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에 대한 풀이들을 본다.
인터넷 검색을 하면 목록의 상단에 올라오는 풀이들을 말하는 것이다.
풀이들이 가리키는 부분은 매우 국소적이다.
예를 들어 '~습니다'에 밑줄 쫙. 대상에 대한 존중과 존경의 마음을 담아 냄.
이런 식이다.
여기에는 '-습니다/-ㅂ니다'에 대한 문법적 정보 이상이 담겨 있지 않다.
이것이 작품에 대한 어떤 이해의 도움이 된다는 걸까?
물론 작품 이해를 위해서는 상향식이든 하향식이든 먼저 해독이 되어야 할 것이므로, 그런 의미에서 밑줄의 각별함을 생각해 볼 수는 있을 것이다. 아울러 이 경우 왜 하필이면 이 어휘들에 밑줄일까, 이 정도면 작품의 모든 어휘들 밑에 밑줄이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의구심이 동반되기도 한다.
잉여적 지식이라도 작품 이해에 방해만 안 된다면 없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느냐는 반문도 있을 법한데, 그것이 작품 이해에 도움이 되지 않는 한 이해의 맥락들이 기억되는 데에는 방해되는 게 틀림없다.
이 밑줄의 풀이들은 해당 페이지를 닫고 나면 기억되지 않을 것이다.
아니, '습니다'가 겸양의 선어말 어미에 평서형 종결어미가 붙은 것이라는 지식은 이러나저러나 기억에 남아 있을 수는 있으니,
수정하여 이렇게 쓰면,
작품과 관련하여 기억에 남아 있지 않게 될 것이다.
그러면 나는 지금 질문을 해야 한다.
이해한다는 것은 기억한다는 것이다.
기억하지 못하면 이해의 유효성이 사라지게 된다.
그렇다면 잊혀지는 것들이 어떻게 이해될 수 있다는 것인가.
이해될 수 없는 것들을 왜 애써 이해하려 해야 하는가.
그건 분석도 아니다.
그 풀이들 중에서 이런 것들을 모두 빼고 '분석'으로 남길 수 있는 것들을 남기면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지 않은가?
아래는 위에서 예 삼아 말한 것과는 다른 예이다. 원자료와 분석에 값하는 내용을 삭제한 수정 자료를 대비해 보였다.
김용택의 <그리운 그 사람>이라는 시에 대한 '작품 분석'(이라고 흔히 얘기되는) 부분이다.
분석에 값하지 않은 부분을 지우고 단순 자구 풀이, 동어반복에 가까운 환언, 해석의 정합성이 떨어지는 것으로 보이는 부분* 등을 지우고 나면, 이 풀이에서도 해석이 향할 방향을 파악할 수는 있다. 이 풀이에서 반복적으로 언급하고 있는 것은 '그 사람'이지만, 작품이 말하고 있는 실제 관심사는 '보이지 않'는 '그 사람'을 애타게 찾는 서정적 주체의 심리 태도이다. (해제로 붙은 두 부분의 대비되는 초점을 비교해 보는 것도 흥미롭다. 본문 아래 풀이는 화자의 심리, 본문 오른쪽에 정리된 내용은 시적 대상이 주로 나타난다.)
* 예컨대 '남산'은 자동적으로 서울 남산을 떠올리는 것이 자연스럽기는 하나, 맥락상으로 보면 이 산은 전북 순창군 순창읍에 있는 남산일 가능성이 크다. 김용택은 (순창군 북쪽에 인접한) 임실군 덕치면에서 출생하여 1969년부터 40년간 이 근방 지역의 초등학교에서 교사 생활을 하며 정년까지 섬진강을 이웃하며 살아왔다고 한다. 순창농고를 졸업하고 얼마 후 서울에 일자리를 보러 다니긴 했으나 그 후로 서울 생활을 하며 이 작품에서처럼 기록에 남길 인연을 남긴 것 같지는 않다. 작품에서 '남산'은 구체적인 지명과 관련한 사건 맥락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기보다는 '마을 앞' 또는 '남쪽'의 산이라는 볕 드는 곳의 이미지, 혹은 실제 산의 모습(해발 60m)처럼 동산에 가까운 부드러운 형상에서 연상되는 이미지와 관련이 있는 것 아닐까 여겨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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