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쓰고 웃었다

시 쓰고 웃었다

[쓰다] 해는 아직

잠시 후 동녘대모산 너머 남한산 넘어빛 뿜으며 넘쳐올 때면막 시작한 새해가 실감날 거야 또렷이 아침이 떠오를 거야 희망, 어린 계획들도 세워 두었고어김없는 시간이 예고대로 다가온다네 새해도 아침처럼 떠오르겠지밝은 날 새로 시작하는 널손 잡아 주겠지 첫날의 아침 햇살서로 나누겠지 그때까진아직 어둡고바람은 찰 거야해야 할 일이남아 있고밤은 새었어도갈 길은 먼아침 아닌 새벽이재촉하는 새벽이(2016.01.01)

시 쓰고 웃었다

[쓰다] 쓸 것이다

쓰다가 골라 쓰고 바꿔 쓰고 고쳐 쓰고 달리 쓰고 무릅쓰고 힘쓰고 뒤집어쓰고 받아 쓰고 끌어다 쓰고 입맛 쓸 것이다 어쩌랴 끌어다 쓰고 받아 쓰고 뒤집어쓰고 힘쓰고 무릅쓰고 달리 쓰고 고쳐 쓰고 바꿔 쓰고 골라 쓰면서 계속 쓸 것이다 (2015.01.15)

시 쓰고 웃었다

[쓰다] 단어에 대하여 2

크고 작은 나라의 경계들에서 유랑하는 품사들이 사라지거나 명사로 바뀌는 언어의 주술이 목격되었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가르치다는 교육이 되고 알다는 지식이 된다 보다는 경험이 되고 느끼다는 감각이 된다 하다와 되다는 이름 없이 사물들을 따라다니고 있다는 힘들게 살아남아 지배자들이 어떻게 지배자일 수밖에 없는지를 깨닫게 한다 주문은 매번 짧고 빨랐다 무슨 말인지는 너무도 분명히 들렸으나 뜻을 아는 이는 없었다 깃발을 든 명사들이 소나기처럼 몰아쳐 다녔다 모호한 것들은 단죄되고 목이 베어져 아직 빛 들지 않은 그늘에 버려졌다 아직 죽지 않은 몇몇 알다 보다 느끼다 하다 되다 있다 같은 동사들이 응달에서 다리를 잃고 딱딱하게 굳어 가고 있었다 (2015.01.10)

시 쓰고 웃었다

[쓰다] 단어에 대하여 1

학교는 명사를 가르쳤다 나는 세상의 사물들에 대해 알게 되었다 명사들은 다투어 서로 다른 깃발들을 앞세우고 세밀한 문양을 상징처럼 자신의 어깨 위에 붙였다 그때마다 경계가 생겼다 세상의 사물들이 사물들의 세상을 만들어갈 때마다 나는 단어장에 그것들의 이름을 올렸다 눈이 밝아졌다 사물들의 이름으로 가득찬 단어장은 백과사전처럼 무료했다 (2015.01.10)

시 쓰고 웃었다

[쓰다] 행에 대하여

행과 행 사이는 얼마나 먼가 얼마나 깊고 얼마나 날카롭게 아픈가 행을 만나면 한 걸음에 지나쳐 버리려다가도 매번 같은 자리를 맴돌게 되는 것인가 지나가지도 않은 징검다리 하나씩 건져 올리는 것인가 사랑하지도 못하고 미워할 수도 없으면서 행을 넘어가기 전에 모든 걸 걸게 되는 것인가 티도 나지 않으면서 행 사이에 끼어서는 나는 여전히 생각하는 것인가 (2015.01.10)

시 쓰고 웃었다

[쓰다] 새해가 되었네요 해는 안 떴지만 새해는 새해답게

새 해 맞고 새 밥 먹고 새 옷 입고 새 차 타고 새 님 보고 그렇게 새 날, 새 아침 맞고 새 노래 듣고 새 마음 갖고 새 거릴 걷고 새 세상 보고 그렇게 새 복도 받으세요 새 별 보고 새 꿈 꾸고 새 눈 뜨고 새 문 열고 새 손 잡고 난 이렇게 (2015.1.1.01:01)

시 쓰고 웃었다

[自作詩] 극적으로 말해

태양에 빨려들어가기 시작한 지구의 어느 한 지점, 거기 아직 끓어오르지 않은 강과 아직 타들어가지 않은 나무들이 잠깐의 유예 속에 떨며 기다리는 그때, 그쯤이면 뻘뻘 땀을 흘리며 극적인 포즈로 삽입에 여념 없는 한 사람도 있겠지 죽음이 오기 전 늦기 전 마지막 순간에 그때, 계속 미뤄지는 절정처럼 도대체 흥분되지 않는 고통스러운 노동 같기만 한 절망적인 존재 증명을 하고 있는 그때, 명분도 핑계도 없는 한 사람이 있는 것이겠지 너 말이야 쏟아져 내리는 들보를 간신히 붙들고는 지붕이라도 건사해 보겠다는 그때, 환상으로도 채울 수 없어 그저 애만 쓰고 있는 그때, (2014.12.24)

시 쓰고 웃었다

[自作詩] 반딧불이 3

너는 절반쯤 이 세계를 날고 또한 절반쯤 저 세계에 남아 점멸하는 빛으로도 온전한 너를 노래하는구나 나는 절반쯤 이 세계를 살고 또한 절반쯤 저 세계를 궁금해 하다가 네 빛과 만나 그만 내 생채기들을 본다 그러면 너를 내칠 것이다 (2014.07.07)

시 쓰고 웃었다

[自作詩] 반딧불이 2

미약할 때 강한 것이 양심이다 하지만 양심의 근본을 알 수 없기에 미약함은 강함을 위장하는 것일까 어두울 때 빛나는 것이 양심이다 하지만 눈에 띄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 또한 양심이기에 어둠 속에 남는 것일까 선하고 고운 마음은 그저 미약하고 어두울 때를 기다려 순교의 준비를 하고 맹목으로 미약함과 미약함의 어두움과 어두움의 짝짓기를 시도하며 지상의 열흘을 보낼 때 독선보다 더 맹목적인 교조보다 더 맹렬한 양심이 비로소 아름다운 비행을 시작한다 (2014.07.07)

시 쓰고 웃었다

[自作詩] 반딧불이 1

아지랑이 날듯 반딧불이 피어 오르는 저녁 동네길 걷다 빛과 바람에 이는 물결들에 이 작고 신령한 덧없는 생명을 외경하며 길가로 물렀다가 흠칫 왼뺨을 스치는 오른편 무릎에 부딪는 꼬물딱거리는 살아 있다는 움직임 불편한 촉감 못된 자식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는 벌레 같은 놈 흔하디흔한 딱정벌레 손으로 쳐 내고 소름 끼치고 안도하다 마음이 불편하다 (2014.7.7.)

misterious Jay
'시 쓰고 웃었다' 카테고리의 글 목록 (3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