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부한 표현, 혹은 클리세(cliché) 채송화, 조명제 백로(白露) 가까운 언저리담장 위에 내어 놓인 분(盆)의빨강색 채송화철길도 녹여 휘어뜨린다는일만 톤의 햇살을 받고도작은 입 모양을 하고 이쁘게만 피어 웃고 있는저 역광(逆光)의 황홀경, 그 속에 숨어 있는,살을 파고들어 뼈를 찌를 듯매섭게 꽂혀오는 부드러움의 강인한 힘. 이를테면, 나는 시의 배경에 대해 생각할 때에는 배경이 환경이 아닌 풍경으로 역할하게 하는 것을 중요시한다. 풍경으로서의 배경은 그것이 전경과 후경의 관계처럼 초점화된 대상을 부각하는 데 기능하는 경우에조차 그 전체가 하나의 단일한 정조와 분위기를 형성하도록 작용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배경으로부터 만들어지는 이미지와 초점화된 대상으로부터 만들어지는 이미지가 서로 겉돌게 되고, 시..
구도와 내용 밥상, 주영현 하루를 마친 가족들 밥상머리 둘러앉습니다.숟가락 네 개와 젓가락 네 벌짝을 맞추듯 앉아 있는 가족 조촐합니다. 밥상 위엔 밥그릇에 짝을 맞춘 국그릇과오물주물 잘 무쳐낸 가지나물 신맛 나는 배추김치나란히 한 벌로 누워있는 새끼 조기 두 마리뿐입니다. 변변한 찬거리 없어도 이 밥상,숟가락과 젓가락이 바쁩니다. 숟가락 제때 들 수 없는 바깥세상 시간을 쪼개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한 자리에 둘러앉게 한 것은모두 저 밥상의 힘이었을까요. 어린 날 추억처럼 떠올려지는 옹기종기 저 모습 참으로 입맛 도는 가족입니다. 「밥상」은 한 가족의 단란한 저녁 식사 공간을 그리고 있는 작품이다. 밥상 주변을 둘러앉은 네 명의 가족을 ‘조촐’하다고 말할 정도로, 그리고 이 장면을 ‘어린 날 추억처럼’ 보고..
시를 이해하고 감상할 수 있기 위해서는 적어도 다음 세 가지가 갖추어져 있어야 합니다.첫째, 시어의 의미, 둘째, 시어의 의미를 맥락화할 수 있는 구도, 그리고셋째, 맥락의 동조(syntony)를 이끌어낼 수 있는 정서적 단서들.이것들은 각기 문맥(context of a passage), 문화적 공통감(cultural consensus), 비문자적 자질(non-literal feature of a passage)이라는 요소들을 통해 시와 독자를 연결합니다. 이에 비추어보면 이상의 시를 학생들에게 이해하고 감상하게 하는 일은 매우 어렵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선 시어의 의미를 알기 어렵고, (기껏 알 만한 어휘들이라고 해도 그것이 문면 그대로의 의미인지 어떤 의미인지를 판정할 만한) 시의 이해 맥락이..
서술로서의 시도 시로서 충분하다. 서술도 시를 이룰 수 있다. 결국 상상의 빈자리는 표현에 의해서가 아니라 수용에 의해서 확인되는 거니까, 결국 어떻게든 상상은 가능하니까. 서술로서의 시란, 수용에 의해 상상의 빈자리가 확인되기는 하지만, 그렇게 하기도 전에 이미 표현을 통해 '이걸 네가 상상하라' 하며 요구하는 시이다. 이런 구분에서 서정주의 '무등에 서서'는 서술이며, 황지우의 '벽1'은 서정적 진술이다. ------ 달력 김재언 너를 처음 대한 지 꽤 오랜 날들이 지나갔지만 언제나 그 자리를 지키는구나 한결같은 마음이구나 꽃 피고 녹음 들며 낙엽 지고 눈 내리는 사연이 손바닥을 뒤집듯 그리 쉬운 일이 아니련만 사랑인 듯 아무 내색 없이 한 눈빛만 보내는구나 기다리고 있구나 ------ 서술은 아날로..
발견도 시로서 충분하다. 충분하다는 것은 그것으로도 시가 된다는 것이다. 물론 언어 유희도 충분히 시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좋은 시가 시로서 충분한 것을 뜻하는 건 아니다. 그냥 시라고 불릴 수 있다는 뜻이다. 우리가 읽는 시는 시로서 충분한 것과 좋은 시 사이의 무수한 예들인 셈이다. 이를테면 아래 시. 이런 건 발견이겠지 -------- 텃밭 추은경 바람이 실어다 준 작은 민들레 홀씨 하나가 내 작은 텃밭에 내려앉아 작은 생명으로 잉태 되었네 햇살이 흔들어 주고 바람이 실어다 주고 달빛이 비춰주니 민들레 홀씨는 다시 바람을 타고 고마운 마음 전하러 어디론가 날아 가는구나 ------ 사실 나는 이런 시는 못 쓴다. 이렇게 써지지 않는다. 이러고 말다니..... 그래서? 그래서? 그러다가 못 쓴다....
오독(誤讀, misreading) : 일반적으로 ‘오독(misreading)’이란 텍스트의 의미를 잘못 해석하는 것을 뜻하는데, 이는 어원상 ‘측정용 막대기’를 뜻하는 kanón, 곧 ‘원전(canon)’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전통적으로 해석은 이러한 원전 개념에 따라 오독을 금기시해 왔고, 같은 전통에서 신비평가였던 윔셋과 비어즐리(William Wimsatt and Monroe Beardsley)는 오독의 원인으로 ‘의도의 오류(Intentional Fallacy)’와 ‘감정의 오류(Affective Fallacy)’를 들기도 했다. 그러나 하이데거(Martin Heidegger)나 가다머(Hans-Georg Gadamer), 야우스(Hans Robert Jauss) 등의 현상학적 해석학자들이 ..
빈 집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밖을 떠돌던 겨울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 집에 갇혔네 (입 속의 검은 잎, 문학과지성사) 이중적 공간으로서의 집 집은 이중적인 의미를 지닌 이상한 공간이다. 그것은 보호하는 곳이며 또한 유폐시키는 곳이다. 옛말에 ‘하늘을 지붕 삼고, 구름을 이불 삼고’라는 말이 있어 의지할 데 없는 고아, 정처(定處)할 곳 없이 떠도는 방랑자의 안쓰럽고 서글픈 신세를 빗대었으니, 그래도 쉼을 얻을 수 있고 평온을 얻을 수 있는 곳은 작지만 지붕이 있어 비를 막아주고 벽이 있어 바람을 ..
수미상응(首尾相應)’ 시의 첫 행, 또는 첫 연과 마지막 행, 또는 마지막 연이 같은 형태를 취할 때 ‘수미상응’했다고 한다. 하지만 수미상응이라는 용어를 쓸 때에는 단순히 형태상 중첩, 혹은 이러한 중첩으로 인한 형식적 균제미(均齊美)만을 주목해서는 안 된다. 사실 수미상응을 위해서 반드시 형태상의 일치가 전제되는 것은 아니다. 수미상응은 시상의 흐름으로 볼 때에는 선순환적(善循環的)인 가치 발견을 의미한다. 「파랑새」라는 작품이 그러하기도 하지만, 정말 가치 있는 것은 처음 그 자리에 있었더라는 인식이 수미상응을 이룬다. 그렇기 때문에, 대개 처음의 진술은 외양을 그리는 데 반해, 나중의 진술은 내면을 이야기하게 되어 있다. 단순한 반복 진술이 아니라는 뜻이다. 수미상응은 대상의 의미 변화만을 뜻하지..
‘복합 정서’와 ‘모순 형용’ 복합 정서는 일상적으로는 느끼기도 쉽지 않고 또 다른 사람이 느끼는 것을 이해하기도 쉽지 않은 감정의 고조된 상태이다. 복합 정서는 내 자신의 감정을 어떻게 판단해야 할지 쉽게 답을 주지 않기 때문에 편치 않은 심리적 상태이다. 그래서 심리학에서는 이것을 병리적 상태로 취급하기도 한다. 생각해 보라. 여러분이 누군가를 만나고 있는데 그의 모습이 당당함과 비굴함 사이에서 혼란스럽다면, 여러분은 그를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러한 병리적 심리 상태가 문학에서는 가치 있는 것이 되기도 한다. 그것은 인간의 영혼을 정화하고 고양하기 위해 거쳐야 하는 통과의례 같은 것이기도 하고, 그 자체가 성숙의 과정과 지표이기도 하며, 무엇보다 문학이 개척하는 인간 내면의 신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