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하게 어설픈 듯, 단순한 듯, 지루한 듯, 이상하게 첨단의, 계산되어 있는, 놀라운,
1978년의 '내 마음의 주단을 깔고'(산울림 2집)는 세계는 커녕 한국의 현실도 제대로 알 리 없는 내 중학 시절 인생에 개입한 산울림의 곡이다.
밴드를 하고 있던 진외종숙에게 기타를 배우면서 미국 팝들에 물들고 있었던 나에게 라디오와 악보는 서로 다른 시기를 동시대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매개였다. 라디오 방송이 들려주는 동시대적인 노래들이 정말 같은 해의 유행곡이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래도 한두 해 이내의 곡들이었으리라. 하지만 라디오 음악보다 더 친숙했던 것은 기타로 튕겨보는 악보의 곡들이었다. 이 곡들은 악보책이나 악보 클립들의 상품 시장 여건으로 인해 단순하고 짧은 곡을 담을 수밖에 없었기에 포크였고 컨츄리였고 컨탬포러리 어덜트 재즈 같은 것이었다. 말하자면 열세 살부터 몇 년간을 주제넘게도 70년대 후반이 아닌, 그보다 한 세대ㅡ이럴 땐 한 10년을 말하는 것이므로ㅡ 앞의 음악을 흉내 내며 향유 비슷하게 하고 있었던 셈이다. 청년 시절 좋아했던 노래들을 나이를 먹어서도 평생을 좋아하며 살아가게 된다는데, 생각해 보면, 나도 80년대 전후뿐 아니라 그보다 앞선 60년대 말 이후의 미국 팝들을 평생 반복해 들어왔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계속 듣는 것은 이 6말7초 음악들이다.
(그런데 이 중요한 얘기는 앞으로도 계속 할 생각이지만, 이 글에서는 이 이야기가 후경일 뿐이다.)
진짜 말하려는 내용은 지금부터다. 그렇게 중학 시절을 보내던 중 산울림 2집을 듣게 되었다. 전곡을 듣고 나면 매우 당혹스러운 느낌을 받게 되는데, 그때는 표현할 능력도 방법도 없었다. 그냥 이상하고 매혹적이고 이상하고 매혹적이었다. 동요에 어울릴 법한 김창완의 정직한 목소리, 김창완 뒤에서 배음으로 들어가는 김창환의 그로울링이라든가 고음의 하드락 지향의 발성, 중간 중간 악기들 간에 안 맞는 박자, 사이키델릭한 리드 기타, 자기 혼자서도 언듯언듯 엇박 생기는 이 기타 소리, 그 시대의 단순한 리듬 악기의 정체성을 내던진 듯이 자기 갈 길 가는 베이스 기타의 아르페지오ㅡ그렇지 않은 곡이 '나 어떡해'이다ㅡ, 키보드도 덩달아 아르페이오에 사이키델릭ㅡ그런데 키보드 연주자는 맴버에 없다, 그런데 멜로디 악보를 김창완이 적어준 것이었다고 한다ㅡ, 느닷없는 긴 전주, 변조 변조.....
(물론 중학 시절에는 이런 걸 구분해 내며 듣는 수준일 리가 없다. 고등학교에 올라가 비로소 하나씩 들리기 시작한 것인데, 이 글의 첫 줄에도 썼지만, 이렇게 구분해서 들리기 시작하다 보니, 당황스럽고 오묘하고 흥분되고 당황스러운 대상으로 되어 있었던 것이다.)
계속 이상한데 계속 호기심을 갖게 만드는 이 낯선 음악들에 그 이후로도 계속 내가 묶이게 된 것은 이런 장르적이거나 기법적인 화제들 때문이 아니었다. 암시적이고, 환상적이고, 퇴폐적이고, 열정적이고, 희망적이고, 염세적인, 사랑에 대한 모든 주제가 다 들어가 있는 것 같은 가사들이 나를 들뜨게 했던 것이다.
고등학교에 들어와서 아이와 카세트 플레이어도 생기고 여전히 나는 음악이 좋아서 혼성 중창단도 만들어 연습하고, 남성 4중창단도 함께 결성하여 학교 축제도 나가고, 남들 다 한다는 스쿨밴드도 하게 되었다. 밴드를 하다 보니 록 음악을 안 들래야 안 들을 수 없어 새로운 음악에 눈을 뜨게 되었다. 하지만 키보드를 맡고 있기에 자연스레 생긴 취향 탓에 주로 듣던 록 음악의 장르는 메탈보다는 프로그레시프 쪽이었고, 그러다 보니 국내 록 음악은 그냥 잘 안 듣고 있었는데 그 빈틈에 산울림이 들어온 것이다. 산울림은 13집까지 전곡을 들어 보았지만, 그래도 내게 산울림은 2집과 3집으로 이미 완성되어 있었다.
아직 공부보다 음악에 열심이었던 고2의 나는 산울림 2집으로 상상 가능한 모든 사랑을 상상하고 있었다.
어설픈 듯, 단순한 듯, 지루한 듯, 이상하게 첨단의, 계산되어 있는, 놀라운,
(2021.03.05)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 그대 길목에 서서 예쁜 촛불로 그대를 맞으리 향그러운 꽃길로 가면 나는 나비가 되어 그대 마음에 날아가 앉으리 아! 한 마디 말이 노래가 되고 시가 되고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 그대 위해 노래 부르리 그대는 아는가 이 마음 주단을 깔아 논 내 마음 사뿐히 밟으며 와 주오 그대는 아는가 이 마음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 그대 길목에 서서 예쁜 촛불로 그대를 맞으리 향그러운 꽃길로 가면 나는 나비가 되어 그대 마음에 날아가 앉으리 아! 한마디 말이 노래가 되고 시가 되고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 그대 위해 노래 부르리 그대는 아는가 이 마음 주단을 깔아 논 내 마음 사뿐히 밟으며 와 주오 그대는 아는가 이 마음
둘이서
시계 소릴 멈추고 커튼을 내려요 화병 속엔 밤을 넣고 새장엔 봄날을 온갖것 모두 다 방안에 가득히 그리고 둘이서 이렇게 둘이서 부드러운 당신 손이 어깨에 따뜻할 때 옛 얘기처럼 쌓여진 뽀얀 먼지 위로 은은히 퍼지는 기타소리 들리면 귓가엔 가느란 당신 숨소리 시계 소릴 멈추고 커튼을 내려요 화병 속엔 밤을 넣고 새장엔 봄날을 온갖것 모두 다 방안에 가득히 그리고 둘이서 이렇게 둘이서 부드러운 당신 손이 어깨에 따뜻할 때 옛 얘기처럼 쌓여진 뽀얀 먼지 위로 은은히 퍼지는 기타소리 들리면 귓가엔 가느란 당신 숨소리
어느 날 피었네
어느 비오는 날 꽃을 심었어요 무슨 꽃이 필까 기다렸었어요 어느 날 피었네 하얀 꽃 너무 예뻤어요 너무 기뻤어요 밤에도 나가서 보곤 했지요 비오는 날이면 지켜 섰었어요 어느 날 피었네 하얀 꽃 너무 예뻤어요 너무 기뻤어요 어느 비오는 날 꽃을 심었어요 무슨 꽃이 필까 기다렸었어요 어느 날 피었네 하얀 꽃 너무 예뻤어요 너무 기뻤어요 밤에도 나가서 보곤 했지요 비오는 날이면 지켜 섰었어요 어느 날 피었네 하얀 꽃 너무 예뻤어요 너무 기뻤어요
이 기쁨
마음속에 핀 아름다운 이 꽃은 밤하늘에 핀 별을 잡은 기분이야 어떠한 슬픔도 이 기쁨 이기지 못해 어떠한 슬픔도 이 기쁨 누르지 못해
떠나는 우리 님
떠나는 우리님 편히 가소서 보내는 이 마음은 터질듯하오 에야 디에야 어여쁜 우리님 가시는 먼먼 길에 흰국화 만발해라 어야 디이야 이제 가면 언제 오나 방긋 웃는 그 얼굴은 영영 떠나 버리누나 어야 디이야 꿈이더냐 생시더냐 청천하늘 벽력도 이게 무슨 말이더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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