. 2008년이라는 시점을 기준으로 교원 양성 및 선발 정책에서 중대한 변화가 생겼으며, 현재 그 변화에 따른 선발 시험이 치러지고 있지만, 현실을 보면 여행은 시작되었으되 짐도 싸지 않은 그런 상황입니다. 이 자리의 일부 학생들이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듣고자 하는 말을 에둘러 해 주자면, 내년이든 그 후년이든 간에 앞으로 치르게 될 시험의 향방에 대해 책임 있게 말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것은 올해라고 해서 다르지 않을 것 같습니다.
조심스럽게 시작하기 위해 시험을 준비하는 학생들을 불안하게 만들었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반드시 비관적인 상황인 것만은 아닙니다. 그 이유를 설명하고 이제 사범대학이 지키고 챙겨야 할 것과 예비교사인 사범대학생들이 익히고 조심해야 할 것을 하나씩 살피기로 하겠습니다.
2.
입시 제도의 변화는 그것이 크든, 혹은 작든 간에 전국의 수백만 명의 학생들에게 희망을 주기도 하고 좌절을 주기도 하는 놀라운 위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몇몇 대학에서 입학 전형에 논술시험을 반영할 수도 있다는 말이 나오기라도 하면, 하면 당장 그 해부터 초등학생들을 상대로 한 논술교육이 흥성해집니다. 구술 면접 시험도 그렇고, 무슨 무슨 인증제를 시행한다고 하면 또 그것과 관련한 입시 준비 열풍이 부는 것을 막을 수 없습니다.
우리 사회에서는 ‘선발’이라는 교육-후-과정이 누군가는 들어서고 누군가는 그 밖에 남겨지게 되는 ‘좁은 문’과 같은 의미를 함축하고 있어서 교육 전체를 뒤흔드는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또한 그러한 영향력을 사회 전체가 공히 인지하고 있기 때문에 ‘선발’로서의 입시 제도는 매우 조심스럽게 준비되고 조율되는 편입니다. 만약 대학 입시 제도를 바꾸고자 한다면, 정책 입안자들은 이 제도의 시행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는 학생들이 적어도 교육과정이 이에 대비할 수 있는 교육 환경 속에 있어야 한다는 것을 고려하여 그 시기를 판단하게 됩니다. 통상 이러한 제도의 변경은 중학교 3학년 학생들, 혹은 그 이하 학년의 학생들을 첫 대상으로 삼아 이루어지게 됩니다.
새로운 교사 선발 제도가 대폭 바뀐 형태로 시행되었습니다. 입시가 아닌 임용 시험이기는 해도, 정부나 기업의 인력 채용처럼 불특정의 수험자를 대상으로 비차별의 선발 과정을 거치는 형식이 아닌 까닭에, 직접적으로 말해서, 특수 목적에 따라 처음부터 수험자의 수를 통제하고 대상 범위를 통제하고 교육과정을 통제하여 치르는 ‘차별적인 선발 과정’인 까닭에, 선발 제도의 변경에는 그에 따르는 제도적 대응의 충분한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쉽게 말하자면, 교사 임용시험 제도를 바꾸기 위해서는 사범대학 교육과정(을 비롯한 이런저런 교사 양성 과정)의 제도적 대응이 선행되어야 하며, 수험자인 사범대학생(을 포함한 교육과정 속에 있는 예비교사)들이 시험에 대비하기 위해 필요한 교육을 먼저 이수해야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중대한 제도의 변화는 적어도 2학년 교육과정을 아직 이수하지 않은 사범대학생이 그 대상으로 설정되어야 제도로서의 실효성을 가질 수 있게 됩니다. 하지만 어떻게 바뀌는지 구체적인 내용이 알려진 것도 없이 교사 선발 제도는 바뀌었습니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났습니다. 그 사이 우리는 새로운 제도를 받아들일 시간은 벌었을까요? 그런 준비를 할 수 있도록 교육과정은 바뀌었고, 바뀐 교육은 실천되었을까요?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만약 바뀔 필요가 있었다면 그건 ‘교사 전문성’을 갖추게 하는 방향에서의 교육과정 개편(그것도 전국적 차원에서)이 선행되어야 했겠지요. 하지만 시험 제도 개편 외에는 공론화된 바가 없었기 때문에, 이제 어떤 것이 국어교사의 전문성인지, 그 전문성을 갖추게 하기 위해 사범대학 국어교육(학)과의 교육과정이 충분히 대비했는지, 학생들은 제대로 숙련되고 사고하고 있는지 검증될 길이 없습니다.
앞서 ‘반드시 비관적인 상황’인 것만은 아니라고 하였는데, 역설적이게도 그것은 지금까지도 교사 선발 제도가 교사의 어떤 전문성을 평가하는지에 대한 공식적인 입장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해마다 시험의 향방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우면서도 임용시험을 출제․관리를 주관하고 있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으로부터 어떤 공식적인 발표도 들은 적이 없었습니다. 하기는 시험 직전에 관리 조직이 만들어지고 시험 이후에 해산되는 임시 본부가 있을 따름이니, 그보다 최소한 몇 개월은 앞서 예고해야 할 이 일의 판단 주체가 있기는 힘들겠지요. 그러다 보니 누가 출제위원으로 참여하느냐가 가장 유용한 정보가 된 적도 있었습니다. 이러한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교사의 자격과 능력을 교육과정의 외부에서 정치적이거나 정책적인 이유로 판단하는 문제는 어느 정도 막을 수 있다는 점이 다행스러운 일입니다.(하지만 앞으로 변경될 선발 제도에서 ‘3차 시험’으로 알려진 면접과 시연이 어떤 성격으로 시행되느냐 하는 점은 여전히 해결해야 할 문제로 남아 있습니다.)
출제․관리 주체의 공식적인 입장이 없는 까닭에 시험의 방향이나 강조점은 출제진의 숙고와 합의에 따르게 되어 있습니다. 금년의 경우도 지난 몇 해를 유지한 지속적인 흐름이 있기 때문에 이 방향이나 강조점은 쉽게 바뀔 것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수렴되어 온 방향은 교육내용의 이해․적용 능력과 교수․평가 능력을 중심으로 평가하는 것입니다. (출제․관리 업무가 고등교육 평가원으로 이관된다는 말이 있기는 하지만, 그렇게 하여 전담 부서가 생기는 것과 무관하게) 출제 위원 수가 늘어나고 인적 구성이 다양화된 만큼 출제의 실제도 한층 안정적이게 바뀔 것입니다.
다만 이를 위해서는 출제위원 개개인의 선호에 따라 출제의 방향이나 내용이 바뀌는 일이 생기기 어렵도록 학문․실천 공동체의 공통감(consensus)을 형성하는 일이 과제입니다. 그것은 대학이 해야 할 일이고, 내가 해야 할 일이기도 합니다.
3.
교사의 생애사를 교사 자신에 초점을 두고 정리한다면, 교사는 평생을 두고 성장하며 선발되며 거듭나는 존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무래도 이 과정에서 일차적인 책임을 지고 있는 주체는 각기 예비교사의 교사인 교수와 선발 주체인 국가와 학습의 주체인 교사 자신이라고 할 것입니다.
양성 과정에 초점을 두면, 과연 사범대학이 예비교사들로 하여금 교육내용의 이해․적용 능력과 교수․평가 능력을 갖출 수 있게 제도화되어 있고 실천하고 있는가 하는 점이 문제가 될 것입니다. 많은 예비교사들이 사실 이 문제로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기도 합니다. 제도적 여건이 갖추어지지 않아 여전히 국문학과 국어학으로 가득 채워진 강좌들을 수강하면서 학원에서 임용시험을 준비할 생각들은 합니다. 임용시험에 합격하면 대학이 합격률이나 합격자를 자랑하기 이전에 먼저 학원가에서 ‘본원 출신’을 자랑합니다.
제도적 여건은 갖추어져 있는데 교육이 부실하다고 불만을 갖는 예비교사들도 적지 않습니다. 사범대학이나 교수진의 개개 역량 때문이 아니라 여전히 국어교과학이 형성 중에 있는 실천 학문이기 때문입니다. 나도 이 문제로 매 학기마다 상당히 고생을 하곤 합니다. 아직 내 강의들에는 선택해서 쓸 만한 교과서가 없습니다. 한때는 논문들을 복사하거나 요약해서 교재로 쓴 적도 있었고, 한때는 복수의 교재를 정해 두고 쓴 적도 있었지만, 지금은 매번 내 스스로 학습하고 정리하고 교재로 만들어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러다 보니 다섯 과목을 맡은 이번 학기는 저녁 회합이 길어지기라도 하면 반드시 다른 하루의 이른 새벽 시간은 강의 준비로 지새워야 하는 일이 생기게 됩니다. 그러고도 다음 해에는 여지없이 새로 공부하고 새로 교재를 짜야 합니다. 개인의 능력으로는 완전은커녕 만족스러운 국어교과학의 강의 내용들을 갖추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이 자리에서 이런 말이 적합한지 모르겠지만, 개인적인 소망은 십년 된 강의록을 가져보는 일입니다.
아마도 전국에는 나 같은 교수들이 많을 겁니다. 그래서 좌충우돌하면서 국어교과학의 방향을 모색하고들 있겠지요. 이 자리에 있는 학생 중 일부가 혹시 지난 임용시험 문제들을 보았거나 혹은 임용모의시험이라는 명분으로 사범대학 교수들이 만들어 돌려 본 문제들을 보고는 자신이 배운 것과 차이가 많아 불안해하고 있다면, 너무 조바심 내지 말라고 이야기해 드리겠습니다. 학생들이 국어교육에 대해 고민하는 것처럼 교수들도 똑같이 고민하고 있습니다. 학생들이 방향을 잡지 못하거나 바로 그 방향 때문에 고민스럽다면, 그건 바로 나 같은 교수들이 그 문제로 고민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전공 교수로서 ‘교육실습’이라는 교직 과목을 맡아 가르치고 있기도 한데, 내가 가르치고 있는 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해 주곤 합니다. “사범대학에서 배운 지식은 교사가 된 첫해 동안 모두 소진하게 된다. 그 다음해부터는 자기 스스로 찾아가며 배워야 한다.” 내 경험이기도 합니다. 교사가 된 지 일 년이 지나면 사범대학에서 배운 것들의 가치가 없어지기 때문일까요? 일 년 후부터는 ‘반복하게’ 되고 반복하게 됨으로써 교육 실천이라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영혼과 정신을 살리고 살찌우는 일은 반복적인 일상의 직업 노동이 되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교사는 계속 배워야 하는 것입니다. 작년과 금년이 같을 수 없고, 금년과 내년이 같아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나는 그 대신에 사범대학에서 가장 중요하게 배워야 할 것은 국어교사로서의 관점과 지향이라고 말해 줍니다. 교사로 사는 것은 국어교사로서 사고하고 행동하며 태도를 갖는 것을 뜻한다고 말해 줍니다. 그것은 교과 지식이나 기법과는 달라서 평생을 가치 있게 유지되기도 한다고 말해 줍니다. 교육이 마치 고기 잡는 어부를 길러내는 것과 같다고 비유될 때, 고기 잡는 기술은 교육 내용에 관한 지식이나 수업 기법이 아니라 교육의 관점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것이 있어야 교사로서의 두 번째 해를 스스로 찾아 배우면서 보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자리에 앉아 있는 국어교육과 학생들이 사범대학생으로 자부심을 느껴야 한다면, 그것은 교직 과정을 거치거나 교육대학원을 다니면서 교사 자격증을 받게 되는 다른 예비교사들과는 달리 사 년 간 바로 그것을 배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속성 과정으로는 얻을 수 없는 가장 가치 있는 교육 내용입니다.
4.
교사의 선발은 국가의 통제권 아래 있을 뿐 아니라 직접적으로 통제되기도 하는 제도적 실천입니다. 수요에 대한 공급의 관계를 조절하는 것도 국가이고, 수요를 창출하거나 억제하는 것도 국가입니다. 하지만 항상 형식은 자율적인 시장 원리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처럼 되어 있습니다.
이 말을 하는 까닭은 여러분에게 거시 담론을 제공하려는 때문은 아닙니다. 이것은 교사가 되려는 예비교사에게 그가 공부해야 할 목표는 다만 수준으로만 나타날 뿐 수치로는 나타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지금 나는 국가는 교사의 전문성을 얻기 위한 학습의 끝을 결코 말하지 않는다고 이야기하고 있는 중입니다. 이것은 여러분으로 하여금 모순적인 상황에 빠지게 합니다. 수험생인 예비교사가 치르게 될 시험은 누가 보더라도 숙련된 교사의 능력을 묻는 시험이 될 수 없습니다. 적어도 교사라면 그 시험에 합격점을 얻고 남아야 마땅합니다. 실제로 그런가 하면 그렇지는 않습니다. 교사들이 풀기에도 어려운 시험이 시행되고 있습니다. 이는 공급이 지나치게 많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니 교사에게 필요한 전문성의 최소 수준이 아니라 시험 응시자의 공급에 따라 결정되는 한계-최대 수준이 교사 선발의 기준이 됩니다. 이 기준은 매년 바뀔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그러다 보니, 시험을 준비하는 예비교사들은 어디까지 무엇까지 공부해야 할지 알 수 없게 됩니다. 이미 충분히 갖추고도 당황해 하며 이것저것 뒤적거리는 학생들이 있는가 하면, 무엇이 부족한지도 알지 못한 채 당황해 하고만 있는 학생들도 생기게 됩니다.
실제 시험에서는 한계-최대 수준이 미세한 지표에 의해 구체화됩니다. 이것은 교사의 전문성 수준을 왜곡시키는 요인이 되기도 합니다. 만약 여러분이 내가 강의하는 과목을 수강하고 있다고 가정하고 이 과목의 평가가 중간시험과 기말시험과 보고서와 참여와 출석이라는 다섯 가지 기준에 의해 이루어지며 이들 각각이 30%, 30%, 20%, 10%, 10%의 비율로 평가 비중을 갖는다고 해 봅시다. 그리고 여러분은 이 평가 비중에 따라 성적 관리를 하면서 강의에 참여한다고 가정해 봅시다. 여러분이 주력해야 할 대상이 무엇인지 판단하기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평소 강의를 열심히 듣고 필요한 보충 자료를 잘 찾아보고 충분히 생각하는 것이 중요할 것입니다. 그런데 수강생은 많고 상대평가를 해야 하며 평가 결과에 대해 학생들의 이해관계가 놀랄 만큼 크기 때문에, 내가 객관화할 수 있는 모든 지표들을 가능한 한 엄격하게 평가하고 그렇지 않은 지표들에 대해서는 배점 차이를 적게 하여 학생들의 이의나 항의를 막으려고 한다고 하며, 출석 점수나 선택형 평가로 치러지는 어떤 시험은 원래의 평가 비중에 비해 과도해 커진 중요성을 갖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산출된 평가 결과가 여러분이 내 과목을 이수함으로써 갖게 된 능력을 제대로 판단할 수 있게 할 것인지는 의문의 여지가 있겠지요. 마찬가지로 현재의 교사 임용시험은 교사에게 요구되는 전문성의 수준을 왜곡시킬 여지가 있습니다. 사실 그럴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봅니다. 임용시험에 합격되는 응시자의 구성을 보면 미루어 판단할 수 있습니다.
나는 국어교사의 선발 과정도 이러한 제도적 조건 하에 있기 때문에 동일한 문제를 안고 있다고 판단합니다. 이 문제의 원천은 과도히 많은 응시자의 공급이고, 임용시험 제도의 불완전함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여러분과 직접적으로 관련한 두 가지 사안을 해석해 볼 수 있습니다. 우선 금년도 임용시험에 응시하는 학생들은 여전히 이 문제로부터 자유롭지 못합니다. 내가 앞서 말한 바 있는 교사 전문성의 최소 수준, 곧 ‘국어과 교육내용의 이해․적용 능력과 교수․평가 능력’은 기준점은 되지만 실제 시험에서 어떻게 다르게 실현될지는 확정적으로 판단할 수 없습니다. 다만 작년의 예에서처럼 교수․학습 방법과 평가 쪽으로 평가의 방향이 자리 잡은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할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니 교육과정 해설서를 외우는 방식의 준비는 이제 그만 두어야 할 때일 듯싶습니다.
3차 시험 중 핵심적인 평가 과정인 2차 시험의 형식은 ‘논문형’입니다. 출제진의 인적 구성도 늘어나고 출제위원이 채점위원의 역할을 (부분적으로는) 함께 수행하기도 하므로, 이전에 비해서는 질적 평가의 가능성이 높아진 것은 사실입니다. 시험의 방향이 그르지 않다면 국어교사의 전문성을 평가하기에는 좋은 여건이 마련될 것으로도 예측됩니다.
‘논문형’이라 해서 실제 논문을 쓰는 방식이 되지는 않을 것이므로, 교수 설계나 평가 설계를 묻는 방식은 앞으로도 국어교육론 평가에서의 핵심이 될 것입니다. 이를테면 교수․학습 과정안(의 핵심적인 과정)을 작성하게 하거나 체계적인 발문 계획안을 작성하게 하거나 혹은 평가 문항을 직접 만들어 보게 할 수도 있습니다. 굳이 ‘논문형’이라 했으니 90년대 중반의 임용시험에서와 같은 작품 해제를 답안으로 요구하는 문제는 배제하려는 의도임을 알겠지만, 그렇더라도 논술 형식을 취한 좀 더 심화된 평가 문항이 나올 수도 있을 것입니다.
어찌 되었든 이런 방식의 평가가 이루어진다면, 그에 대비한 학습도 여러분에게는 요구될 수밖에 없습니다. 나는 그 학습의 내용을 크게 세 가지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현실 언어의 이해와 수행 능력의 구비, 또 하나는 학생들의 언어에 대한 이해와 평가 능력의 구비,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현실 언어와 학생들의 언어를 만나게 하는 상호 작용 능력, 곧 교수 능력의 구비입니다.
5.
대학에서 거의 하루 종일을 지내는 처지이다 보니, 사범대학 교수로서 현장의 국어교사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별로 없는 것이 나의 개인적인 불만입니다. 교육대학원에서 수학하는 교사들과 담화를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것이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인데, 우연히 서로 다른 시간대에 서로 다른 교사의 유사한 처지의 하소연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한 명은 경력 7년 된 국어교사입니다. 요즈음 그녀의 고민은 학생들을 어떻게 관리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학교의 행정 업무를 능숙하게 처리해서 유능한 교사로 인정받는 것도 관심의 대상입니다. 어떻게 가르치느냐 하는 것은 이제 별로 고민거리가 되지 않습니다. 처음 발령을 받고 몇 년 동안은 교재 연구도 열심히 하고 수업 준비도 꽤 착실하게 했는데, 이제는 어느 정도 능숙해졌다고 합니다.
다른 한 명은 경력 17년 된 국어교사입니다. 그녀는 청주시 외곽의 한 고등학교에서 근무하고 있는데, 요즈음 그녀의 고민은 무단 외출․결과․결석, 집단 괴롭힘, 폭력, 흡연 등의 문제를 가지고 있는 학생들을 어떻게 하면 교실로 끌어들여올 수 있을까 하는 것입니다. 30명의 담임 학급에서 두어 명을 빼고는 그녀가 고민하고 있는 ‘문제아’들입니다. 학교 형편도 그런 편이라서 수업은 거의 포기 상태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그 아이들과 국어 수업을 하고 싶어합니다.
이들의 공통적인 고민은 국어 수업에서 발생하지 않고 학생 지도에서 발생합니다. 이들이 특별히 예외적인 교사들인 것은 아닙니다. 학교에 나가 보면, 수많은 교사들이 교과교사로서보다는 생활지도교사로서, 행정처리교사로서 자신의 삶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이것 참 난감한 일입니다. 사범대학은 교과학 중심으로 구성된 학과나 전공들을 폐지하고 상담학이나 생활지도학과 같은 전공을 중심으로 한 학과나 전공을 만들어야 할까요?
여기 이 교사들의 고민은 상담 전공자나 생활 지도 전공자가 아니라서 겪는 것이 아니라 국어교사로서의 전문성을 충분히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교사로 발령을 받은 까닭에 겪는 것입니다. 앞서도 언급했듯이, 교사로 산다는 것은 국어교사로 산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사범대학에서 공부하는 4년 내내 자신의 소속을 국어교육(학)과로 두어야 할 필연성은 없습니다.
국어교사로서 교사의 삶을 사는 것은 위에서 언급한 교사들의 고민을 국어교사로서 해소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뜻하기도 합니다. 많은 교사들은 이런 고민을 일반적인 교사라는 맥락에서 해소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일반적인 교사’라는 맥락에는 문제 해결의 답도 방향도 없습니다. 배운 적도 없고 항상 실천하는 것도 아닙니다. 어떤 교사들은 이런 고민을 국어교사로서 해소하기 위해 수업을 어떻게 할까 고민합니다. 앞에서 소개한 17년 경력의 교사도 이런저런 방법을 다 동원해서 국어수업을 해 봤다고 합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꿈쩍도 하지 않았는데, 내가 보기에는 이 교사가 학생들을 교육내용으로 끌고 가려고 했기 때문에 그랬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학생들을 교육내용으로 끌고 가는 대신 학생들이 원하는 것을 해 준다고 문제가 해결될까요? 만약에 학생들이 교과서보다 만화책을 좋아한다면 만화책을 던져주어야 하는 걸까요? 내가 아직 파릇파릇했을 때(그때 나는 교사였습니다.), 교실에는 「드래곤볼」 같은 일본발 번역 만화책을 쉬는 시간에도 공부 시간에도 읽는 붐이 일었더랬습니다. 교실에서 빼앗아 잠시 맡아두었던 만화책만도 수백 권은 될 겁니다. 학생들에게 만화를 보는 것은 참 덧없는 일이었지만, 그 중 일부는 그 만화에 매료되어 아직 번안되거나 번역되지 않은 만화책을 찾아 청계천 등지를 헤매기도 했을 겁니다. 그 중 일부는 어렵게 구한 만화를 보기 위해 일본어를 배웠을 것이고, 만화에 대한 매료가 지극한 나머지 만화가의 다른 만화들과 그 만화가에 대한 일본의 만화 비평들과 만화 시장과 만화로부터 파생된 문화까지 관심을 넓혔을 겁니다. 오늘날 문화계에서 활동하고 있는 사람들 가운데 이렇게 성장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의 성장은 매우 더뎠을 수도 있고, 그래서 일부는 학창 시절 도저히 가망 없는 아이처럼 보였을 수도 있지만, 그 틈새와 희소성의 가치 시장에서 그들은 조금씩 성장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만화에 빠진 모든 ‘가망 없는 아이’들이 그렇게 되지는 않았겠지만 어떤 아이들은 이렇게 성장했다면, 그 차이는 무엇이었을까요?
나는 그 차이를 교사들이 볼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영화 ‘위험한 아이들(Dangerous Minds)’에서 영어 교사인 루엔 선생은 딜런 토마스의 자리에 밥 딜런을 데려옵니다. 밥 딜런의 가사가 여느 팝이나 록의 가사였다면 실패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루엔 선생은 어디서 그것을 배웠을까. 만약 여러분이 장차 저 고민 많은 교사처럼 극악의 교육 환경 속에 놓이게 된다면, 여러분은 어디서 배워 갖추게 된 능력을 이때 사용할 것입니까?
* 2010년 4월 28일 관동대학교에서 강연한 내용입니다. (최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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