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투리 : 콩과 식물의 열매를 싸고 있는 껍질.
모두잡이를 뜻하는 '고'와 알갱이의 단위를 뜻하는 '톨'(톨이)가 합쳐져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꼬투리'는 위의 뜻을 기본으로 삼지만 확장된 의미로서 '실마리'를 뜻하기도 한다. 특별한 형식 없이 생각을 발전시켜 가는 데 의미가 있다고 여겨지는 단서들을 논의하는 글의 묶음으로 이 말을 주제어 삼아 앞세운다.
읽기 전에 : 이 글은 한 스무 곡(?) 정도의 가사를 정리할 때까지 덧붙여가며 글을 계속 쓸 생각이다. 글을 다 쓰고 올리는 방식으로 그동안 블로그에 글을 올리다 보니, 여력이 없다. 그냥 숨김없이 생각의 전개 과정을 드러내면서 글을 만들어갈까 한다.
당신은 누구시길래 이렇게
내 마음 깊은 거기에 찾아와
어느새 촛불하나 이렇게
밝혀 놓으셨나요.
어느 별 어느 하늘이 이렇게
당신이 피워 놓으신 불처럼
밤이면 밤마다 이렇게
타오를 수 있나요
언젠가 어느 곳에 선가
한 번은 본 듯한 얼굴
가슴 속에 항상 혼자
그려보던 그 모습
단 한 번 눈길에 부서진 내 영혼
사랑이야
사랑이야
(송창식 작사, 작곡, 노래, '사랑이야')
70년대 포크송에는 클리셰(clieche)도 많고 지나치게 직설적이거나 단순화되거나 맥락과 배경 없이 구성된 가사들도 많고, 번안곡에 붙은 번안 가사도 많았지만, 동시에 여러 의미로 아름다운 가사도 많았다. 송창식의 노래에는 특히 그러한 가사들이 많다. '사랑이야'는 '첫눈에 반하다'의 아주 고급한 표현을 담고 있다. '단 한번 눈길에 부서진 내 영혼'은 물론 영혼이 상처를 입었다는 얘기는 아니다. 단단한 에고(ego)의 벽이 허물어졌을 때 비로소 남과 남의 관계로서가 아니라 연결된 존재로서의 관계가 형성된다. 여기에는 줄탁(啐啄)의 계기적 장면도 있고, 표현 수준만으로는 서정주의 '국화 옆에서'보다 오히려 한 등급 위로 여겨지는 저 영매 의식 같은 과정도 있다. (참고로, 이 촛불의 정반대 장면이 기형도의 '빈집'에 등장한다. 이건 아주 차갑게 슬프다. ㅠㅠ)
하지만 정작 이 가사 부분이 나를 사로잡았던 것은 저 '단 한번 눈길' 때문이다. 영혼이 부서질 정도의 큰 충격으로 사랑이 시작되는 출발점. '첫눈에 반하다'로는 도저히 근접할 수 없는 운명적인 사태를 경험한다는 것 때문이다. 만나서 좋아하게 되고 시들해지고 '역겨워'지고 헤어지게 되는 것이, 그러다가 또 만나서 좋아하게 되고 하는 것이 인생사라고 말할 수 있는 나이쯤은 되었지만, 저 '단 한번 눈길'은 아직 그 경지를 모르겠다. 그러나 그러한 경험이 있었다면 그 뒤에 이어질 일이 환멸이든 뭐든 뭐가 중하겠는가. 본래 이러한 해피엔딩은 바로 거기서 영화가 끝나기 때문에 붙여진 아이러니한 이름이다.
추가. 가사가 좋은 송창식의 노래들
언제부터 이 비가 내리기 시작했을까
언제부터 내가 이 빗속에 서 있었을까
노을에 물들은 구름처럼 꿈 많은 소녀
꿈 찾아 꿈을 찾아 저 멀리 떠나 버렸네
태양을 보며 약속했었지 언제까지나 길동무 되자고
눈물처럼 내 뺨엔 빗물이 흘러내리고
내가 왜 혼자서 이 빗속에 울고 있을까
태양을 보며 약속했었지 언제까지나 길동무 되자고
눈물처럼 내 뺨엔 빗물이 흘러내리고
내가 왜 혼자서 이 빗속에 울고 있을까
(윤형주 작사, 송창식 작곡, 노래, '비와 나')
새는 노래하는 의미도 모르면서
자꾸만 노래를 한다
새는 날아가는 곳도 모르면서
자꾸만 날아 간다
먼 옛날 멀어도 아주 먼 옛날
내가 보았던 당신의 초롱한
눈망울을 닮았구나
당신의 닫혀있는 마음을
닮았구나
저기 저기 머나먼
하늘 끝까지 사라져 간다
당신도 따라서 사라져 간다
멀어져 간다
당신의 덧 없는 마음도
사라져 간다
당신의 덧 없는 마음도
사라져 간다
(송창식 작사, 작곡, 노래, '새는')
님이 오시나보다 밤비 내리는 소리 님 발자국 소리 밤비 내리는 소리
님이 가시나보다 밤비 그치는 소리 님 발자국 소리 밤비 그치는 소리
밤비 따라 왔다가 밤비 따라 돌아가는 내 님은 비의 나그네
내려라 밤비야 내 님 오시게 내려라 주룩주룩 끝없이 내려라
(송창식 작사, 작곡, 노래, '비의 나그네')
(2021.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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