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위사리, 박순호
바위 하나 굴러 떨어졌네
각으로 세워졌던 삶이
강바닥을 떠돌면서
파도에 휩쓸리면서
바람이 베어가고
햇살이 파내가고
다 내어준 뒤
바위의 몸에서 뭇별 같은 모래알
사리가 쏟아져 나왔네
잉여
「바위사리」는 바위와 모래알의 인접성 관계로부터 불교적 정진(精進)과 ‘사리’를 떠올려낸 재미있는 작품이다. 일반적으로 사리는 정진이 내면적인 과정이라는 것과 연계되어 존재의 내부에서 형성된 고갱이를 빗대어 표현하는 소재로 활용되곤 한다. 그래서 문병란은 ‘시(詩)를 ‘재 속에서 추리는 마지막 사리(舍利)’(「시」)에 빗대어 표현한다. 그런데 바위가 깨져 나가며 ‘사리’가 된다니. 이것은 맥락을 놓친 무리이거나 새로운 발견인 셈인데, 나는 후자 쪽을 응원한다. 바위가 뭇별 같은 사리를 쏟아내는 것이 그만큼 흔해서가 아니라 그만큼 ‘다 내어준’ 것이기 때문이라 할 수 있지 않겠는가.
다만 “각으로 세워졌던 삶이”에서 “햇살이 파내가고”까지의 과정은 사리가 나오기 위한 꼭 필요한 진술은 아니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한번 입 밖으로 나오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흐름(flow)이 이렇게 만든다는 것을 이해한다. 나 역시 열이면 여섯 일곱은 이렇게 쓰게 될 것 같다. 하지만 이 부분은 참았어야 한다. 전체 아홉 행 중에 다섯 행을 이렇게 쓰는 것으로 ‘뭇별 같은 모래알 / 사리’를 이끌려 나오는 것도 아니고, 저 사리 비유의 반짝거림에 다섯 행이나 필요한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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