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순서는 상관 없다. 인터넷이 며칠 전에야 연결되었으니 이제서야 글을 쓸 수 있게 되었다는 것.
미국 생활을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부딪혔던 것이 집을 구하는 일이었다.
방문 교수라면 거개가 아이와 관련된 고민을 우선적으로 하게 되어 있지만, 집 구하는 일에 아이 학교 문제는 나처럼 학교 밖에서 집을 구할 때에는 거의 절대적이다. 해서 네 개의 지역을 두고 이곳저곳 알아보고 살펴보고 물어보고 하느라 보름을 민박과 호텔 생활을 해야만 했다.
집 구하는 얘기는 다음에 더 하겠지만, 그 당황스럽고 황당한 일을 다 당하고서야 지금 글을 쓰는 이곳 그레잇넥(Great Neck)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생각해 보니, 그 처지가 '위대한 개츠비'의 제이(Jay)와 비슷하다.
그레잇넥의 아파트를 구하기 전에 거의 결정 단계에 이르렀던 집이 포트 워싱턴(Port Washington)의 아파트였고, 거기서 거부 당하고 이곳에 오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 집은 포트 워싱턴에서도 소설의 이스트 애그(East Egg)로 표현된 샌즈 포인트(Sand's Point), 그 중에서도 서쪽 해안의 돌핀 그린(Dolphin Green Rd.)에 있는 아파트였다. 물론 저택은커녕 '택'도 아니었으니 데이지(Daisy)와 톰(Tom)이 살던 집에 비할 바 있겠냐만, 그래도 내정도 있고 비치도 있고 집도 깨끗하고... 아내는 몹시 흡족해 했었다. 미국에 오기 전에 점 찍어 둔 곳이기는 했지만 월세가 너무 비싸 포기했었는데 어떻게 막판에 가격에 맞는 걸 구할 수 있었던 점도 좋았다. 그랬는데....
집 주인(정확히는 아파트 소유 회사)이 거부를 했다. 이유는 크래딧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 크래딧이 없지. 있을 리가 없지. 그래도 학교에서 월급 지원 받고 연구재단에서 연구지원비도 받고 저작권료도 받고 금융 자산도 있다고 서류까지 주었는데 거부하다니... 아내는 몹시 실망했다. 아내 핑계를 댔지만 나도 그랬다. 나중에 우리 중개인(buyer's agent)의 얘기를 듣자니... 그쪽 중개인(seller's agent)이 말하는 중에 집주인이 유색인은 안 받으려고 한다고... 말실수를 했다고.... 말을 해 주었다. 위로하는 말이었을지도 모르지만, 크래딧이 돈 말고도 결정적이고 어찌 손을 써 볼 수 없는, 태생적인 조건을 뜻하였다니... 1
그렇게 실망하는 가운데 그닥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학교 가까운 아파트를 가격도 못 깎고, 중개 수수료도 두 배 가까이 주면서 그레잇넥 비치 로드(Beach Rd.)의 아파트로 이사를 온 것이다. 여기가 소설에서 웨스트 에그(West Egg)로 표현된 곳. 물론 소설이 가리키는 위치는 그레잇넥의 우측 해안 어디쯤이었겠지만.... 처음엔 집 지은 지도 오래 되고, 집이 북향이라 어두워 보여 마음에 들지 않았으나, 어쩌랴, 마음을 바꿔야 할 밖에.
이제 웨스트 에그 쪽에 살면서 이스트 에그를 아쉬워 해야 할 형편이고 보니, 웨스트 에그에 저택을 짓고 밤중에 이스트 에그의 푸른 빛 등불을 보며 그 너머의 데이지를 그리워하고 있었을 제이의 처지가 짐작이 된다. 개인의 성취가 평등의 배경이 배경이 되는 근대 미국 동부의 신층 부자의 표상 같은 그도 이곳 롱 아일랜드의 보수적인 사회에서는 인정받지 못했던 게 아니냐. 2공교롭게도 내 영어식 이름은 Jay이다. 3
하지만 난 제이가 아니라서 죽음을 불러오는 미련 따윈 갖고 있지 않다. 포트 워싱턴은 잊기로 했다. 며칠 새 그냥 잊혀졌다. 거긴 너무 시골이야. 흠흠.
위 지도의 오른쪽 노란 별 부분이 포트 워싱턴에서 놓친 아파트, 왼쪽 노란 별 부분이 지금 살고 있는 그레잇 넥의 아파트.
소설처럼 꾸미려면 킹스 포인트의 동쪽 해안 어딘가에 세 얻어 살면서 이 글을 써야겠지만, 그곳은 월 임대료가 지금 사는 곳의 1.5-2배쯤 된다. ㅠㅠ 소설 쓰기도 어렵다.
사진 올리는 김에 몇 장 더.
나중에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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