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찍 퇴근한 마눌님이 점심을 사 준다고 하기에
꼭 일 없이 빈둥거리다가 점심 얻어 먹는, 시간 많은 남편이 되어
하고 있던 복장 그대로 밖으로 나갔다.
(왠지 언젠가 가까운 과거에 해 본 일 같기만 하다.)
6(-,.-)
역시 마눌님은 온갖 무장을 다 하고,
두 귀에 이어폰도 꼽고,
자전거로 인솔을 하신다.
나는 툴레툴레 쫓아간다.
아, 그러고 보니, 정말 주머니에 휴대폰 하나 달랑 있구나.
점심도 얻어 먹어야 하고
집에 들어올 때도 쭐레쭐레 따라 들어와야 한다.
마눌님은 마음 먹었던 식당이 저녁에야 문을 연다는 사실을 알고는
적잖이 실망하는 표정이었지만,
사실은 당황하는 눈치였다.
뭐, 동네 한 바퀴 돌면서 점심 먹을 곳 찾아 보자고
늠름하게 앞장을 섰다.
오늘 돌 거리는 도곡2동 주민센터 서쪽의 뒷골목들이다.
지도 아래 쪽 논현로 28길(영동2교 교차로 오른쪽 길)과
양재천로(아래 양재천길이라고 적힌 부분 윗길) 사이의 골목들이 오늘 다닐 곳들이다.
사실 혼자서 여러 번 지나다닌 길이긴 했는데(먹이를 찾아 산기슭을 헤매는...이 아니라 식당을 찾아 뒷골목을 헤매는 일이 몇 번 있었던지라..,,), 오늘은 마눌님과 다닌다. 시간은 20분이면 충분하다. 물론 자전거로.
이런 짧은 여행이 주는 은근한 재미는
별 것 없어 보이는 동네 뒷골목에서
오랫동안 손이 타지 않은 옛집의 장롱 서랍을 열어 보았을 때마냥
대단치는 않지만 반갑고 익숙하고 때론 의외의 발견으로 놀라게 되는
공간들을 마주치게 된다는 점이다.
서민적인 밥집들도 의외로 많고 아주 조금씩의 일상의 변화들이 눈에 띈다.
(여긴 5년쯤 후에는 건대 입구 로데오 거리처럼 바뀔 거고
10년쯤 후에는 압구정동 로데오 거리처럼 바뀔 거다.)
에구치(Eguchi)를 이 골목에서 만나게 된 것은 정말 의외인데,
있을 만한 곳도 아닌 것 같고... 그러면서도 변화를 선도하고 있는 것 같아서
보는 눈이 있구나 하고 찬탄하게도 되었다. 하지만.
10년 전쯤 학동 골목에서 일본인 파티쉐가 운영하던 테이블 하나밖에 없는 맛난 케익집이 어느새 커져서
백화점에도 입점하고 이곳에까지 분점을 내면서 그냥 평범해지고 있다는 아쉬움도
없지 않았다.
어째 분위기는 운치 있는 카페인데,
음식과의 매치는 팥빙수집 같더라는.....
잠시 주인과 얘기를 나누고
점심을 곧 먹을 거라서 없는 빵 중에 단팥빵 하나 사서
마눌님과 반씩 나누어 먹었다.
그냥 그랬다.
마눌님이 점심을 사 준다고 했을 때에는
그냥 밥집 가자는 얘기는 아니었으므로,
동네를 이리 돌고 저리 돌고 하면서
양평 해장국집도, 부대찌개집도, 주민센터 앞의 만두국집도,
함바집 같은 식당도(오늘 메뉴 카레라이스!), 그리고
전주식당 같은 반찬 많이 나올 것 같은 한식당도 다 제쳐 두고,
양재천로에 있는 부르스리 같은 딤섬집도 오늘은 사양하고,
뭔가 맛있는, 뭔가 맛있는 것을 찾아
또 동네를 이리 돌고 저리 돌고 하다가
결국에는 집 근처로 왔다.
월남 쌀국수 먹기로 했다.
그래서 먹었다.
맛은.... 그 집 앞을 지나면서 저기서 먹어 보자..... 이렇게 얘기한 게 두 달은 되었기에
마눌님 좋아하실까 봐 거길 추천해서 간 것이었는데,
맛은.... 그냥 그랬다. 뭐, 월남 쌀국수가 다 그렇지.(맛 없다는 뜻이 아니라 예상대로라는 뜻임)
밖에 있는 자전거 두 대.
왼쪽 것이 내 것, 오른쪽 것이 마눌님 것이다.
내 것은 밴쿠버에서 구입한 것이다.
ironhorse.
이것보다 좋은 놈은 도둑 맞았다(ㅠ ㅠ 아, 또 생각난다.)
UBC 안에 잡도둑이 꽤 많다. 자전거는 필수 이동 수단 중 하나라서
안장이나 바퀴 빼 가는 일도 적지 않다.
난 통째로 도난 당했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돌아오기 넉 달 전에 다시 구입했던 것이었는데,
부품의 구성은 참 좋다.
다만 탑튜브(안장과 핸들 사이를 연결하는 상단의 프레임)가 높아서
(수정 : 하체가 짧아서 = . =)
스탠딩 흉내내다가 넘어지면 다친다.
마눌님 자전거는 작년 가을에 사 드린 것이다.
할인 잔뜩 받아서.
참 가볍다.
잘 나간다.
안장 높여서 내가 타고 싶다.
(2011.07.01)
'나 > 일상 허투루 지나치지 않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일상] 이틀 동안 다른 세상에 가 있다가 왔더니 별일들이 다 생겼다 (0) | 2011.07.14 |
---|---|
[일상] 입양 일주일 경과, 날개가 제법.... (0) | 2011.07.10 |
[일상] 불안불안한, 새 생명을 걱정해야 하는 (0) | 2011.07.02 |
[일상] 비 긋고 난 양재천 자전거 달리다(2011.06.30) (0) | 2011.07.01 |
[취미] 마그넷의 (대수롭지도 않은) 비밀 (0) | 2011.06.30 |
[여행] 파리 첫 날(2011.01.19) (1) | 2011.06.30 |
[기념] 딸 학교에 들렀다가 ..... 마약 김밥 사 가지고 들어왔음 (0) | 2011.06.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