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이해하고 감상할 수 있기 위해서는 적어도 다음 세 가지가 갖추어져 있어야 합니다.
첫째, 시어의 의미,
둘째, 시어의 의미를 맥락화할 수 있는 구도, 그리고
셋째, 맥락의 동조(syntony)를 이끌어낼 수 있는 정서적 단서들.
이것들은 각기 문맥(context of a passage), 문화적 공통감(cultural consensus), 비문자적 자질(non-literal feature of a passage)이라는 요소들을 통해 시와 독자를 연결합니다.
이에 비추어보면 이상의 시를 학생들에게 이해하고 감상하게 하는 일은 매우 어렵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선 시어의 의미를 알기 어렵고, (기껏 알 만한 어휘들이라고 해도 그것이 문면 그대로의 의미인지 어떤 의미인지를 판정할 만한) 시의 이해 맥락이 잘 파악되지 않고 (그러다 보니, 게다가) 무엇에 반응해야 하는지 단서를 찾을 수 시어의 의미가 잘 파악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산문을 단서로 활용한 이상의 시 교육 가능성’을 연구 주제로 삼은 것은 좋은 문제의식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만약 이 주제를 잘 다룰 수 있게 된다면, 이상도 우리 문학교육에서 더 이상 소홀히 대접 받는 일은 겪지 않게 될 것입니다. 아무쪼록 끝까지 관심을 놓지 말아 주기 바랍니다.
이러한 바람에서,
시를 이해하기 위해 산문이 어떤 도움이 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 좀 더 깊이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한 시인이 (동시에) 소설가, 또는 수필가로서 쓴 산문은 그의 시를 이해할 수 있는 배경적 단서를 제공해 줄 수 있습니다. 그 산문에 시의 의미 맥락을 형성할 구도의 원천이 자리잡고 있었을 수도 있고, 공통감을 형성하는 더 풍성한 맥락들(관습, 제도, 이데올로기 같은)이 마련될 수도 있습니다. 산문적 맥락이 훨씬 수월하여 시적 맥락을 보충해 주는 데 효과적일 것처럼 여겨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시를 산문화하여 이해하는 것은 매우 조심해야 합니다. 산문화란, ‘돌려말하기’에 다름 아닙니다. 그것은 시를 산문으로 만드는 것이며, 시 자체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산문을 참조할 수는 있으나, 참조하는 것은 시를 이해하는 여러 구도 중 하나, 혹은 몇 개입니다.
그러니 이 둘은 전혀 다른 차원의 얘기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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