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글은 2009년 6월 8일 리테두넷(litedu.net)에 올린 글입니다. 플랫폼 변경으로 인해 이곳으로 옮겨 놓았습니다.
문화일보를 읽지 않으니 몇일자로 실린 기사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인터넷신문에는 6월 7일자로 등록된 기사이군요.
제목이 <“문학에 선과 악 구분 있을까”>입니다. 꽤나 섹시한 제목이지요.
무겁다구요?
'대산문화' 여름호와 관련된 기사인데요. 특집으로 '문학과 윤리'를 다루었답니다.
이 기사는 이 특집 기사를 인용하고 있지요.
그러면 인용된 부분 잠깐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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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현길언(67)씨가 ‘문학은 장막에 가려진 인간의 진실을 찾아가는 길’이라는 글에서 ‘문학은 윤리적이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소설가이자 시인인 하재봉(50)씨는 ‘길들여진 인물과 이야기는 타락한 정신적 매음’이란 글로 ‘모든 문학은 비윤리적이어야 한다’며 상반된 논지를 펴고 있다.
(중략)
현씨는 글에서
(중략)
“결론적으로 말하면 문학이 지향하는 것은 윤리적이다”라고 강조했다.
(중략)
이에 반해 하씨는
(중략)
“기성세대는 자신들이 갖고 있는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도덕이나 윤리를 필요로 한다”며 “문학뿐 아니라 모든 예술의 출발점은 기성의 전통이나 인습으로부터 단절인 만큼 따라서 모든 문학은 불온해야 한다”는 논지를 편다.
어쨌든 이 기사(가 인용하고 있는 기사)는 문학은 윤리적인가, 비윤리적인가 하는 이분법으로 문학을 보고 있군요.
본래 반담론은 '반-'의 의지를 지니는 법이지요. 기독교의 반담론은 '반기독교'이지요, 자본주의의 반담론은 '반자본주의'이겠지요. 미국주의의 반담론은 '반미주의'일 것이구요.
반담론은 지배적 담론의 의제 설정 내에 있기 때문에, 마치 영화 속 주인공 대신 악당을 옹호하는 격으로 취약합니다.
이럴 때에는 언제나 반담론이 수세에 놓이는 법입니다. 무엇인가 반대하는 것은 이미 구축된 논리를 뒤집기 위해 빈틈을 찾아 헤매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재봉 선생은 '윤리'를 기성세대의 기득권으로 치부하면서 문학의 가능성을 이것으로부터의 자유로 설정합니다. 그러니 '윤리'를 거부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만약 현길언 선생께서 이 글을 읽으셨다면 다시 이렇게 반박했을지도 모릅니다. "바로 그것이 윤리적이라는 말의 의미야."
이에 비추어 보면, 탈담론이나 대안담론은 지배적 담론의 의제 설정을 비틀어버림으로써 지배적 담론의 지배력을 약화시키거나 무화시키는 전략으로 선택됩니다. '비-'의 담론이 그렇습니다. 유일신론에 대해 무신론으로 대항하려면 취약해지는 것을 범신론으로 접근함으로써 자유로워질 수 있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범신론은 반담론으로서의 무신론보다 신의 유일성과 신의 유일 의지와 신의 주관성을 비판하는 데 더 효과적입니다. 뭐, 무신론에 대한 비판에서도 유일신론보다 더 유리하겠지만요.... 각설하고....
탈담론이나 대안담론의 의제 설정이 시쳇말로 '제삼지대'에 깃발 꽂는 일이 될 것이므로, 이처럼 문학의 윤리성 담론을 제대로 점검해 보기 위해 반담론이 아닌 대안담론을 찾는 것이 한 선택이 되겠습니다.
그런데 희한합니다.
이 논쟁은 문학이 윤리적이냐, 아니면 '비윤리적'이냐 하고 맞붙고 있습니다.
'반윤리적이냐' 하지 않고 말입니다.
그러고 보니, 일반적인 용례인 '비-'와 '반-'의 의미 차이가
윤리성에서는 별반 차별적이지 않습니다그려.
비윤리적인 것이나 반윤리적인 것이나
도덕률을 초월했다기보다는 배덕한 것으로 읽히니 말입니다.
그러고 보면
정상적인 것에 대한 비정상적인 것도 그냥 반담론적인 것처럼 여겨지고,
신사적인 것에 대한 비신사적인 것도 그렇습니다.
또 발견되고.... 또 발견되고.....
공통적인 것을 추려보니,
여기에는 내재적 원리가 애당초 없습니다.
그 자체의 자기 논리가 없다는 뜻입니다.
그러면서도 이미 충분히 정당합니다.
그러니 정당성은 내재한 것이 아니라 외부로부터 부여된 것입니다.
윤리적인 것은
그 자체가 윤리성을 가진 것이 아니라
누군가 '그의 이름을 부름으로써'
비로소 윤리적인 것이 된 결과인 셈입니다.
그러니
윤리성의 이름으로는 탈담론이나 대안담론인 척하는 것도
결국 반담론과 마찬가지로 고만고만...
이중대....
"문학은 윤리적인 것인가?"
왜 이렇게 묻습니까?
문학에 윤리성이 내재해 있습니까?
윤리성에 윤리적인 원리가 내재해 있습니까?
우리는 무엇 때문에 이 질문을 던지는 것인가요?
결국 이 질문은
인간은 자신의 윤리적 삶을 위해 문학을 어떻게 수용해야 하는가? 하는 질문을
공연히 문학에 떠넘겨 버리고
비겁하게 그 뒤에 숨어 던지는 회피는 아닌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