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은--특히 문학 교육은-- 사회 집단이 보유하고 있는 기억 장치의 근대화된 형태이다. 즉, 소위 문화라는 것을 구성하는 일단의 지식과 지혜를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전수하는 기능을 한다.”
전통적으로 지식과 지혜의 전수라는 측면에서 교육은 교육의 내용을 결정하는 선임자들의 집단과 이를 습득하여 계승하는 후임자들의 집단으로 이원화(二元化)되어 왔다. 연륜(年輪)이나 고전(古典)은 지식과 지혜를 보증하는 가치의 기반이었다. 그런데 생물학적 세대 관념이 퇴색한 현대 사회에 이르러 선임자와 후임자간의 동시대성은 이러한 교육적 기반을 흔들어 놓고 말았다. 또한 인간의 기억을 대리할 저장매체들의 등장은 선임자들과 이 매체들에 급속히 접근하게 된 후임자들간의 경쟁을 낳았다. 그에 따라, 앞 세대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지식이나 지혜 가운데 실제에 적용할 수 있는 실용적, 효율적 지식의 절차와 기술을 습득하기만 하면 되었던 교육의 양상도 전면적으로 수정되게 되었고, 전수의 중심 기관(예컨대, 수도원, 도서관 같은)은 점차 CD-ROM과 대중 매체와 인터넷 등을 통해 파열되고 분권화, 광역화되는 양상을 보이게 되었다.
오늘날 교육 체제에 관련하여 지식 전수―의사 소통 논쟁이 곳곳에서 벌어지게 된 것이 이 때문이다. 이제 교사는 전수와 계승의 체제만으로 그 가치가 보증되던 교육 내용을 지니고 있지 못하다. 교사는 합리적인 설명을 통해 학습자에게 그 가치를 증명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교육을 둘러싼 수많은 담론들은 거래되지 않는 한, 소음(noise)이 되고 만다. 교사에 의해 통제되지 않는 학습자간의 대화나 행위들뿐 아니라 학생들에 의해 거부되는 교사의 설명들―비록 그것이 교육 내용에 관한 것이라도 이해되지 않는 설명들, 떠들지 말라는 지적, 학생 개개인에 대한 사적인 발언들―이 모두 소음이 된다. 교육을 전제로 했을 때, 학생들은 교육 내용에 대한 교사의 합리적인 설명만을 합당한 거래로 받아들이려 한다. 따라서 수업에서 소음에 해당하는 진술들이 이루는 실로 엄청난 양 때문에, 교육이라는 거래가 이루어지는 것 자체가 신기한 일처럼 보인다.
이렇게 많은 소음들을 제거하고 거래의 진정성을 얻기 위해 교사의 진술과 학생의 진술, 그리고 텍스트는 ‘진실’이라는 신용 수단을 선택한다. 교육이라는 담론의 공간에서는 실제로는 불공정한 거래가 이루어지고 있을 때에도 진실이라는 담보로 공정성을 보증하려고 한다. 이것이 교육에서 진실이 갖는 양면적 속성이다. 한편에서는 통제의 수단으로, 다른 한편에서는 교육의 성립 조건으로 진실의 담론이 선택된다.
최지현, 오래 전 글에서
'공부 중 > 문학교육'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문학교육심리학 (2) | 2014.06.26 |
---|---|
[발표] 창의인성교육의 의제설정이 문학교육에 던지는 질문 (0) | 2012.11.26 |
[발표] 문학 독서 교육이란 무엇인가 (0) | 2012.09.01 |
[단상] 문학 수업에서 상호작용이 요구되는 경우는? (0) | 2012.03.29 |
[단상] 가르칠 수 없다면 교육할 수 없는가? (0) | 2012.03.27 |
[단상] 밴쿠버의 한 문학 교실 (스크랩) (0) | 2012.01.15 |
[단상] 문학교사, 존재하는가... 그후 (스크랩) (0) | 2012.01.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