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은 시시각각 방향을 바꾼다지만
나에게는 언제나 같은 방향이다
바람을 마주대하기로 했을 때에는
가야 할 방향을 정해둘 까닭이 없다
다르게 부는 게 바람의 생리인 듯해도
바람은 항상 같은 방향으로 분다
바람에 묻어 있는 냄새는
산에서 내려오는 것과 골목을 훑고 나오는 것이
다르다, 길 건너는 횡단보도의 노란 페인트 줄무늬 위에서
다르고 첫 번째 골목인가 힐끗거리다가 갑자기
방향이 바뀌어 두 번째 골목으로 들어설 때도
다르다
바람이 기억에조차 없는 옛동네로 나를 인도할 때
알 수 없는 방향에서 알 수 없는 방향으로 흐르는
다만 나는 바람에 묻은 무수한 냄새들을 따라
바람의 길을 찾는다
항상 거기 있을 것만 같은 동네로 바람이 나를 이끌리라
하지만 바람은 수시로 방향을 바꾸고
나는 그곳이 어디인지 모른다
바람은
날카로운 수백 개의 바늘로 얼굴을 찌르다가
반가운 듯 등을 때린다 돌아다보면
다리 사이로 또아리를 틀고는
방향을 수시로 바꾸어가며 회오리친다
아주 오래 된 기억이
바람의 울음소리에 묻어 있다
사진을 씹던 염소가 지친 울음소리를 낸다
산 언덕을 휩쓸리며 수풀이 우우우우
언덕을 줄지어 서 있는 개량 주택 슬레이트 지붕들이
아-음-아-음 울음소리를 낸다
아직 빠져나가지 못한 바람의 조각들이 철문 뒤로 소용돌이 치고
알아챘는지 군함신발을 신은 아이가 속옷
바람에 뛰어나와 울음소리를 낸다
(202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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