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상은 무엇을 하는가
심상은 마음에 맺힌 상이다. 이 말이 은근히 드러내는 바, 그것은 일종의 공간적 비유이다.(반면에 율동은 시간적 비유에 속한다.) 그러니 나의 내면(이것도 공간적 비유이다.)과 외면 사이의 대응 관계로서 심상이 존재한다고 보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그것은 거울에 반사된 모습과도 같을 수 있고, 혹은 등불에 비춰진 모습과도 같을 수 있다. 만약 거울의 상을 심상으로 본다면, 비추어지는 대상인 실제가 있어야 마땅하다. 반면에 등불의 상으로 심상을 본다면, 세상 만물이 모두 심상이 된다.
아주 단순화하자면, 빛과 그림자의 관계가 적절한 비유가 될 수 있겠다. 만약 빛이 밖으로부터 온다면 그림자는 빛을 등지고 거울에 드리울 것이고, 반면에 빛이 안쪽에서부터 퍼진다면 그림자는 바깥쪽 어딘가로 향하게 될 것이다. 다만 어느 쪽이든 우리는 상을 통해서만 사물을 보게 된다. 빛은 보이지 않는다. 마치 어둠이 그러하듯이……. 하지만 그림자는 빛에 의해 생겼으면서도 빛의 현존(present ; 존재의 현재성, 혹은 현재적 존재)을 증명하는 유일한 존재자이다. 그림자를 보고서야 비로소 빛과 어둠을 가늠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이 비유는 심상의 두 가지 큰 특징을 적절히 지적한다. 첫째는 심상이 원래의 사물를 대신하는 표상이라는 것. 그래서 예컨대, 다음의 시에서
사랑하는 나의 하느님, 당신은
늙은 비애(悲哀)다.
푸줏간에 걸린 커다란 살점이다.
시인(詩人) 릴케가 만난
슬라브 여자(女子)의 마음 속에 갈앉은
놋쇠 항아리다.
손바닥에 못을 박아 죽일 수도 없고 죽지도 않는
사랑하는 나의 하느님, 당신은 또
대낮에도 옷을 벗는 어리디어린
순결(純潔)이다.
삼월(三月)에
젊은 느릅나무 잎새에서 이는
연두빛 바람이다.(김춘수, 「나의 하느님」)
‘하느님’은 ‘비애’이고 ‘커다란 살점’이며, ‘놋쇠 항아리’이고, ‘순결’이 되기도 했다가 ‘연두빛 바람’이 되기도 한다. 이때 ‘하느님’은 원관념이라 불리며, 그에 대한 이상의 심상들은 보조 관념으로 불린다. 보조 관념으로 원관념을 대신한다, 혹은 보조 관념으로 원관념을 표상한다고 하는 것이다.
둘째는 심상이 보이지 않는 사물의 속성을 드러내 보이는 역할을 한다는 것. 그러니까 ‘하느님’은 보이지 않거니와 이 존재의 어떤 것도 쉽게 규정할 수 없기에 이를 우리가 이해하는 대리물을 통해 드러낸다는 것이다. 예컨대 ‘하느님’은 우리가 범접하기 어려운 초월적 존재이고, 따라서 그의 존재가 얼마나 무궁한가 하는 것조차 알기 어렵다. 그렇기에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늙은 비애’ 같은, 오히려 우리가ㅇ대할 수 있는 인간적 수준으로 그의 존재를 끌어내려 이해하려 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심상은 언어의 비유적 기능으로도 이해될 수ㅆ다.
(최지현)
(그림 자료 출처 : http://www.art-wallpaper.com)
위 사이트에서 따 왔음. 역시 저작권 문제는 해결 못하고.... Modersohn-Becker Paula의 Reiner Maria Rilke의 초상화입니다. 전기 표현주의 작품으로 독일 브레멘에 있는 Samlung Ludwig Roselius Museum에 소장되어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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