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독(誤讀, misreading) :
일반적으로 ‘오독(misreading)’이란 텍스트의 의미를 잘못 해석하는 것을 뜻하는데, 이는 어원상 ‘측정용 막대기’를 뜻하는 kanón, 곧 ‘원전(canon)’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전통적으로 해석은 이러한 원전 개념에 따라 오독을 금기시해 왔고, 같은 전통에서 신비평가였던 윔셋과 비어즐리(William Wimsatt and Monroe Beardsley)는 오독의 원인으로 ‘의도의 오류(Intentional Fallacy)’와 ‘감정의 오류(Affective Fallacy)’를 들기도 했다. 그러나 하이데거(Martin Heidegger)나 가다머(Hans-Georg Gadamer), 야우스(Hans Robert Jauss) 등의 현상학적 해석학자들이 독서를 ‘해석학적 순환(hermeneutic circle)’ 위에 위치지운 이래 오독의 문제는 회피하거나 금지시킬 문제로서가 아니라 독서의 본질적인 조건으로 인정되는 입장이 힘을 얻게 되었으며, 후기 구조주의자들에 오면, 오독은 창조적 독서로서 인정되는 경향을 갖게 되기도 하였다.
예컨대, [영향에의 불안(Anxiety of Influence)]이나 [오독의 지도(A Map of Misreading)]에서, 헤롤드 블룸(Herold Bloom)은 불확정성으로 인해 우리 자신은 텍스트의 정확한 의미가 어떤 것인지 확신할 수 없으며, 모든 독서는 오독이 될 수밖에 없다고 말한 바 있다. 그 뿐 아니라 데리다(Jacques Derrida)에 이르면, 독서 행위는 ‘자유로운 놀이(freeplay)’라는 개념으로 설명되기까지 한다. 이는 텍스트의 의미가 텍스트밖에 존재하고 그에 따라 어디에도 고정된 의미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라 하겠다.
그러나 창조적 오독은 독자의 일면적이고 주관주의적 공격을 합리화하는 것이 될 때 오해를 낳는다. 만일 우리가 독서 과정을 대화의 과정으로 인정할 수 있다면, 텍스트에 기입된 의미화의 망상(網狀)들이 의미화 과정에 작용하기도 한다는 점을 인정할 필요도 있을 것이다. 고정된 의미의 결정성을 유보하는 것이 의미의 부재를 뜻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misterious)
* 그림에 대한 보충 : 이 글에 사용할 그림을 찾다가 앤드류 바세비치의 History that Makes Us Stupid에 대한 서평에서 이 그림을 처음 봤을 때 그림이 misleading을 나타낸다고 생각하곤 다른 그림을 찾으려 했다. 다시 읽어 보니, 의미상 misleading과 상통하기는 하나 사용 가능한 과거(맥락으로 이끌어올 만한 과거의 사례를 나타내려 한 듯)를 잘못 읽게 되었을 때 발생하는 문제를 다룬 것이었다. 내 오독은 실제로는 글을 읽기 전에 발생한 것이어서 '캠릿브지' 현상과 닿아 있는 것일 수도 있지만, 오독이 아무 맥락 없이 발생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또한 드러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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