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학년도 중등 임용 시험 국어과 문제에서)
내 유년 시절 바람이 문풍지를 더듬던 동지의 밤이면 어머니는 내 머리를 당신 무릎에 뉘고 무딘 칼끝으로 시퍼런 무를 깎아주시곤 하였다. 어머니 무서워요 저 울음소리, 어머니조차 무서워요. 얘야, 그것은 네 속에서 울리는 소리란다. 네가 크면 너는 이 겨울을 그리워하기 위해 더 큰 소리로 울어야 한다. 자정 지나 앞마당에 은빛 금속처럼 서리가 깔릴 때까지 어머니는 마른 손으로 종잇장 같은 내 배를 자꾸만 쓸어내렸다. 처마 밑 시래기 한줌 부스러짐으로 천천히 등을 돌리던 바람의 한숨. 사위어가는 호롱불 주위로 방안 가득 풀풀 수십 장 입김이 날리던 밤, 그 작은 소년과 어머니는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할까?
- 기형도, '바람의 집-겨울 판화 1'
장면에 대해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이 작품의 장면 이동은 '과거-현재'라고 하던데, 이게 왜 그런 건지 잘 이해가 가질 않습니다.
'내 유년시절'이라고 표현이 등장하는데, 어떻게 장면에서 현재가 포함되지 않는 것인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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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 참 쉬운 질문일세. ( - -;; )
서술 층위와 서술 속의 사건 층위는 '같은 개념'이 아니지? 그건 소설에서나 시에서나 상황과 사건이 있으면 발생하는 층위의 차이야.
서술 층위는 주체(서정적 주체, 시인)의 문제이고 사건 층위는 인물(화자)의 문제인데
시에서는 대개 서정적 주체와 화자가 '나'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보니, 혼동을 주는 일도 많아.
이 문제는 어떻게 해결?
1 우선 (나) 시에서 현재의 '나'에 관한 정보를 알 수 있는 부분이 없지?
그러니까 현재의 '나'(그게 화자인지, 서정적 주체인지는 아직 모르더라도)에 관해 말하고 있지 않다는 뜻이야.
그렇다면 현재의 '나'는 사건 속에 있지 않다고 할 수 있겠네.
즉 적어도 현재에는 사건 층위에서 '나'가 등장한 게 아니라는 뜻
2. 내 '유년 시절'에 관한 얘기 속에 비로소 사건이 존재하지?
그리고 거기에 '나'의 존재가 자리잡고 있는 게야.
그러니까 사건 층위는 과거라는 뜻이지.
현재의 '나'는, 적어도 이 작품에서는, 거의 '과거의 나'로 인해 의미 있는 존재가 되고 있는 셈이고
그래서 현재의 '나'는 과거의 '나'에 종속되어 있는 셈인 거지.
3. 질문은 이 작품의 장면 전환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느냐는 것인데,
실상은 '현재-과거-현재'가 아니라, '과거-현재'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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