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일단 시작하는 말
복합어의 구성에는 일정한 규칙이 있다. 문법적 구성에도 있고, 당연히 의미적 구성에도 있다. 의미적 구성에서 가장 기본적인 규칙 중 첫 자리에 오는 것이 마지막으로 남는 어근에 가깝게 위치할수록 본질적 속성을, 멀어질수록 현상적 속성을 갖는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가나다라'가 네 개의 형태소가 합쳐진 복합어 체언이라면 '라'가 가장 본질적인 속성을 '가'가 가장 현상적인 속성을 갖는다는 것이다. 여기서 '현상적인'은 '일시적인'이라거나 '표면적인'이라거나 '개별적인' 같은 말로 바꾸어쓸 수도 있다.
체언은 끝에 올수록 일차적인 어근에 가까워지니, 예컨대 '고운점박이푸른부전나비'라는 단어는 '곱(은)+점박이+푸르(ㄴ)+부전+나비'로 형태소 결합이 되어 있을 때 가장 큰 분류 표지인 '나비'가 이 단어가 가리키는 대상의 본질에 가장 가까운 것이며, '곱(은)'(고운)이 가장 세부적인 구분의 양상으로 판단되었을 것이다. 문법적으로 그렇다는 것이지, 이 단어의 형태소들이 '계문강과목속종' 같은 분류 체계 내에서 작명된, 또는 진화의 생명 나무에서 가지치기된 갈림길의 표지 같은 것이라는 말은 아니다. 다만 '장식→색→형태→대상'의 순서대로 2만여 종의 나비 이름을 짓는 규칙이 있음을 우리는 알 수 있다.
물론 복합어의 길이가 길다고 이런 규칙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김수한무거북이와두루미삼천갑자동방삭치치카포사리사리센타워리워리세브리깡무두셀라구름이허리케인에담벼락담벼락에서생원서생원에고양이고양이엔바둑이바둑이는돌돌이'는 세상에서 가장 긴 이름이겠으나―확인할 수는 없음―, 이런 규칙에 의해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이렇게 일정한 규칙에 따라 복합어가 만들어지는 까닭은 한정된 단어로 우주 삼라만상의 이름을 붙일 수 있게 하려는 인간의 효율성 원리 덕분이라 하겠는데, 이 효율성은 (우리가 무수한 단일어들을 매번 새로 배울 수는 없으므로) 제한된 단어를 풍부하게 사용할 수 있어야 하고 (똑같은 이름은 새 단어가 될 수 없으므로) 이미 사용한 단어를 같은 자리에 중복해서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제약을 긍정적으로 뒤집은 것이라 할 수도 있다.
2. 때때로 벌어지는 논란 : 이번엔 '외눈'
불과 이십 년 전만하더라도 낯설던 말인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이 이제는 우리의 언어 생활에서 당연한 기준처럼 여겨지게 되었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차별과 혐오에 기반한 언어가 늘상 문제시되고, 또한 문제로 여겨지지 않는 상황 속에 있다. 여기서 정치적 올바름이란 언어를 사용함에 있어 모든 종류의 편견이 포함되지 않도록 하자는 태도이고 인종, 민족, 종교, 언어, 성 등에서의 차별적 구분에 반대하는 입장이다. 그러니까 한편에서는 이 차별적 언어를 자각하고 반대하고 폐기하기 위한 노력이 현실화되어 있는가 하면, 다른 한편에서 여전히 차별적 언어가 사용되고 있다는 뜻이다.
그러는 와중에 언론에 다음과 같은 기사가 실렸다.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의 언어 표현에서 비롯된 장애인 비하 논란을 다룬 기사이다. 일단 기사를 읽고, 다시 얘기해 보자.
추미애 ‘외눈 표현’ 사과 거부에···이상민 “억지 주장” 장혜영 “장애비하 맞아” - 경향신문 (khan.co.kr)
‘뉴스공장’ 옹호한 추미애의 ‘외눈·양눈’…“장애인 비하, 사과하라” : 정치일반 : 정치 : 뉴스 : 한겨레 (hani.co.kr)
내전 번진 秋 ‘외눈’ 논란… “국어사전에 있다” vs “옹고집, 사과하라” - 조선일보 (chosun.com)
여기서 장애인 비하의 차별적 언어 사용이라는 논란의 핵심은 '외눈'이 특정 시각 장애인을 지칭하는 표현인데 이 말을 세상을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고 편견이나 왜곡된 시선으로 보는 사람을 뜻하는 맥락으로 사용하였으므로 시각 장애인을 비하했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어떤 행동을 한 이유로 비판이나 비난을 받는다면, 그 사람의 행동, 혹은 행태를 지칭한 단어 자체가 차별적 언어라고 문제되지는 않을 것이다. 정치적 올바름의 관점에서 차별적 언어 사용이란, 어떤 사람이 어떤 존재라는 이유만으로 비난의 대상이 되고 그 비난의 특정 언어 표현의 지칭 대상이 될 때를 말한다. 그러니 '외눈'이 특정 시각 장애인을 비하하는 표현으로 사용된다면 그것은 차별적 언어가 될 것임에 분명하다.
여기서 고려해야 할 두 가지 측면이 있다. 우선 위 기사들에서 언급된 '외눈'이 그 자체로 특정 시각 장애인을 비하하는 차별적 언어인가 하는 점, 그리고 추 전 장관이 세상을 편견을 가지고 보는 사람들을 비판하기 위해 사용한 '외눈'이 결과적으로 시각 장애인을 비하하는 의미로 사용되거나 이해되었는가 하는 점.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stdict.korean.go.kr/search/searchView.do#wordsLink)을 보면, '외눈'에는 이런 비하적 표현의 용례가 있기는 하다.(용례3) 하지만 주된 용례로는 '외눈박이' 할 때의 그 외눈이 첫 번째이고(즉, 불구적 현상으로서의 외눈이 아닌, 본래적 존재로서 외눈), 그 다음 용례가 '한쪽 눈만을 뜨고 볼 때의 외눈'이다. 추 전 장관의 발언을 보면, '외눈', '양눈'이란 본래적 존재성이나 불구적 존재성을 말하려는 목적에서 사용한 것은 아님을 알 수 있다. 그와 달리, 한쪽 눈만 뜨고 세상을 보려는 당파성, 혹은 편향성을 비판하기 위해 사용한 표현이라는 것이다.
외-눈
발음[외눈/웨눈]
「명사」
「1」 짝을 이루지 않은 단 하나의 눈. ≒단안, 척안, 편목.
외눈 도깨비.
「2」 두 눈에서 한 눈을 감고 다른 한 눈으로 볼 때 뜬 눈. ≒단안, 편목.
외눈으로 목표물을 겨누다.
「3」 → 애꾸눈이.
그렇더라도 이와는 별개로 이 말의 사용으로 특정 시각 장애인이 마음에 상처를 입었을 수 있다고 주장할 수는 있다. 하지만 보도된 내용대로라면 정의당의 정혜영 의원은 '장애혐오 발언'을 강조하고, 민주당 이상민 의원도 '장애인 비하 의도'라고 말하는 등 의도성에 초점을 두고 있다.
흔히 공인이라 불리는 사람들의 언어 습관이 좀 더 신중하고 조심스러워야 한다는 점에는 이의가 있을 수 없다. 그들의 발언 하나하나는 공적인 영향력을 발휘하니까. 하지만 오늘 다루려는 이 문제에서는 '외눈'이 '장애인 비하 표현이냐, 아니냐'보다 더 원천적인 언어 사용의 문제가 담겨 있다. 이는 정치적 올바름이 어디까지 유의미하고 어떤 점에서 문제적인지에 대한 생각의 단초를 제공해 주는 지점이기도 하다.
3. 모든 언어는 차별의 시대를 거치며 만들어져 왔다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말들 중 대부분은 과거에 이미 만들어져 사용되어 온 것들이다. 아주 일부가 새롭게 만들어져 우리 후대로 이어지겠지만, 그 외의 대부분은 노예제 시대에 태어난 것도 있고, 신분제 시대에 태어난 것도 있고, 성과 인종과 민족과 계급과 종교와 문화의 특정 지배권이 배타적으로 작동할 때 태어난 것도 있습니다. 한마디로 우리가 사용하는 말들 중 대부분이 차별의 시대에 만들어졌습니다.
차별의 시대에 만들어진 언어는 차별의 관계와 구조를 반영합니다. 차별적 사고를 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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