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름에 관한 짧은 도입
- '국어교육과'와 비슷한 이름의 학과 명칭을 있는 대로, 만들어서라도 적어 보자. 국어교육과, 한국어교육과, 모국어교육과, 자국어교육과, 자민족언어교육과, 독서교육과, 언어교육과 ……. 여기에 '과' 대신 '학과'를 넣어도 되니 이름의 갯수는 더 늘어날 수 있다. 그 많은 이름 중에 '국어교육과'가 선택된 이유는 무엇일까 생각해 보자.
- 우리나라의 국공사립 대학 중 사범대학에 국어교육과를 두고 있는 곳은 38개가 있다. 그 중 한국외국어대학교가 '한국어교육과'로 이름이 붙은 학과를 두고 있고 나머지는 모두 '국어교육과'로 명칭을 삼고 있다. '국어교육학과'라는 명칭은 사범대학이 아니라 학과 형태로서 석박사 과정을 운영하고 있는 대학원의 전공 단위 정도에서 발견된다.
가톨릭관동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
강원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
경북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
경남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
경상국립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
계명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
고려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
공주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
대구가톨릭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
대구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
동국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
목원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
부산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
상명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
서원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
순천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
신라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
안동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
영남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
우석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
원광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
이화여자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
인천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
인하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
전남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
전북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
전주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
제주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
조선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
청주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
충남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
충북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
한국교원대학교 제2대학 국어교육과
한국외국어대학교 사범대학 한국어교육과
한남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
한양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
홍익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
- 대부분의 모국어교육은 가정에서(혹은 그에 준하는 1차 집단에서) 이루어지므로, 굳이 학과를 둘 필요성이 없을 것이다. 유아교육에서는 언어교육을 통합교육의 형태로 다루고 있다. (말하자면 유아사범대학이나 유아대학이 있어서 그 하위에 모국어교육과라든가 유아언어교육학과 같은 전공 단위를 두는 일은 없다는 뜻이다.)
- 국어교육은 같은 언어를 쓰는 동일집단의 범위 중 독자성을 지닌 가장 큰 단위라 할 수 있는 국가를 제도적, 정책적 실행 단위로 하여 이루어지는 언어교육를 통칭하는 말이고, 한국어교육은 자국어로서의 국어뿐 아니라(또는 자국어로서의 국어를 제외하고) 외국어로서의 한국어를 대상으로 이루어지는 국가라는 실행 단위를 넘어선(혹은 벗어난) 언어교육을 통칭하는 말이다. 한국어교육에서 후자는 '외국어로서의 한국어교육'이라는 명칭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억지로 만들어냈으니 실제로는 사용될 가능성이 거의 없는 자민족언어교육과는 모국어교육과와 실제로는 포괄 범위가 비슷할 것이다. 자국어와 자민족언어의 결정적인 차이는 전자가 국가 내에서 제도적, 정책적 여건과 수단을 가지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자국어교육에서는 학제, 교육과정, 학교, 교사, 교재, 평가체제 등등이 모두 고려되어야 한다.)
- 국어는 의외로 범위가 큰 전공 분야라, 교육으로 보자면, 대교과적 성격이 있다. 그 안에 독서, 작문, 화법, 문법, 문학 같은 과목들이 있는데, 외국의 경우 '국어'에 해당하는 대교과명을 쓰지 않고 '독서교육'이나 '의사소통교육', '문학교육' 같은 용어를 쓰기도 한다. 이런 경우, 여러분에게는 낯설기는 하겠지만, '독서교육과'나 '의사소통교육과'가 있을 수도 있다. (실제로는 전공 형태로 있게 되겠지만.... 독서교육 전공, 의사소통전공....)
- 국어교육이 학문적 대상이라고 여겨진다면 마땅히 국어교육학과라는 명칭을 썼을 것이다.
2. '교직은 성직(또는 천직)인가'와 천직을 위한 교육
- 이번 학기 내내 반복해서 묻게 될 내용이기도 하지만, '국어교사는 어떤 존재인가' 하는 질문은 국어교육과의 명칭과도 관련이 있다. 학습무가 수행과 훈련의 과정을 필요로 하는 동안 강신무에게는 신내림 의식만 있으면 되는 것처럼, 만약 교사가 하늘이 내린 운명 같은 것이라면 교사가 되기 위해서는 교사로서의 자각을 불러일으키는 깨달음의 과정만 있으면 되겠다. 국어교육과는 이 깨달음을 얻는 교육이 주가 될 것이고, 그 외의 준비는 각자 알아서 하더라도 충분하다. (교육적 지원이 더 있으면 물론 더 좋겠지만)
- 교직이 성직이라면 예비교사는 수도사인 셈이고, 사범대학은 수도원일 것이다. 수도원에서는 무엇을 공부하게 될까?
- 교직을 성직이라고 부르던 시대에는 교사에게는 소명과 순명(順命)이 있을 따름이라는 순응주의적인 교사관이 있었고 그렇지 않아도 사회에서 가장 보수적인 기능을 해 온 학교라는 제도에서 그 보수적인 기능인 유지와 계승을 지켜낼 수호자를 이념적으로 정당화해야 했을 것이다. 그들에게 학문은 지식 체계이고 이를 익혀가는 과정이라 하겠지만, 한자인 '學問'을 놓고 보더라도 학교가 계승할 지식은 배우고 반드시 묻어야 하는, 달리 말해 배움이 의문으로 이어지는 공부의 대상이 되어야 할 것이다.
- 성직관이 교사의 체제 수호자적 기능을 합리화하기 위한 핑계의 논리였던 것처럼, 성직관의 세속화된 버전으로서 천직관(결코 천하다는 의미에서 말하는 '천직'이 아니다.)은 '타고난 교사'를 상정한다. 교사로 적합한 성품으로 태어났다는 말은 예비 국어교사로서 여러분에게는 마치 배타적인 권리를 인정하는 듯한 달콤한 표현이지만, 거꾸로 보면 교사가 가져야 할 품성이 정해져 있고 거기서 벗어나서는 교사로서의 자질을 갖추지 못한 것으로 단죄되는 논리가 자리잡고 있다. 아무나 교사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교사로서 정해진 품성이 따로 있다고 할 수 있지도 않다.
- 성직이든 천직이든 교사가 소명을 받은, 타고난 존재라면 그를 위한 교육은 학문일 필요는 없다. 이 경우 '국어교육과'로 충분하다.
3. '교직은 전문직인가'와 전문직을 위한 교육
- 성직자관(혹은 천직관) 다음에는 한때 교사를 노동자로 규정하는 관점도 있었지만, 어디 노동하지 않는 인간이 있겠는가? (이 말은 물론 일반론이다. 어떤 노동자도 일을 하지 않을 때가 있고, 건물주이든 자본가이든 가치를 생산해 내는 노동을 하기도 한다.) 그 후로 학교 위기론, 학교 붕괴론이 나왔던 90년대 말에서 2000년대 초반을 거치면서 교사를 교육 전문가로서 재정립하려는 관점이 대두되었다. 당연히 이 무렵 교사의 전문성 강화를 위한 이론적, 실천적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던 때였다. 교사들의 상당수가 대학원에 진학하고, 박사급 교사들이 중고등학교 교과목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사범대학의 목표에는 '현장 교육 전문가 양성'이 포함되었다.
- 서 있는 자리가 다른 풍경을 만들어낸다고 한다. 교사를 전문가로 보게 되면 교육 현상도 이론적 분석의 대상으로서 달리 보이게 된다. 교사를 양성하는 일은 교육 전문가를 양성하는 일이 되므로, 그 일 또한 전문성을 요구받게 된다. 국어교육은 대학의 교수와 연구자들에게만 이론적 대상이 되는 게 아니라 교사와 예비교사 모두에게 이론적 대상이 된다.
- 이러할 때, 교육 전문가를 양성하는 대학 기관은 국어교육학과가 되어야 할 명분이 생긴다. 2000년대 중반 이후로 사범대학 학과들의 명칭을 '-과'가 아닌 '-학과'로 바꾸자는 의견들이 이곳저곳에서 나왔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4. 국어교육학과가 아닌 이유
- 이쯤에서 사범대학이 무엇을 목표로 하는 곳인지에 대한 근본 질문을 다시 떠올릴 필요가 있다. 사범대학은 일차적으로는 중등 교원을 양성하는 교육 기관이고, 사범대학 국어교육과는 중등 국어 교사를 양성하는 것을 일차적인 목적으로 삼는 전공이다. 그렇다면 '-학과'가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다. 중등 국어 교사 이외에도 국어교육을 실행할 여러 분야의 여러 직종, 직업군이 있고, 그 중에는 기업이나 기관, 사회 단체 등의 언론, 홍보, 교육, 대외 협력 분야의 일을 하는 직업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직업군이 '-학과'를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니다. 국어교육을 학문적으로 다루는 직업적 연구자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직업적 연구는 대학원에 가서 비로소 하게 된다.
- 사범대학 국어교육과는 역사적으로 여러 경로를 통해 현재에 이르렀다. 일제 강점기 사범학교, 혹은 여자사범학교로 출발하여 해방 이후 일부는 사범대학으로, 다른 일부는 교육대학으로 바뀐 일이 있고, 인구 증가에 따라 운영되던 (임시) 중등교원 양성소가 이후 여자사범대학, 혹은 사범대학으로 바뀌었다가, 사범대학으로 바뀐 일도 있었다. 양성하려던 교원의 학교급은 달랐지만 교원 양성이라는 점에서는 근대교육 제도 내에서 달라진 것이 없었다. 특히 전국의 사립 사범대학들이 주로 교원 양성소에서 출발하여 사범대학으로 자리잡게 되었다는 점을 고려해 볼 때, 사범대학은 출발부터 교원 양성이라는 특수 목적에 기초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 사범대학이 아닌 곳에서는 대개 '-학과'라는 명칭을 쓰고 있지만, 이때 '학과'는 공통된 교육과정에 함께 자리잡고 있는 특정 전공 분야나 영역의 교수 공동체를 기준으로 붙여놓은 이름이어서 교육 수요에 따라 다전공 융합교육을 중시하게 된 오늘날의 교육 현실에서는 명칭 논란까지 벌어지고 있는 중이기도 하다. (한양대의 그 유명한 '러닝사이언스학과' 같은.... 그런데 여전히 학과 명칭을 쓰고 있기는 하다.) 반면, 사범대학이 아닌 곳에서 '학과'라는 명칭을 쓰지 않는 다음과 같은 경우들이 있기도 하다. 첫째, 학부 체제 내에 '전공'으로 존재하는 경우(그런데 전공의 내용은 많은 경우 학문으로 분류되어 있기는 하다), 둘째, 기계과, 전산과, 자동차과, 의료기기과 같이 과거 전문대의 과 명칭으로 사용되는 경우(전문대가 산업대, 폴리텍 등으로 바뀐 다음에는 학과 명칭을 갖게 된 경우가 많다.), 셋째, 의예과, 성악과, 멀티미디어과 같이 전문화된 기술과 숙련된 수행 능력을 기르는 교육 기관의 명칭으로 사용되는 경우.
- 사범대학의 소속 학과들이 '학과'라는 명칭을 쓰지 않는 것은 교사 양성 기관이라는 기능적 분류로서의 성격과 앞의 세 번째 경우 같은 특정 분야의 숙련된 능력 양성을 전제로 한 교육 기관이라는 목적적 분류로서의 성격이 결합되어 있다고 할 만하다.
- 그건 그렇고, 그렇게 하여 국어교육과가 국어교육학과가 아닌, 국어교육과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게 된 것이고, 여러분은 국어교육과에 입학하게 된 것인데, 그렇다면 여러분이 국어교육과에 무엇을 기대하게 될 것이며, 무엇을 하게 될 것이고, 무엇을 하기 위해 사회로 진출하게 될 것인지를 알 수 있을 터인데, 다음의 광고는 어디를 겨냥한 것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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