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상은 언어와 어떤 관계에 있는가
심상이 사물을 대리하는 방식은 크게 세 가지로 유형화될 수 있다. 첫째는 사물의 본성과 형상을 함께 대리하는 방식으로, 이때 심상은 상징이 된다. 예컨대 심훈의 「그날이 오면」에서 ‘그날’은 절대절명의 염원을 함축한 그 무엇이 된다. 그러니까 ‘그날’은 단순히 해방의 그 날로 환언(paraphrase)할 수 없는 것이며, 그 까닭에 역사적 기록에 머물지 않고 문학이 되는 것이다.
그날이 오면, 그 날이 오며는
삼각산(三角山)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한강(漢江)물이 뒤집혀 용솟음칠 그 날이
이 목숨이 끊기기 전에 와 주기만 할 양이면
나는 밤하늘에 날으는 까마귀와 같이
종로(鐘路)의 인경 머리로 드리받아 울리오리다.
두개골이 깨어져 산산조각 나도
기뻐서 죽사오매 오히려 무슨 한(恨)이 남으리까.
그 날이 와사, 오호 그 날이 와서
육조(六曹) 앞 넓은 길을 울며 뛰며 뒹굴어도
그래도 넘치는 기쁨에 가슴이 미어질 듯하거든
드는 칼로 이 몸의 가죽이라도 벗기어
커다란 북을 만들어 둘처메고는
여러분의 행렬(行列)에 앞장을 서오리다.
우렁찬 그 소리를 한 번이라도 듣기만 하면
그 자리에 꺼꾸러져도 눈을 감겠소이다. (심훈, 「그날이 오면」)
원래 어떤 날도 감각적인 대상이 될 수 없다. 하지만 시인의 입을 빌린 ‘시적 주체’에게 이 날은 하루 하루의 어느 날이 아니며, 숫자상으로 존재하는 어떤 날도 아니고, 삼각산을 일으키고 한강 물을 용솟음치게 하는 역동적인 존재로 받아들여진다. 이때 심상은 사물에 절대성을 부여하게 되어 하나의 상징을 만들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심상을 상징적 심상(또는 상징적 이미지)이라 한다.
둘째는 사물의 형상을 대리하는 방식으로, 이때 심상은 비유가 된다. 심상의 일반적인 용례가 여기에 속한다. 예컨대, 「논개」(변영로)에서 ‘석류 속’은 ‘입술’을 대리하는 심상이다.
거룩한 분노(憤怒)는
종교(宗敎)보다도 깊고
불 붙는 정열(情熱)은
사랑보다도 강하다.
아! 강낭콩꽃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양귀비꽃보다도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
아리땁던 그 아미(蛾眉)
높게 흔들리우며
그 석류(石榴) 속 같은 입술
죽음을 입맞추었네!
아! 강낭콩꽃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양귀비꽃보다도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
흐르는 강물은
길이길이 푸르리니
그대의 꽃다운 혼(魂)
어이 아니 붉으랴.
아! 강낭콩꽃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양귀비꽃보다도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 (변영론, 「논개」)
‘입술’도 그러하거니와 ‘석류 속’은 더욱 강렬한 감각적 대상이기 때문에, 원관념에 속하는 ‘입술’의 감각적 자질은 상승하는 효과가 생긴다. 이러한 방식의 심상은 ‘꽃다운 혼(魂)’에서도 나타나며, 심지어는 행위나 작용을 구체화하는 ‘입맞추었네’ 같은 것에서도 나타나는데, 특히 후자의 경우는 심상이 사물의 시각적 전환만을 뜻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셋째는 심상 자체를 대리하는 방식으로, 여기에는 첫 번째와 두 번째의 심상을 또 다른 보조 관념으로 꾸미는 것과 마음 속에서 생기(生起)하는 정동적 작용을 감각화하는 것이 포함된다. 이 방식은 공통적으로 심상이 대리하는 사물을 근원적인 것으로 여긴다는 특징을 지닌다. 그러나 그것은 상징처럼 본질에 육박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대리하고자 하는 근원적인 대상(표상에 대한 표상이므로)에 도달할 수 없기 때문이며, 어떤 의미로는 그 근원적 대상이 문제되는 것이 아니라 심상 자체가 문제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때 심상은 자율적인 기호적 체계가 된다.
무엇에 대한 심상을 대리하는 방식으로는 “그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유치환, 「깃발」)을 예로 삼을 수 있다. 여기서 ‘그것’은 ‘깃발’을 뜻하는 데, 이것 자체가 생명의 근원, 혹은 영원성이나 존재의 본질 같은 궁극적 가치를 추구하는 인간의 숙명성을 대리하는 심상으로 존재하고 있어서, 다시 ‘소리 없는 아우성’이 그것을 대리하는 격이 되었기 때문이다. 대개 이러한 심상의 예는 관념시나 잠언시 같은 데서 많이 찾아볼 수 있는데, 경우에 따라서는 정치적, 종교적, 민족적 탄압이 극심한 암울한 시대를 배경으로 풍자적이거나 비판적인 시들에서도 이러한 심상이 자주 활용된다.
한편 마음 속에 생기하는 정동적 작용을 감각화하는 방식으로는 김영랑의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을 예로 삼을 수 있다.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같이
풀 아래 웃음짓는 샘물같이
내 마음 고요히 고운 봄길 위에
오늘 하루 하늘을 우러르고 싶다.
새악시 볼에 떠오는 부끄럼같이
시(詩)의 가슴에 살포시 젖는 물결같이
보드레한 에메랄드 얇게 흐르는
실비단 하늘을 바라보고 싶다.
여기서 ‘햇발’이나 ‘샘물’은 하늘을 ‘우러르고’ 있는 내 마음을 표상한다. 이 마음은 어떤 본질이 아닌 어떤 상태, 즉 ‘우러르고’ 있는 상태를 가리킨다. 그러므로 그 뜻을 풀이하기란 다른 심상들에 비해 어렵고 곤란할 수밖에 없다. 그것 역시 근원적 존재성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다. 우리가 이 시를 순수시라 부르는 까닭은 그것이 현실 세계로부터 거리를 두기 때문인데, 거리를 둔다는 것은 이 심상의 작용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최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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