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자주 화 낸다 절반은 아이 때문이라 치고 절반은 이유를 알 수 없다 화를 내는 게 훈계가 될 수 없기에 그냥 화만 내고 있다 화를 낸 까닭에 화 난다 화를 내고서도 카타르시스는 오지 않는다 같은 얼굴을 하고서 억울해 하는 아이를 본다 성이 나 있고 골이 나 있다 그러니까 화가 난 게다 그냥 화만 내는 게 아니라 야단을 치고 꾸중을 한다 야단을 잔뜩 맞고 절반의 이유는 알겠다 절반은 이유가 없다 스스로 다스려지지 않는 것에 화를 내면서 다스릴 수 없는 것에 화를 내고서 곧장 야단을 맞고 나니 그제서 온다, 열패감의 카타르시스 (2008.04)
- 오늘의 할일은 내일로 미루고 부지런히 부르면서 - 내일의 할일은 하지 않는다 무언가를 하는 건 결국 마찬가지라는 - 노나 공부하나 마찬가지다 알고 보면 더할 수 없이 심오한 저항의 노래를 부르면서 - 노나 공부하나 마찬가지다 싱겁게 웃으면서 - 아니다 노는 게 더 좋다 놀면서 - 아니다 노는 게 더 좋다 공부와 마찬가지인 놀이를 즐겼지 - 오늘의 할일은 내일로 미루고 불안한 공기를 떨쳐내려고 - 내일의 할일은 하지 않는다 뿌리치려고 - 노나 공부하나 마찬가지다 누군가는 골방에 들어가 계속 놀고 - 노나 공부하나 마찬가지다 누군가는 골방에 들어가 공부를 시작하고 - 아니다 노는 게 더 좋다 개중엔 내일의 시위를 준비하고 - 아니다 노는 게 더 좋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저항은 - 오늘의 할일은 내일로 미..
기어이 둘이 마주섰을 때 태양은 아침을 막 지났고 서글픈 둘의 과거는 기억의 들판 이곳저곳에 쓰러져 있었지 잴 것도 없이 서로가 서로를 아프게 하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가 서로의 옛일을 호명하며 이별을 정당화하고 있을 때 바람이 내 가슴을 뚫고 지나갔네 그리로 햇살은 밀려들어와 그림자 안쪽의 그림자 아닌 곳에 그림자를 만들고 밝고도 어두운 당신이 거기 있었네 우울하고 우울한 내 안쪽 나 아닌 곳의 (2008.05)
내 집 앞을 지나는 한 남자가 있다 그는 내 앞집 남자다 매일 같이 내 집 앞을 지나면서 매일 다른 주머니를 차고 주머니에서는 매일 다른 소리가 울린다 그는 얼굴도 본 적이 없고 누군지도 모르는 그는 매일 다른 주머니를 차고 내 집 앞을 지나며 소리를 울린다 그는 수상쩍은 내 앞집 남자다 매일 달라지는 주머니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이상한 물건이 들어 있다 그것은 본 적도 없고 상상하기에도 그다지 유쾌하지 않지만 그 물건은 그가 가진 전부일 게다 한때는 댕글댕글 보글보글 이런 소리가 들리다가 요즘은 왈강달강, 부스럭거리는 수상쩍은 소리를 낸다 그러면 그 남자는 조심스럽게 집 앞을 지나쳐 소리를 숨기려 하지만 수상쩍은 소리를 내는 그 주머니는 수상쩍은 내 앞집 남자의 사정을 공포라도 하듯 외려 소리를 키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