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의 어딘 듯 한편에 끝없는 강물이 흐르네 돋쳐 오르는 아침 날빛이 빤질한 은결을 돋우네 가슴엔 듯 눈엔 듯 또 핏줄엔 듯 마음이 도른도른 숨어 있는 곳 내 마음의 어딘 듯 한편에 끝없는 강물이 흐르네 (영랑시집, 시문학사, 1935)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1989년 어느 날 TV 광고 하나가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이 무렵 상업 광고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이 광고 역시 광고음악이 배경이 아닌 전면적 메시지를 이루고 있었는데, 여기서 사용된 노래는 그 후 수십 년 동안 시청자들에게 가장 사랑 받는 광고음악 중 하나가 되었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눈빛만 보아도 알아 그냥 손 잡으면 음~ 마음속에 있다는 걸 몸짓만 봐도 알아요 미소만으로도 좋아 돌아 생각해보면 음~ 마음속에 있다는 걸 특별한 대사나 설..
1. 시로 설명하려고 하지 않는다. - 시의 산문화가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니지만, 시를 통해 뭔가를 설명하려고 하다 보면 의도치 않은 산문이 된다. - 설명을 하고자 한다면 굳이 시를 선택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시를 쓸 계획이 아니었다면 그렇게 해도 된다. - 시에서 상상이 지고의 가치는 아니지만, 적어도 설명이 상상을 불필요하게 만든다는 것 정도는 알고 시를 써야 한다. 2. 구체적인 진술 안에 함축을 넣는다. - 추상적인 진술에 함축을 넣으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애매해지기 때문이다. - 선택 대상이 없는 애매성은 선택 단서가 없는 모호성과 달리 미완성일 뿐이다. - 구체적인 진술은 체험의 매개로서 이미 훌륭하다. 3. 빼도 된다면 빼야 하는 것이다. - 생략하고 축약하고 함축적인 어휘로 바꾸어 쓴다..
2. 비유의 배경과 원리 경험 세계와 은유적, 환유적 사고 우리가 경험 세계라 부르는 것은 실제로는 일종의 관념 체계이다. 경험 세계는 우리가 경험한 것들의 목록들로 이루어져 있고, 그 목록들에는 선별된 개념이나 이름들이 행과 열을 이루고 있다. (라고 쓰지만) 이 목록을 일컫는 말인 카테고리, 달리 말해 범주는 실제로는 정연한 체계가 아니다. 행과 열은 그렇게 잘 정렬되어 있지 않다. 삐뚤삐뚤한 행과 열에, 중간 중간에는 분기되고 통합되는 부분이 있기도 하고, 행이나 열의 시작과 전개를 두고 벌어지는 쟁투가 어휘들의 가로쓰기와 세로쓰기를 혼란스럽게 한다. 물론 단일하게 존재하지 않는 범주는 서로 연관된 매개를 통해 어떤 것들은 계열로 위계 관계를 맺고 어떤 것들은 범위로 그 설명의 대상을 포괄한다. 그..
1. 프롤로그 : 비유법, 수사법, 그리고 비유 학교 현장에서 곧잘 인용되는 수사법(또는 수사학)의 분류 체계에 따르면, 수사법은 비유법, 강조법, 변화법을 하위 범주로 가진다. (수사법을 다룬 어떤 일본 서적에서 비롯된 것이라 하는데 사실 출처도 명확하지 않고 어떤 논리와 근거에서 이러한 분류 체계를 취했는지 역시 밝혀져 있지 않다고 한다.) 수사법으로 통칭되는 것들은 대부분 이 용어의 영어 표현인 figure of speech가 나타내는 것처럼 전언의 형태와 연관된 특징적인 표현 방식을 가지고 있는데, 특히 강조법이니 변화법이니 부르는 것들은 일반적인 어순을 의도적으로 일탈함으로써 문자적 의미가 드러내지 못하는 새로운(이 경우 참신한, 초점화된, 낯설게 보이게 하는) 의미나 뉘앙스를 갖게 한다. 따라..
표현 / 표현 양식 / 대차 표현 / 상상력으로 진부한 표현을 메꾸기 클리셰는 표현의 관습 중 하나로서 흔히 틀에 박힌 표현을 가리킬 때 사용되는 용어이다. 표현 층위의 일반적인 요소들에 비해서 구조 층위에 작동하는 기제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표현 양식의 하나로 규정될 수 있다. 클리셰는 표현의 진부함과 고정관념, 지루한 관습성 등을 지칭할 때 많이 사용되고는 있지만, 다른 한편에서 생각하면 클리셰로 인해 작품 전체의 주제나 구성 등에서 불필요한 설정과 기술을 낭비하는 일을 막을 수 있다. 클리셰에 따라 독자는 상상으로 비어 있는 기술들을 메꾸어 맥락을 구성하며 후경화한다. 따라서 구체화되거나 풍성화되는 것과는 다른 효과가 생긴다. 이런 점에서 클리셰는 중립적 개념이 될 수 있다. Tropes Are..
학생은 불완전한 존재가 아니다. 모든 사람은 불완전하다는 의미에서 학생의 불완전성을 말하는 것이라면 모르겠으되, '학생'이라는 존재 조건으로 인해 불완전한 것은 아니다. 학생은 존재 조건이라는 측면에서는 차라리 완전한 존재라는 것이 좀 더 설득력 있는 규정이라 하겠다. 바로 그 성격이 역설적이게도 교육을 필요로 하게 하는 것이다. 사람은 성장하며 그 성장은 현재의 결핍을 충족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의 결핍을 대비하는 것으로서의 지향성을 갖는다. 매순간 사람은 그 삶의 조건에 충족되도록 적응하며 대개 그것에 성공한다. 학생이라 불리는 특정 연령대의 아동들은, 말하자면 성공적으로 아동기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아동을 불완전한 존재로서 규정하는 것은, 명백히 불공정한 것이다. 그들을 성인과 직접 비교..
문학교육학 57(2017.12) 일반 논문■ 문학 사회사적 측면에서 본 15~16세기 소설독서문화 연구 / 김미정 9■ 트릭스터 정만서의 말하기 방식과 상상력 발현 / 신동흔 53■ 재외동포 학습자를 위한 ‘정체성’ 교육 방안 연구-윤동주의 시를 중심으로 / 조수진 87■ 국어교육의 문학관에 대한 통시적 고찰 / 조하연 117■ 진채선의 활동과 기생점고 대목의 의미 / 최혜진 153자유논문■ 영화만들기를 활용한 교양교육 수업 사례와 성과 연구 / 강옥희 181■ ‘자기 됨’을 추구하는 인성교육의 원형심리학적 접근 시론 / 최인자 215 문학교육학 56(2017.9)일반 논문■ 문학 기반 융복합형 논술 문항 개발 시고 / 정재찬 9 문학교육학 55(2017.6)일반 논문■ 국어과 교육과정 문해력의 관점에서..
슬며시 다가와서 나의 어깨를 툭치며 아는 체 하는 그런 詩, 대수롭지 않게 스쳐가는 듯한 말씨로써 가슴을 쩡 울리게 하는 그런 詩, 읽고 나면 아, 그런가부다 하고 지내쳤다가 어느 순간에 번개처럼 번쩍 떠오르는 그런 詩, 투박하고 어수룩하고 은근하면서 슬기로운 그런 詩 슬며시 하늘 한자락이 바다에 적셔지 듯한, 푸나무와 푸나무 사이의 싱그러운 그것 같은 그런 詩, 밤 늦게 돌아오는 길에 문득 쳐다보는, 갈라진 구름 틈서리로 밤하늘의 눈동자 같은 그런 詩. 이 작품이 수업에서 사용이 되기라도 했나? 갑자기 몇 번의 구독수가 생겼다. 그걸 알게 되고 나서 들어와 보니, '응, 나중에 이 시를 가지고 엮어읽기든 작품 해설이든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적어 놓았던 것 같다. 그러고 한참을 잊고 있었던 셈인데, 비공..
김광규의 '상행'은 반어로 이루어져 있는가? 정호승의 '또 기다리는 편지'에 대한 현장 선생님의 질문에 답하는 글을 올려 놓고 시간이 좀 지났는데 그 글을 읽으신 블로거 박유주 님이 김광규의 '상행'에 대해 댓글로 질문했다. 질문 내용은, 이 시는 반어적 어조를 가지고 있는가, 이 시는 현실을 비판한 시인가이고 답변의 조건은, '김광규 시인의 배경이나 시 본문만으로는 알 수 없는 정보는 배제'하라는 것이다. 반어라는 것부터가 답변의 조건에서 벗어난 정보여서 조건에 맞게 답하기가 곤란하지만 사고의 도구로서 문학적 개념들을 이 조건에서 예외로 하고 답변을 해 보기로 한다. 먼저 시를 읽어 보자. 상행(上行), 김광규 가을 연기 자욱한 저녁 들판으로 상행 열차를 타고 평택을 지나갈 때 흔들리는 차창에서 너는 ..
바위사리, 박순호 바위 하나 굴러 떨어졌네각으로 세워졌던 삶이강바닥을 떠돌면서파도에 휩쓸리면서바람이 베어가고햇살이 파내가고다 내어준 뒤바위의 몸에서 뭇별 같은 모래알사리가 쏟아져 나왔네 잉여 「바위사리」는 바위와 모래알의 인접성 관계로부터 불교적 정진(精進)과 ‘사리’를 떠올려낸 재미있는 작품이다. 일반적으로 사리는 정진이 내면적인 과정이라는 것과 연계되어 존재의 내부에서 형성된 고갱이를 빗대어 표현하는 소재로 활용되곤 한다. 그래서 문병란은 ‘시(詩)를 ‘재 속에서 추리는 마지막 사리(舍利)’(「시」)에 빗대어 표현한다. 그런데 바위가 깨져 나가며 ‘사리’가 된다니. 이것은 맥락을 놓친 무리이거나 새로운 발견인 셈인데, 나는 후자 쪽을 응원한다. 바위가 뭇별 같은 사리를 쏟아내는 것이 그만큼 흔해서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