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과정 좌담회
시 간 : 2009년 4월 18일 늦은 3시~5시
장 소 : 전국국어교사모임 2층 회의실
참가자 : 조장희(우리말교육연구소 부소장, 신일중학교 교사)
서진석(역곡중학교 교사)
서혁(이화여자대학교 국어교육과 교수)
최지현(서원대학교 국어교육과 교수)
정 리 : 정영진(가락중학교 교사)
Ⅰ. 인사
조장희(이하 조): 이제 검인정 국어 교과서 심사 결과가 발표되었고, 올해 하반기에는 각 학교에서 교과서를 골라서, 내년에는 중학교 1학년부터 새로운 교과서로 수업을 해야 합니다. 이런 전환기를 맞아서 교육과정과 교과서에 대해서 잘 모른다면 나침반과 지도도 없이 낯선 길을 찾아나서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교육과정과 교과서에 대해서 좋은 말씀을 듣고자 대학에 계신 두 분 선생님과 현장에 계신 한 분 선생님을 모시게 되었습니다. 정말로 바쁘실 텐데 이렇게 나와 주셔서 고맙습니다. 생각해 보니 오늘 모신 분들은 전국국어교사모임과 아주 남남은 아닌 것 같습니다. 국어교사모임과 어떤 인연을 갖고 계신지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서혁: 저는 기본적으로 교과교육은 이론과 실제, 대학과 현장이 공동 작업을 하면서 함께 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전국국어교사모임의 우리말교육대학원이나 우리말교육현장학회의 활동을 하면서 인연을 맺게 되었고요, 그밖에 국어 수업 개선, 실천 방안 연구 등을 함께 하면서 전국국어교사모임을 더 잘 알게 되었습니다.
최지현(이하 최): 저는 1987년 겨울 무렵부터 전국국어교사모임과의 인연이 시작되었습니다. 대학 졸업을 앞두고 있던 때였는데, 교직 진출이냐 아니면 지역 운동이냐를 놓고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전국국어교사모임 준비 모임을 만났습니다. 교사가 되기 몇 개월 전이었지만, 이 준비 모임에서 5차 교육과정을 분석하는 분석 팀 활동을 시작했지요. 그것이 국어과 교육과정과의 첫 만남이었고, 동시에 전국국어교사모임과의 첫 만남이었습니다. 그 후로 퇴직할 무렵인 전국국어교사모임 봉천동 사무실 시절까지 활동을 했었습니다.
조: 말씀을 들으니까 두 분은 거의 같은 식구 같은 느낌이 드네요. 서진석 선생님도 간단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서진석(이하 서): 저는 전국국어교사모임에서 활동을 잘 하지는 못했고요, 대학 때 전국국어교사모임 연수를 많이 쫓아 다녔어요. 발령 후에는 오히려 모임에는 잘 못 오고 [함께 여는 국어교육] 회지에 원고 쓴 적이 좀 있고요, 재작년에 교과서 관련 모임에 참여하면서부터 얼굴 내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절 보면 전국국어교사모임에서 큰 활동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더라고요. 사실 그렇지 않은 것이 현실인데 말이죠. 아무튼 마음으로는 늘 함께 하고 있습니다.
조: 저도 간단히 말씀드릴게요. 저도 대학 때 전국국어교사모임 쫓아다니다가 91년 발령 후에는 뜸해지고 96년부터 다시 시작한 활동이 지금까지 이어 오고 있습니다. 열심히 활동한다고 하는데 발로만 뛰어다니고 머리로 뭘 한 것 같지는 않아요. 아무튼 많이 배우려고 남아있습니다.
그럼 오늘 나눌 내용에 대해서 간단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오늘 좌담회에서는 교육과정이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 그리고 현장 교사들이 갖고 있는 교육과정에 대한 생각 등 교육과정에 대한 얘기를 하고, 두 번째는 검인정 체제, 좀 더 나아가서 자유발행제에 대해서도 얘기를 해보고요, 마지막 세 번째는 교과서의 선정에 대해서 얘기를 나눠보겠습니다.
Ⅱ. 교육과정에 대해서
Ⅱ-1 교육과정을 어떻게 볼 것인가
조: 먼저 교육과정을 만드는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 봤으면 합니다. 교육과정을 만드는 과정이 순탄치 않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런 것들도 포함해서 선생님들께서 보시는 교육과정에 대해 말씀해 주셨으면 합니다.
서혁: 이제는 국어과 교육과정 자체에 대해 깊이 고찰을 할 때가 되었다고 봅니다. 교수 요목기부터 현재까지 큰 틀은 국어사용 능력으로 가고 있지만, 작업을 했던 분들 얘기를 들어보면 교육과정이 나오고 이에 따라 교과서가 나오지는 않았다고 해요. 어떤 때에는 교육과정과 교과서가 같이 나왔고, 또 어떤 때에는 교과서 나오고 교육과정이 나오기도 해서 교육과정 문서에 의거해 국어교육의 내용을 연구해 왔던 우리로서는 당혹스럽기도 했었는데요, 그만큼 국어교육의 체계가 덜 잡히고 그에 따라 어려운 점도 많았죠.
최: 자주 문제 제기되는 부분이기는 합니다만, 국가교육과정의 총론이 먼저 결정되고 각 교과별 교육과정이 내재적 발전 요구가 아닌 이 총론에 의해 개정의 방향이 결정되는 하방식 교육과정 개정이 문제의 시발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국어과에 내재된 요구들이 반영되지 않고 오히려 총론을 정당화하고 합리화하려고 하게 됩니다. 이러한 것이 국어과 교육과정에서 짚을 수 있는 문제라고 할 수 있죠.
서: 현장교사들에게 교육과정은 멀게 느껴져요. 교사에게 당장에 눈앞에 가까운 문제는 교과서죠. 교육과정을 참고로 해서 수업을 준비하지는 않습니다. 자습서나 현장 연구 자료를 참고하는 경우가 많죠. 저도 그렇고 다른 주변 분들도 그런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교육과정이 몇 차냐 하는 것은 현장 교사에게는 크게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아요.
조: 그것이 현장 교사들만의 책임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교사들이 교과서에 관심이 부족한 것은 사실입니다. 교과서의 체계나 내용에 대해 깊이 고민하지 않는 경우도 많고, 전체적인 학습 목표와 전반적인 교육과정의 틀을 머릿속에 담고 있지 않은 경우도 많죠.
Ⅱ-2. 7차 교육과정을 어떻게 볼 것인가?
조: 그럼 7차 교육과정에 대한 간단한 평가를 해보고 2007 개정 교육과정에 대해서 얘기해 보겠습니다.
서혁: 7차 교육과정부터는 교육과정이 체계화되고, 세련되어졌다고 합니다만 문제는 이상적인, 개념적인, 이론적인 면이 강했다는 것입니다. 수준별 교육과정에서 수준이라는 개념을 학교 현장에서 실제로 운영하면서 규정해야 하는데 교육과정에서 먼저 규정하려고 했던 것이 문제였죠. 7차 국어과 교육과정을 보면 내용 체계표에 학년별, 영역별 내용을 빈 칸 없이 넣은 것이 체계적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작위적이라는 비판을 받았잖아요. 너무나 과정 중심으로 구성하다 보니까 통합적으로 되지 못하고, 분석적으로 되어 있어요. 쓰기의 경우 내용 선정 단원이 따로, 내용 조직과 표현 단원이 따로 되어 있는 것이 그 예라고 할 수 있죠. 한마디로 매우 체계적이고 위계적이고 세련되게 만들려고 했는데, 실제로는 준비가 덜 돼서 실현이 불가능한 교육과정이 되었죠.
최: 7차 교육과정은 수준별 창의성 교육을 강조했는데, 수준별 교육과정은 개발 과정에서부터 구현이 어렵다는 문제가 많이 제기되었습니다.
창의성을 교육과정에서 내세운 것은 6차 교육과정에서 제시한 ‘문제를 제기하고 해결하는 능력’을 강조한 것에서 한 발 나아간 것으로 볼 수 있는데요, 문제를 생산한다는 의미에서 창의성을 내세웠던 것은 이전의 국어과 내용 안에 들어오지 못했던 새로운 영역에 대한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는 점에서 인정받을 만합니다.
그리고 큰 틀에서 주목할 부분이 국민공통기본교육과정을 정했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국어과를 떠나서 교육 전반에 굉장히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담고 있었습니다. 초·중등학교 학제와 교원 양성 체제의 변화에 대한 논의까지 담고 있는 부분입니다. 하지만 이것을 내세우기만 하고 시작을 못했죠. 너무 엄청난 일이라서 표면화시키지 않은 것일지도 모르는데 결국 10개 학년 동안 교육내용을 촘촘하게 박아놓는 부작용이 생긴 것이죠.
이런 것은 7차 교육과정의 특성이자, 의의이면서 한계라고 봅니다.
Ⅱ-3. 2007 개정 교육과정의 영역에 대해서
조: 이제 2007 개정 교육과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봤으면 합니다. 이번 2007 개정 교육과정에서 현장 교사들이 아쉬워하는 부분은 내용체계입니다. 실제 교육과정을 개정하면서 층위가 다른 내용 체계에 논란이 가장 많았죠. 선생님들께서 일정 부분 관여하신 부분이 있었으리라고 생각하는데 내용체계에 대해 말씀해주시길 바랍니다.
최: 2007 개정 교육과정을 만들면서 치열하게 논의했던 것이 2005년에 있었던 쟁점 토론회 무렵이었습니다. 이 자리에서 김대행 교수가 3개의 영역(말하기/듣기, 읽기, 쓰기)을 제안했는데, 그 관점은 이 3개를 내용 영역으로 잡아야 한다는 것이었지요. 그런데 쟁점 토론에서는 ‘영역’이라는 용어만 소통되면서 문학과 문법은 없어도 된다는 의미로 전달된 것이죠. 그래서 혼선이 생겼고, 이것이 논의를 왜곡시키면서 영역 논의의 진전을 가로막게 되었습니다.
쟁점 토론회는 당대 여러 학문적 입장을 가진 대표되는 분들이 나오시기는 했으나 개인적인 생각들을 나누는 자리가 되어 버렸고, 특히 엄밀하지 않은 용어 사용 때문에 소통에 장애가 있었습니다. 한마디로 굉장히 풍성한 얘기가 혼란스럽게 시작되어 결론 없이 끝나고는 원래대로 되었죠. 그 문제는 지금도 여전하다고 봐요.
서혁: 영역, 통합 부분에 대한 논의인데 2005년 교육과정 개편 논의를 집중적으로 할 때 교육과정 평가원에서 학회의 공식 입장을 내달라고 했으나 우리 학회에서는 공식 입장을 내지 못했어요. 이유는 다양한 전공 영역 교수들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인데요, 그래서 하나의 의견은 보내지 못하고, 다양한 의견만 전달했을 뿐이죠.
서: 경기도는 2007 개정 교육과정 연수를 집중적으로 했어요. 교사 모임과 연수가 많았지만 현장교사들은 다들 귀찮다는 반응이 많았어요. 당장 내 수업과 관련이 없기 때문이죠. 평소에도 관심이 없었으니 바뀐다는 것이 크게 와 닿지 않았던 거죠. 검인정 체제로 바뀌어서 교과서가 바뀐다는 것도 아직 모르는 선생님들이 있어요. 저도 교과서 모임에 참여하면서 알았지 그렇지 않았으면 저도 몰랐을 거예요.
Ⅱ-4. 국어교육의 영역과 통합에 대해서
최: 국어교육학의 본격적인 논의가 이제 20년을 조금 넘게 이루어지고 있는데요, 국어교육의 영역 논의가 시작되었을 무렵에는 국어교육을 연구하는 분들 중에 교육과정을 깊이 있게 이해하신 분들이 거의 없었습니다. 전문가가 없는 상태에서 입장과 관점만을 내세우 다 보니 ‘영역’이라는 개념 자체가 오해된 상태에서 논란이 커져 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국어교육이 어떤 능력을 길러주는 것인가 하는 관점 문제와 국어교육의 교육과정이 어떤 체계를 가져야 하는 것인가 하는 문제는 다른 층위의 문제입니다만, 이 둘이 혼재되어 논의되면서 말하기, 듣기, 읽기, 쓰기, 문법, 문학이 자연스럽게 영역으로 굳어져서 지금까지 오게 되었죠. 그러다 보니까 영역 논의에 부합하지 않는 논란이 곳곳에서 나타나게 되죠. 교육과정의 학년별 내용이나 성취기준을 보면 각 항목들이 비슷한 정도의 학습량과 수준을 가져야 하잖아요. 그런데 실제 교육과정에 투입되는 장면, 예컨대 교과서의 단원 구성과 연계시켜 살펴보면 문학은 1~2시간에는 학습할 수 없는 큰 단위의 성취기준들이 설정되는가 하면 듣기, 말하기는 기능화되어 분절된 단위들이 들어가 있어서 서로 층위가 맞지 않는 거예요.
기능을 이렇게 나눠놓았기 때문에 이 문제는 영역 통합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영역을 바라보는 관점과 교육 내용을 설정하는 구체적인 작업에서 근본적인 논의의 재검토를 필요로 하게 되었습니다.
서혁: 최지현 선생님 말씀에 대부분 공감하면서 부연해서 설명하면, 김대행 교수가 2005년 당시에 말하기/듣기, 읽기, 쓰기 세 영역으로 넣은 것은 이전과 생각이 달라진 결과물이었다고 봐요. 영국에 교환 교수로 다녀오면서 읽기 속에 문학이 들어와 있는 영국 교육과정을 본거죠. 기능 영역이 활동만 있고 내용 없이 공허하다는 비판을 받는데, 문학을 끌어들이면 내용이 풍부해지고, 문학이 가지고 있는 언어 사용 장치가 많다고 주장했거든요. 이런 제안은 필연적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또 문법만 보더라도 최근 문법교육에서 석박사 논문 쓰는 젊은 연구자들은 통합적 문법교육의 관점에서, 문법 교육의 목적은 학습자들이 말하기, 듣기, 읽기, 쓰기 활동과 통합되었을 때 학습 효과가 높아진다고 연구하고 있거든요. 이전 세대의 연구자들도 그것을 인정하면서도 기존의 문법이 영역 구분에서 보이지 않는 것이 싫은 것이죠.
최: 통합이라는 용어가 걸리는데요, 통합할 것이 있어야 통합을 얘기할 수 있는 것 아니겠어요? 김대행 교수도 영국의 교육과정을 이야기하시고, 전국국어교사모임에서도 우리말 우리글 개발하면서 외국의 교육과정을 봤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외국의 교육과정을 가져올 때 조심해야 할 부분이 있어요. 교육과정을 가져올 때 용어를 단순히 우리말로 번역을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거든요. 예를 들어 영국에서 듣기나 말하기, 읽기, 쓰기와 같은 용어들이 들어왔을 때 그것들이 분류의 표지이기는 하지만 내용을 가지고 있는 개념은 아니에요. 읽기 활동을 통해서 할 수 있는 내용들이 이런 것들이 있다는 얘기이지, 읽기의 기능이 이런 내용을 갖고 있다는 것이 아니에요. 그런데 이것이 국내에 들어오면 읽기가 내용 영역인 것처럼 용어를 쓰고 있죠.
그렇게 본다면 듣기, 말하기, 읽기, 쓰기 등을 서로 합친다고 통합이 되는 것이 아니라고 봐요. 예를 들어 듣기와 말하기, 읽기, 쓰기가 함께 나타내고 있는 언어 사용의 목적이나 능력의 수준이 뭐가 있느냐 하는 것을 따져야 하는 거지요. 예를 들어 의사소통이 문제인가 아니면 지식 탐구가 문제인가, 그런 것들을 내용적으로 항목화할 수 있다면 그게 영역이 되는 것이고, 그 안에서 말하기를 하든, 듣기를 하든, 읽기를 하든, 쓰기를 하든 그것들이 통합되어 나타나는 것이고, 각 영역별 기능들로 활용되는 것이죠.
그래서 문학교육 연구하시는 분들 중에는 이런 얘기를 하시는 분들도 있어요. “문학 영역이 없어져도 좋다. 문학 영역이 남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문학교육이 어떻게 실현되는가가 중요하다.”고 말이죠. 그런데 당시 쟁점 토론회에서는 듣기, 말하기와 같은 용어들이 살아남아서 어떤 용어를 선택하느냐가 문제가 되었죠.
조: 제가 생각한 통합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말하기, 듣기, 읽기, 쓰기의 층위와 문법, 문학의 층위가 다른데 일직선상에 놓여 있는 것이 이상하다고 봐요. 이것들이 일직선상에 같이 놓여 있는 것이 아니라 씨줄과 날줄처럼 엮어져야 올바른 내용체계가 될 것이라고 일단은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죠. 그런 의미에서 통합이라는 개념을 잡고 있습니다.
이번 2007 개정 교육과정에서 통합이 되지 않아 아쉬움이 있다는 것은 이런 생각들이 반영되지 않은 것을 얘기한 것입니다.
서: 현장교사의 입장에서는 좀 부끄럽지만 그런 문제로 첨예하게 고민하는 것은 부족한 상황이죠. 교육과정이나 교과서는 주어진 것이니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해보겠다는 생각은 하기 힘들어요. 학회에서 논의하는 부분이 나와 관련되었다고 생각하지 않고 내가 수업하는 기존의 교과서 수준에서 고민이 그치는 경우가 많죠.
통합에 관해서 생각해 봤을 때에는 교과서에서 영역이 분절되어 있더라도 대체로 교사가 통합적으로 운용할 수는 있죠. ‘말해보자’라는 발문을 갖고서 써볼 수도 있고, 토론 활동으로 이끌 수도 있으니까요. 그러나 교사가 아예 교육과정에 대해서 모르거나 혹은 무시하고 학원 식으로 내용 전달만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봤을 때 현장 교사들은 내용이나 통합에 대해 크게 고민하지 않는 것 같아요. 저도 교육과정의 내용체계를 보면서 이것이 중요한 문제인데 수업할 때는 그런 생각이 사라지고 아이들과의 관계 문제가 더 먼저 떠오르는 것이죠.
Ⅱ-5. 현장교사와 교육과정의 거리
조: 예, 실제로 현장 교사는 대학에 있는 연구자들보다는 교육과정에 덜 관심을 갖는 것이 사실이고, 그러다 보니까 교육과정에 영향을 거의 미치지 못하고 있다고 봅니다. 그런데, 조금만 관심 있는 선생님들은 이 교과서가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은 계속 받거든요. 저도 교육과정에 대한 공부를 하면서, 교과서의 내용 체계나 층위에서 나타나는 문제가 교육과정에서 그렇게 규정해놓았기 때문이고 생각했고요. 그런 면에서 현장 교사의 목소리를 교육과정에 반영하는 문제에 대해서 얘기해봤으면 합니다.
서혁: 교육과정 평가원에서 2007 개정 교육과정을 발표하면서 앞으로는 교육과정을 수시, 부분 개정하겠다고 했어요. 그런데 수시로 한다는 것이 1년마다 하는 것인지, 6개월마다 하는 것인지, 아니면 하고 싶을 때 하는 것인지 정해지지 않았고요, 부분 개정의 의미도 불분명한 상태입니다. 거기다가 교육과정을 수시로 개정하려면 수시로 논의하는 공식적인 기관이 있어야 하는데 없어요. 공식기관은 물론이고 현장의 의견을 수렴하고 수시 개정을 관리하는 담당자라도 있어야 하는데 없어요. 그런 역할을 평가원에서 해야 하는데, 교과부나 평가원에 이런 얘기를 하면 인력과 예산의 문제로 하지 못한다고 얘기를 하고 있죠. 한마디로 현장의 의견을 수렴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에요.
최: 교육과정이 현장의 목소리를 어떻게 반영할 것인가 따져봤을 때 현실적으로는 어렵다고 생각해요. 이것은 교육과정을 만드는 작업이 집중된 집단적 역량이 반영되는 구조이기 때문이에요. 집중적이라는 것은 개인 연구자의 성격으로 교육과정 연구에 참여하기 어렵다는 의미에요. 개인이 관심 있다고 그 연구에 들어갈 수 없다는 거죠. 집단적 성과를 가지고 있는 집단 내에서 같이 이루어지는 작업이에요. 내가 문학교육 전공자이니 그동안의 문학교육의 연구 성과를 갖고서 이러저러하게 쓰겠다 하고서 교육과정 내용 체계를 개발하거나 교육과정 문서를 만드는 게 아니라는 뜻입니다. 서로 다른 영역들이 공조하면서 함께 만들어 가게 되는 것이지요. 이런 까닭에 대학의 개별 연구자도 그렇고, 현장 교사도 그렇고, 이 부분은 이렇게 집어넣자고 개별적으로 들어올 수 있는 구조가 아니라는 거죠. 그래서 교육과정 평가원이나 평가원 출신 연구자들이 참여하는 경우가 많아요. 이러한 구조에서는 현장 목소리가 들어갈 적절한 구조는 쟁점 토론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 외의 부분들에서는 현장교사들이 기여하고자 해도 논의 구조가 이를 수용하기 어렵게 되어 있습니다.
조: 그럼 이 구조 외에 생각할 수 있는 다른 구조는 없을까요?
최: 이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교육과정 연구를 평가원에서 하되 외부로부터 의견을 수렴하는 구조를 유지하는 대신 ‘교육과정 공모제’와 같은 제도를 운영하여 교육과정 논의의 실질성을 높이는 쪽이 더 나은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현행 중학교 교과서의 경우에는 국정 교과서 제도이지만 공모제의 형식을 취했죠. 교육과정도 이런 식으로 하는 거죠. 과연 현실화될 수 있냐는 문제를 떠나서 만약 이런 방식이 된다면 적어도 현장에서, 좀 줄여서 전국국어교사모임과 같은 단체에서 현장 교사들이 교육과정에 대해서 요구하는 것을 모아낼 수 있다는 것이죠. 그 요구 안에는 교육의 방향, 교육의 내용, 영역에 대한 입장 등 교육과정의 큰 틀이 포함되어야 할 것입니다. 현재까지는 이런 내용은 안 된다거나 저런 내용이 들어가야 한다거나 하는 단편의 의견들이나 부분적인 대안들만 있었지 큰 틀에서 교육과정이 어떠해야 한다는 전제에서 요구가 나온 것이 없다보니까 현장에서 피부로 느낄 수 있는 교육과정이 만들어지지 못하는 것이죠. 이것은 큰 틀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것이에요.
조: 교육과정 평가원이 인력과 예산 문제로 응급 대응 조직처럼 된 것 같아요. 그래서 평가원의 연구 협력팀에서 어떤 의견을 내봐야 다음에 가면 다 바뀌어 있어요. 이런 것을 보고 현재 평가원이 의견을 수렴하는 통로가 없다는 것이 답답했습니다.
그리고 한편으로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하기 위해 노력하면 할수록 토대가 부실하다는 인상을 많이 받았는데, 이것은 근본적으로 연구의 문제라는 생각이 들어요. 지금 교육과정, 교과서의 토대가 허약하다는 생각을 했고 국어교사모임에서 이것을 해결해보고자 현장학회를 만들었는데요, 현장교사와 연구자들이 결합하여 연구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생각해서 시도한 것이죠. 이런 부분들이 활성화되면 수시 개정에 필요한 토대라든가 통합의 문제, 위계성 문제 등을 현장 교사의 현장 감각과 연구자들의 체계적인 이론으로 같이 연구하면 평가원이 감당하기 버거운 부분을 보완할 수 있다고 봅니다.
최: 우리말 교육현장학회는 현장과 대학에서 같이 발표하는 구조가 아니라 연구를 같이 하는 구조가 되어야 해요. 발표가 현장에서 독립적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발표는 하나라도 하나의 발표 주제를 가지고 활발한 토론으로 연결이 되어야 해요.
Ⅲ. 검인정 체제와 자유발행제에 대해서
Ⅲ-1. 검인정 체제를 어떻게 볼 것인가?
조: 교육과정과 현장의 문제점, 대안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이제 검인정 체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봤으면 합니다. 검인정 체제는 현장에서 큰 변화인데 현장 교사들이 궁금해 하는 배경, 철학, 상황의 변화를 말씀해주셨으면 합니다.
최: 관점에 따라 다를 것 같은데요. 개인적인 경험이 되겠습니다만, 교사 생활을 시작할 무렵에는 통제적 사회 여건 속에서 만들어지는 국정 교과서에 대한 문제의식이 대단히 컸습니다. 그때는 현장의 요구와 필요를 담아낸, 정치적으로 올바르고 학생들의 삶과도 일치되는 교과서를 마음껏 만들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를 고민하곤 했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다 몇 년이 지났는데, 다른 고민이 생겼어요. 검인정제나 자유발행제를 하게 되면 우리가 얻는 것만큼 잃는 것은 무엇일까 하는 고민이었지요. 당시가 억압적인 정치 상황을 배경으로 하고 있던 터라 그 통제를 벗어날 수 있는 방법으로 검인정제나 자유발행제를 생각했던 것인데, 검인정제나 자유발행제로 넘어가는 논리가 누구의 힘에 의해서 이루어지느냐에 따라서는 전혀 다른 교과서가 나올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자유발행제를 실시하는 미국의 경우에는 교재를 만들 수 있는 출판사가 무수히 많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사용되는 것은 몇 개의 거대 교육 출판사들이 만든 것이지 않습니까? 그와 유사한 상황이 우리에게 주어졌다고 해 봅시다. 우리가 좋은 의도와 정성과 노력으로 바람직하고 이상적인 교과서를 출판했다고 하자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그 교과서로 공부할 학생들이 생길 것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그와는 다른 교과서로 공부할 학생들도 생기는 것이며, 우리의 바람과는 달리 문제가 있는 교과서로 공부할 학생들도 생길 수 있겠지요.
지금 검인정 체제 역시 누구의 힘에 의해 현재 상태가 이루어졌느냐에 따라 다른 관점이 있을 수 있어요. 어떤 상황이든 힘의 관계에 따라 현재의 상황이 만들어지고 있다고 본다면, 특히 국가의 입장에서는 교과서 비용을 절감하면서도 내용을 장악하고 관리할 수 있는 균형점을 검인정제에서 찾았다고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검인정 체제로 된 것이 그 자체로 좋다, 나쁘다로 이야기할 수는 없어요.
또 하나는 현재 나온 교과서들을 미리 접해본 사람들의 평가를 보면, 여러 교과서들이 적어도 인상으로는 비슷비슷하다고들 합니다. 이건 전문성을 지닌 팀에서 고민을 많이 하여 만들어 낸 교과서가 그렇지 못한 교과서와 별 차이가 없다는 얘기인데, 자괴감을 갖게 하는 대목입니다. 검정 통과 때문이기도 하고, 상품화 과정에서 나타나는 분칠의 영향, 혹은 국어교육이론의 현실적 한계 등일 수도 있는 것이지요. 그런데 그 결과는 한마디로 현재의 검인정 제도 하에서 다양한 출판사에서 획일화된 교과서가 나오는 문제적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서혁: 국정에서 검인정으로 넘어가게 된 것은 90년대 전후로 많은 논문에서 필요성에 대해 제기가 되었고, 평가원이나 교과부에서도 인정을 했어요. 다른 교과는 이미 검인정 체제가 되었고, 또한 자유발행제는 세계화된 추세죠. 우스갯소리로 세계최대의 베스트셀러 교과서는 중국인민학교 국어교과서라는 얘기도 있죠. 7차 이래로 학습자 중심 수준별 교육, 지방 자치 교육, 교육 경쟁력 이야기가 나오면서 교과서도 자연스럽게 검인정으로 넘어가게 된 것이라 생각합니다.
서: 저는 검인정 체제가 교사들에게는 더 많은 자율성을 줄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이론적으로 교과서는 참고서라는 관점을 가지고 접한다면 학교에서 채택된 검인정 교과서라고 하더라도 교사는 교육과정의 학습 목표를 바탕으로 해서 내용을 폭넓게 재구성하는 근거가 될 것이고, 결국 교사에게 좋은 자극이 될 것이라고 봅니다.
우려되는 문제는, 시험을 고려했을 때 학생들에게는 배워야 할 교과서가 더 많아지는 것이 될 수 있다는 것이죠. 고등학교 18종 문학 교과서가 선택적으로 학습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교과서 전부를 학습해야 했던 것처럼 더 많은 읽을거리와 공부할 거리가 되어 사교육 영역에서 이를 요약, 정리되는 상황이 올 수도 있죠. 그리고 조금 있으면 어떤 글이 몇 종의 교과서에 실렸다고 하면서 그 글의 중요도를 판단하죠. 그런데 학습목표나 교육과정의 근거를 달리하는 한 바탕글이 자습서나 참고서에서는 그 글이 중심이 되어 교육과정이나 학습목표와는 관계없는 문제가 만들어지고, 자칫 그것이 학교 교육을 왜곡시키고, 교사들이 교육과정과 교과서를 보는 것이 아니라 자습서나 요약본을 먼저 보고 문제풀이 중심으로 수업이 이루어지지 않을까 우려도 됩니다.
최: 그것은 상대적으로는 덜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심각한 문제는 검인정 체제가 갖는 이중성 아닐까요? 금성출판사에서 나온 고등학교 역사 교과서(이하 금성 교과서)를 예로 삼아 생각해 볼 때, 잘 만들어졌다고 평가되고 있고 다수의 학교들에서 채택되었으며 역사에 대한 다양한 관점과 시각을 투사해 볼 수 있는 교과서에 대해서도 검정 기준은 통제적 장치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기준은 뉴라이트 류의 왜곡된 역사관을 갖게 하는 교과서를 배제하는 장치로도 사용될 수 있습니다. 혹은 이 기준은 개선된, 혹은 대안적인 좋은 교과서를 학교 현장에서 채택할 수 있도록 하는 개방적 장치가 될 수 있지만, 동시에 그렇지 못한 교과서도 만들어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 놓는 불합리한 장치가 될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문제가 되는 것은 검인정 체제나 검정 기준 그 자체가 아니라 어떤 검인정 체제인가, 혹은 어떤 검정 기준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또 다른 심각한 문제도 있습니다. 교과서의 채택 문제인데요. 제가 갖는 걱정은 이렇습니다. 과연 학교 현장에서 학생들에게 적합한 좋은 교과서를 제대로 변별해 낼 수 있을까? 선정 과정이 형식적이거나 피상적으로 이루어지지는 않을까 하는 것이죠. 교과서의 선정과 채택이 적실하게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고 지엽 말단에서 발생하지만 그 영향은 치명적인 교육적 부작용이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약의 경우는 약리 작용만 가지고 그 약의 효능을 판단할 수 없지요. 사람에게 투여했을 때 나타나는 부작용까지를 함께 고려해야 비로소 약을 쓸 것이냐, 그렇지 않을 것이냐를 판단하게 되지요. 이처럼 교과서를 선정할 때에도 이를 고려하지 않는다면, 채택의 관성에 의해 나타날 수 있는 부작용들은 부득불 누적적이게 됩니다. 검인정제에서는 좋은 것을 선택할 수도 있게 하는 반면에 동시에 나쁜 것을 선택하게 하기도 합니다.
서: 검인정제나 자유발행제 체제로 가면 선생님들이 교육과정을 공부하게 될 것 같아요. 그 많은 교과서를 다 볼 수 없으니까 교육과정을 중심으로 학습활동이나 교과서를 재구성하게 되고, 교사가 창조적인 역량을 발휘하는 상황이 될 수 있으리라 봅니다. 그것은 검인정이든 자유발행제가 되든 큰 차이는 없을 거라고 생각해요. 중요한 것은 현장 교사들이 교육과정을 얼마나 연구를 하느냐 노력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리고 선정에 있어서 나쁜 교과서를 선정할 가능성이 있는 문제를 검인정이 갖고 있다고 하셨는데요, 그렇다고 해서 다시 국정으로 돌아가자고 할 수는 없다고 보고요, 그 부분은 다른 방식으로 극복해서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최: 검인정제나 자유발행제 하의 교과서 시장은 시장 점유율을 얼마나 높이느냐를 놓고 경합하는 회사들의 경쟁 공간과는 전혀 다릅니다. 만약 앞서 말씀드린 것 같은 문제 상황이 발생하는 경우라면, 저는 차라리 국정 교과서제도가 더 나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또한 자유발행제가 된다고 교사들이 교육과정을 볼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어렵지요. 자유발행제에서는 교육과정 역시 대강화를 지향하게 되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참조하기도 어려울 것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교사는 교과서를 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조: 최 선생님께서 검인정 체제에서는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교과서가 있는 반면에 그 반대의 영향을 끼치는 교과서가 있을 수 있다고 그 한계에 대해 말씀해 주셨는데 서혁 선생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서혁: 검인정 교과서가 국정 교과서보다 정말 나을까 하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기존에는 교과서 제작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사명감과 책임감이 많았을 거에요. 자신들이 만든 교과서 하나로 전국의 학생들을 책임져야 하는 거니까요. 하지만 검인정이 되면서 출판사가 결합하여 작업하면서 사명감과 책임감과 함께 영리 목적도 무시할 수 없게 되었죠. 교과서 제작의 내외적 동기에 변화가 생긴 것입니다. 그리고 교과서 인력풀이 분산되면서 교과서의 질이 모였을 때보다 떨어질 수도 있다는 문제도 있고요. 하지만 수요자가 중심이 되면서 학생의 흥미를 고려하거나 선생님들에게 지원하는 체계가 좋아질 것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서비스 측면에서는 개선되리라고 봅니다.
Ⅲ-2. 자유발행제를 어떻게 볼 것인가
조: 검인정 체제의 틀은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이 들고, 특히 정권의 속성에 따라서도 바뀔 수 있는데, 벌써 자유발행제 논의까지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습니다. 자유발행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최: 자유발행제가 되면 교과서 종수가 논리적으로는 무한대까지 늘 수 있겠지만 실제로 사용되는 것은 3~4종의 소수 교과서로 수렴될 것입니다. 이 3~4종의 교과서가 무엇을 반영하느냐 이것을 봐야 하는데 이 질문은 결국 누가 교과서를 만드느냐가 중요한 문제가 되는 것이죠. 검인정제에서는 소비자의 선택이 관건이지만, 자유발행제에서는 소비자의 선택까지도 생산자와 유통자가 결정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즉, 교재에 대해 물량 지원을 할 수 있는 자본력을 가지고 있는 3~4개 출판사가 시장을 장악하게 되고 우리는 그런 흐름에 따라가게 될 가능성이 매우 커지는 거죠. 한번 가정을 해 봅시다. 이제 제가 만약 어떤 대규모 출판사와 더불어 좋은 교과서를 만들겠다고 나섰습니다. 저는 잘 만들어진 좋은 교과서를 만들 의지가 있고 자본력도 갖추고 있기 때문에 자유발행제는 이를 뒷받침하는 제도적 장치로서 인정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제가 그 주체가 아니라면, 나는 무엇을 근거로 교과서를 신뢰하게 될까요? 결국 그 신뢰는 많은 자본이 투입됨으로써 교과서와 부교재 혹은 보조 교재에 원고와 편집의 형태로 구체화된 형태들에 대해, 그리고 기왕의 교과서 제도 하에서는 한 번도 제공받아 본 적 없던, 교과서에 부속된 교사용 교과서들과 교수 자료들과 평가 도구들에 대해 부여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따라서 지금 자유발행제를 이야기할 시점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검인정 체제도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고 봐요. 만약에 국정교과서 대신에, 즉 국가에서 교과서를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공적 기구가 바람직한 여론이나 학문적인 연구, 교육적인 실천의 성과를 담아낼 수 있는 공정한 틀을 만들고 교과서를 만든다면 검인정보다 나을 수 있다는 것도 생각할 수 있어요. 그 동안 그런 교과서를 경험해 보지 못한 채, 통제나 규제가 너무 많았기 때문에 풀려나가는 것을 좋은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이죠. 우리가 경험해 보지 못했지만 없는 것은 아니죠. 검인정 교과서가 나오면 여러 가능성에 대해 타진해 볼 수 있는 상태가 된다고 봐요. 초기 몇 년 간은 얻은 것과 잃은 것을 분석하는 작업이 필요할 것으로 봐요.
서혁: 자유발행제 이야기가 벌써 나오는 이유가 있다고 생각해요. 검인정 교과서를 만들면서 국정과 무엇이 다른가 하는 의문이 드는 거에요. 집필 지침과 검인정 기준의 틀이 과거 국정의 틀을 벗어나지 못했어요. 이것은 검인정 기준이 문제라는 거에요. 그래서 검인정제를 해보지도 않고 자유발행제를 얘기하는 거거든요. 검인정 기준이 융통성 있게 개방적으로 되어야 합니다. 그렇다고 상세화 되어서는 안 되죠.
Ⅲ-3. 검인정 체제의 융통성, 개방성의 의미
최: 검인정 체제에서 개방성, 융통성을 두자는 부분은 제가 걱정하고 있는 부분 중의 하나에요. 검인정 체제에서 융통성의 의미를 무엇으로 보느냐 하는 것인데요, 이것은 교육적으로 가치 있는 부분에 대한 기준은 더 엄격해야 하고, 교육적인 가치를 구현하는 부분은 융통성이 있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교육적 가치까지도 융통성을 부여하면 좋지 않은 교과서까지도 나올 수가 있다는 것이죠. 즉, 공유하는 교육적인 가치는 동일하게 하되 실현 방법을 다양하게 한다는 데 의미가 있는 것이죠. 물론 이때 교육적인 가치는 국가에서 정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공유하는 것이어야 하고요. 그런 면에서 융통성의 의미를 명확하게 할 필요가 있다고 봐요.
서혁: 제가 말한 융통성은 형식과 단원 개발, 체계의 측면이고요, 가치 부분은 제재 선정의 기준, 건전한 가치관 부분에서도 융통성이 있어야 해요. 현재 상황에서는 건전한 가치관이란 정권의 이데올로기, 사회의 주류적인 가치관인 셈인데요, 이런 문제 때문에 현재 검인정 교과서 집필진들이 자기 검열을 엄격하게 할 수밖에 없었어요. 이것이 검인정 체제의 문제점이 되는데, 예를 들어 한일 간 민감한 쟁점이 되는 독도 문제나 일본 사람들의 망언 문제 등은 현 정부의 코드와 맞지 않아서 다 넣지 말자고 집필자들이 스스로 생각하는 식으로 제재 선택에 있어서 제한이 생기는 것이죠.
그래서 제재 선정의 기준과 건전한 가치관 부분에서 융통성이 있어야 하는데, 그 전제 조건은 인간 생명에 대한 존중, 지속가능한 환경 개발, 우리 문화유산의 전승과 발전, 평화 애호, 전쟁과 살생에 대한 반대와 이의 합리화에 대한 배제, 다문화와 다양성에 대한 인정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죠. 왜냐하면 미래 세대를 위한 것이고, 미래 세대들이 어떤 가치를 안고 살아갈 것인지 고민하면서 다양한 가치를 심어주되 아닌 것은 아니라고 분명하게 얘기를 해줘야 하는 것이죠.
최: 지금 말씀하신 이런 기준들이 대단히 중요하거든요. 교과서에서 소수자에 대한 가치를 다룰 때 외국인 노동자의 문제는 다루면서 성적 소수자에 대한 문제는 내적으로 금기시하기 때문에 다루지 못하는 거죠. 결국 같은 소수자를 다루지만 그 기준은 동일하지 않은 거예요. 그렇다고 해서 이런 것들에 대해서 이것은 다루고, 저것은 다루지 말라는 식으로 하나하나 검정 기준에 넣을 수는 없어요. 이런 것들을 집어넣는다면 이것은 통제로 작용하는 것이죠. 그러니까 이런 것들은 아까 얘기한 일반 원칙에서 판단을 해야 하는데 그 판단은 집필하면서 검정 기준을 해석하는 사람들의 몫이죠.
Ⅳ. 교과서를 선정할 때 고려할 점들
조: 현장교사들이 앞으로 검인정 교과서를 선택하게 될 텐데 어떤 기준을 가지고 선택해야 할지와 마무리 말씀해주시면 좋겠다.
서: 제가 한 출판사에서 교과서 검토 요청을 받았는데 디자인 면에서 예전의 교과서에 비해 좋아졌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내용이 많다는 우려도 들었어요. 하지만 검인정 체제에서 교사의 자율성이 커진다는 점에서는 장점이 된다고 생각해요.
저는 주로 활동을 재구성하기 때문에 교과서를 고를 때 학습활동보다는 바탕글을 중심으로 볼 것 같아요. 바탕글이 재미있어야지 학생들도 재미있게 수업을 할 수 있으니까요. 검인정 체제를 통과했지만 바탕글이 아이들에게 얼마나 친화력이 있느냐는 전적으로 교사가 판단해야 할 몫이 되는 거죠. 교과서를 고를 때 교육과정 항목과 견주어 보면서까지 교과서를 볼 수 있는 여력이 안 된다면 바탕글을 보는 것이 좋다고 봅니다. 더 여력이 된다면 교육과정도 살펴보면 좋죠.
최: 일단 검정 통과가 되었다면 활동 구성은 단원의 학습목표를 구현했을 것이므로 활동을 비슷할 것으로 봐요. 또한 예전 교과서보다는 재미있는 제재를 선택했을 것으로 생각을 합니다. 그런 부분에서 변별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고, 그래서 편집이 교사에게 많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봅니다. 하지만 제 관점에서는 이 시각적 장치보다는 학생들에게 가치 있는 사고를 촉발시키는 이슈 메이커로서의 교과서를 선택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겠느냐 하고 생각합니다. 주로 제재들은 단원 학습 목표 달성을 위해서 동원되겠습니다만, 국어교육이 목표 달성에만 주목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체험하는 과정에서 더 넓고 깊은 사고를 하면서 인간성을 형성하며 성장하는 것인데, 그 성장의 계기를 많이 제공하는, 가치 있는 사고와 논의거리를 제기하는 교과서가 이른바 ‘바람직한 교과서’로서 변별되겠지요.
그리고 전국모에 드리고 싶은 말은, 국어교육도 이론과 실제, 대학과 현장이 함께 이루어 나가야 하니까 연구하는 선생님들이 교육을 개혁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조: 교사들이 안목을 키워야 한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남을 비판하고 분석하고 검증하지만 우리 스스로 자신을 비판하고 검증하는 경우는 별로 없잖아요. 바람직한 교과서가 무엇인가 하기 전에 바람직한 교과서를 볼 수 있는 안목을 우리가 갖춰야 한다고 봐요. 그래야 재구성도 할 수 있고, 어떤 것을 가져오든지 자기의 관점과 안목으로 쉽고 재미있게 수업을 할 수 있는 것이고. 그런 면에서 교사가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좋은 토요일 오후에 쉬시지도 못하고 무거운 얘기 나누시느라고 고생하셨습니다. 많은 선생님들께 도움이 되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일동: 고생하셨습니다.
[87호 특집 새 교과서를 살피다-검인정 체제에서 교과서를 보는 눈], 함께 여는 국어교육, 87.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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