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wilight Zone이다.
채널 2번 미군 방송(AFKN)을 통해 매주 목요일 심야 프로로 보았던 이 프로그램은 원래는 1959년에 첫방을 한 연속물로
내가 방송을 보았던 70년대 중반에는 미군 방송에서 한참 재방송 중이었다.
그 전까지 19세기적 공상 소설에 빠져 있던 나는 비로소 과학적 외피가 둘러진,
개중에는 과학적 논리가 바탕을 이룬,
그리고 아주 가끔은 과학의 빈틈을 노린 이런 저런 상황들을 생생하게 보게 되었고
쥘 베른은 저리 가라, 허버트 조지 웰스도 이제 그만이다, 하고는
주중 심야인데도 불구하고
아버지의 구박을 꿋꿋이 물리치고 시청을 했다.
놀라운 일은 그 몰입의 기억에서는
흑백 화면은 총천연색으로 보이고
말소리도 한국어로 들렸다.
아마도 기껏 4학년이었을 그때 내 상상이 저 혼자 이야기를 만들고 흔들고 그랬던 것이었겠지.
잠깐 딴 얘기이지만,
비록 집은 가난해도
아버지는 첨단에 좀 집착이 있는 분이었고 (결국 내 성향이는 게 괜히 생긴 건 아니라는 뜻이로군 - -;;)
집에는 80년대 식으로 말하자면 콤포넌트 '전축' 시스템처럼 생긴
흑백 텔레비전이 있었더랬다.
그것은 우리 집 유일의 문화 자산이자
내 상상력의 또 다른 원천이었던 까닭에
내가 5학년이 되던 1976년에 분해가 되어 버리고 말았다.
다행히 진공관은 어찌 손댈 수가 없어서
망가졌던 것은 아니었지만,
감전이라도 되었으면 어찌 되었을지 알 수 없는 무리를 해 버리고 말았다.
그 덕에 텔레비전이 고장나면 십중팔구는 기판 하단 전원선 나오는 곳 근처의
퓨즈가 나간 때문임을 알게 되었고 그 뒤로 몇 번은 텔레비전도 고치고 그랬다.
물론 엄청 혼나기는 했다.
꿋꿋한 정신은 그 후로도 라디오, 전축, 그밖의 전기를 쓰는 물건 두루두루 손을 봐 주기도 했다.
그렇게 즐기던 중에 나는 봐 버렸다.
봐서는 안 될 것, 그 나이에는 금기 중 금기ㅡ 멘붕을 일으키고
정상적인 정신적 성장을 막아버릴 과학적 가설을
눈으로 똑똑히 보게 만든
108화 Death Ship을 본 것이다.
(The Twilight Zone의 108번째 에피소드인 'Death Ship'은 1963년 2월 7일 미국 CBS를 통해 첫 방송되었다.)
사실 이렇게 쓰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제목도 기억나지 않고
단지 마지막 장면이 LP판이 계속 반복되듯 잔영으로 있었지만,
드디어 알아냈던 것이다. 하나하나 뒤져서......
어쨌든 이 Death Ship이 어떤 내용인가 하면.....
(지금부터는 이 글을 쓰기 위해 캡쳐해 가며 다시 본다. 보면서 쓴다...)
비행선 E-89이 새로운 행성 탐색을 하고 있는 '중'이다. 행성 궤도에서 지상을 살피던 메이슨 중위는 관측기에 금속체의 반사광이 비춰지는 것을 발견한다. 이 행성에 지적 생명체가 없는것으로 알려졌기에 이러한 관측 내용은 곤혹스러운 일이었다. 메이슨은 로스 함장에게 비행선을 착륙시켜 조사해 보자고 건의한다.
행동주의자에 가까운 메이슨과는 달리 회의주의자인 로스 함장은 이를 묵살하려 하지만 또 다른 대원인 카터 중위와 함께 똑같은 현상을 발견하게 되고는 지상 착륙을 결정한다.
반사광이 바췄던 물체 주위에 착륙한 이들은 곧 그들이 보았던 것이 그들의 비행선과 동일 유형의 비행선임을 알게 된다. 이 비행선은 무슨 일에서인지는 몰라도 추락에 의한 충격으로 파괴되어 있었다.
그들은 곧 그 비행선이 자신들의 비행선과 똑같다는 것을 알게 된다.
기내를 조사하던 그들은 거기서 자신들의 시신을 발견한다. 비행선으로 돌아온 그들은 본부와 연락을 취하고자 하나 송수신 모두 실패한다.
로스 함장은 이 상황을 논리적으로 설명해 보고자 애를 쓴다. 상대성 이론을 떠올리기도 하고(하지만 메이슨은 그건 단지 이론일 뿐이라고 반박한다... 그 시절에는그랬군.), 가능한 미래로의 타임 워프론(이게 그럴 듯하지 않은가? 이렇게 하면 같아 보여도 다른 존재가 되는데...)도 제기해 보지만 도무지 합당한 설명이 되지 않는다. 메이슨은 타임 워프라 하더라도 결국 그들이 다시 비행을 하게 되면 죽게 되지 않겠냐고 반박한다. 이에 로스 함장은 이륙하지 않는다면 자신들은 죽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메이슨은 강력하게 항의하고 로스 함장은 결정을 내릴 유일한 사람은 자신임을 밝힌다. 메이슨 "이게 사느냐 죽느냐에 관한 일인데도 그렇습니까?" 로스 "당근."
그 와중에 카터는 자신이 고향집에 있는 환상(거기서 자신의 부고를 읽는다.)을 보고,
메이슨은 그때 고향집에서 어린 딸과 아내를 만나는데, 그 자리에 로스 함장이 나타나 함께 돌아가자고 붙잡는다. 정신을 차려 보면 비행선 안이다.
로스 함장은 이러한 일련의 상황이 외계인과의 조우로 인한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이 행성의 어떤 생명체가 그들의 마음을 조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함장은 이 행성에서 일어난 모든 일이 과대망일 뿐이라고 단언한다. 심지어는 볼 뿐 아니라 만질 수 있다 하더라도 그들이 경험한 일들이 입증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 모든 일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지구로 귀환하는 길 밖에 없다고 말한다. (아까와는 상반된 말을 한다.) 메이슨은 그럼 함장이 생각하는 것은 옳다고 확신할 수 있느냐고 묻고 함장은 재차 확인한다.
이들은 이륙을 준비한다. 그리고 .....
그들의 비행선은 고도를 높인다.
고도를 높일수록 중력의 힘을 강하게 받는다는 이 이상한 현상은 그냥 지나가기로 하자.
(중력의 힘을 이겨내려는 배우들의 살신성인의 연기....풉.... 함장의 연기 꽝이다.)
어쨌든 그들은 성공한다. (살았다는 거지. 아니 살아 있다는 걸 확인한 겐가?)
하지만 곧 함장은 다시 착륙을 지시한다. 자신들이 보았던 것이 단지 환상이었다는 걸
확인 받고 싶어한 것이다.
하지만 메이슨과 카터는 강력하게 반발한다.
이 일로 조종간을 놓고 몸싸움이 벌어지고
추락의 위기.
함장은 간신히 조종간을 잡아 비행선을 안정화한다.
결국
다시 착륙하는 E-89.
그들은 정말로 환상을 보았던 것일까?
이 작품의 눈 부분은 같은 사건이 똑같이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다.(나는 물경 사십 년을 이 이미지에 사로잡혀 있었던 게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메이슨은 지상에서 반짝이는 무엇인가를 발견한다.
함장은 무시하려 들지만,
메이슨과 카터는 내려가 보자고 한다.
E-89는 지상 착륙을 시도한다. .......
물론 그 시절 내가 영어를 알았을 리가 없지만,
그저 상상만으로도 이 이야기는 이해되어 버렸다.
(결국 그게 내 식대로 이야기를 만들었다는 것이지만....)
그러고는
이 작품이 시간의 틈새 속에 영원히 갇혀 버린 세 사람의 이야기로 각인되어 버렸더랬다.
물론 그때는 몰랐던 게지.
이것이 죽은 자의 기억 속 잔상이 무한대로 늘어지는, 즉 미분화되는 사태라는 것을.
그 속에 죽은 자는 죽음의 이편과 저편 사이에 갇힌다는 것을.
혹시 죽은 자의 영혼이 있다면 그것은 산 자의 세계와는 사실 별로 상관없이, 죽은 자의 기억 속에서 무한히 늘어지는 시간과 관계 있다는 것을.
그저 죽고 또 죽고 또 죽고 또 죽고 하는 사건이 무한히 반복된다는 것이 새롭고 무섭고 놀라웠던 게다.
프랑켄슈타인, 지킬과 하이드, 달나라 여행, 해저 이만리, 우주전쟁 같은 것보다 더 강렬한 경험이었던 게다.
좀 더 커서 이 비현실적인 제논의 역설이 혹시
실제하는 것 아냐?
하고 상상해 보게 되었는데,
어쩌면 사실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조금은 있다.
뭐, 어때 죽음 이후의 세계도 받아들이는 세상인데,
삶과 죽음 사이에 낀 세계를 못 받아들일 이유가 어디 있어.
이 작품에서와 같은 상상력이 꽤 그럴듯했는지 그 뒤로 드라마나 영화들에서 이와 비슷한 모티프는 여러 차례 변주되어 등장했다.
'야곱의 사다리'에서 주인공 제이콥의 잔류 상념이 그러했고,
'식스센스'에서 주인공 닥터 크로우의 그것이 그러했으며,
일본 애니메이션 '마그네틱 로즈'에서 에바의 그것도 잔상처럼 남아 있는 기억의 무한 미분화 사태를 보여준다.
끝으로 가 보면, 거기에는 '인셉션'의 무한루프도 있다. 뭐, 대개 주인공의 현실 귀환을 인정하는 편이지만....
사족. 그때는 못 봤지만, 이제는 봤지롱.
1. 비행선은 왜 추락했을까? 정직한 답은 이러하다. 일단 비행선이 이륙에 성공하자 메이슨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함장은 자신의 잘남을 주장하는데, 갑자기 합장은 좀 더 증명할 게 있는지 재착륙을 하겠다고 나서고 메이슨과 카터가 이를 막으려 하는 도중..... 사건이 일어난 게다. 추락했다는 거지.
하지만 지혜로운 답은 이러하다. 비행선을 양철로 만들었거든.
2. 그들이 죽은 자들이라는 건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정직한 답은 이러하다. 그들은 자신들이 발견한 비행선에서 그들 자신을 보게 된다. 신분증도 똑같다. 그러니 그들이 죽은 게지.
하지만 지혜로운 답은 이러하다.
재착륙을 한 그들은 비행선 밖을 내다 본다. 이 창은 카터가 들어온 문의 옆문이다. 중요한 건 카터가 문을 열고 들어올 때에는 이 창문 쪽에는 벽체가 있었거든. 카터는 환상 공간에서 들어온 거다.
함장은 반대편의 창문 밖을 내다 본다. 이 창문으로 추락한 비행선이 보이자 함장은 경악한다.
그런데 이 창문은 메이슨이 들어간 숙소 옆문이다.
메이슨이 옆문을 열었을 때 이 창문 너머 쪽에는 침대가 놓여 있었다.
메이슨은 비행선 밖으로 쉬러 들어갔나?
맙소사, 카터와 메이슨은 외계에서 비행선 안으로 들어온 것이다!
(2013.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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