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겨울 밴쿠버의 오후 4시는 밴쿠버 서쪽 UBC 레지던스 쪽으로 향한 귀가길이 눈 뜨고 있기도 힘든 석양 무렵이었다. 그것 때문에 Cambie St.와 W41st Ave에 있는 Oakridge Centre 한 안경점에서 플립형 선글라스를 샀더랬다. 그것 때문에 플립형 선글라스에 관심을 갖게 되고, 그것 때문에 6년 후에 Mosley Tribes Gates의 플립형 선글라스를 구하게 되고, 그것 때문에 Oliver Peoples의 플립형 클립온 선글라스를 구하게 되었고, 그것 때문에 아내도 같은 걸 구하게 되었고, 그것 때문에 여러 가지 커플 깔맞춤 유지 비용이 발생하게 되었다라는..... 어쨌든 10년 전 이 무렵의 밴쿠버는 5시에 해 떨어지고 4시에 눈부신 해 저물 무렵이 되는 계절인데, 그 ..
몇 년 벼르던 공부를 시작했다. 집에서 한 이 킬로미터쯤 떨어진 목공방에서 나무를 다루기 시작했다. 막내 딸 손잡고 함께 공부한다. 신나는 시간이다. 어렸을 때의 빠릿빠릿함은 사라지고 손도 바보, 머리도 바보인 중년을 입고 있다는 게 아쉽다면 아쉬운 일. 왜 겉과 속은 따로 나이를 먹어가는지 모르겠다.....만 좋다. 드디어 하고 싶은 걸 하고 있는 거니까. 공부가 끝나면 7단 펜케이스와 수제 기타를 품에 안고 푸핫핫핫 자랑질을 할 거다. 그 다음엔 트랜스포머블 테이블을 만들고 공부할 책상도 만들 거다. 그런 다음에 공부를 다시 해야지. 키득키득 (2013.01.15)
안과 검진을 하고 나서 의사 선생님은 시신경이 많이 상했다고,녹내장 검사를 받아 보라고 진단을 내리셨다.이크..... 드디어 올 게 왔다는 겐가? 검사 예약을 잡고 검사를 받는다. 덕분에 녹내장에 대해 조금 알게 되었다.녹내장 녹사를 맡은 나이 지긋한 원장님은 건안을 조금 하더니 아, 안 좋은데.....이러시는 거다. 젠장, 그렇지 않아도 무지 신경 쓰이는데.... 본격적인 검사는 '흠흠', '흠흠', '아-', '흠, 흠' 이렇게 지나갔고이윽고 말씀을 하셨다.녹내장은 아직 아니고그런데 아니라고도 할 수 없고그러니까 녹내장이 시작되었다고 볼 만한 단서도 좀 있는데안압도 정상이고 신경도 정상이고녹내장이라고 말할 객관적인 근거는 없어요.녹내장이라고 말할 수 없으니 치료할 것도 없고오늘은 그냥 가세요.그런데 ..
느닷없는 딸아이의 이런 모습을 보면서 어렸을 때 동생과 의자와 의자 위에 이불을 덮어두고 무슨 탐험이니 무슨 기지 놀이니 하며 놀았던 게 생각났다. 그건 '소년소녀 세계명작전집'을 읽으며 불붙은 내 상상력의 거의 유일한 실현 방법이었을지도 모른다. 문득 딸아이에게서 비슷한 모습을 발견한다. 너는 집과 학교와 학원 사이 어디쯤에 묶여 있었던 게로구나. 너를 봉인에서 풀어줄 수 있는 이것이었구나. 장착도구 : Zara에서 내가 맘에 들어 사 준 귀덮개모자, 눈 피로 때문에 약국에서 구입했던 냉팩 안대, 캐나다 살 때 할로윈 데이 준비를 위해 파티용품 점에서 구입했던 해적 코스튬 중 안대. ...... 둘째 아이는 첫째보다 더 엉뚱하다. 그리고 창의적이다.
아래 글은 방문교수로 캐나다가 머물던 2004년 5월 22일 리테두넷(litedu.net)에 올린 글입니다. 플랫폼 변경으로 인해 이곳으로 옮겨 둡니다. 이 글의 제목을 퀸 메리 초등학교(Queen Mary Elementary School)의 평화교육이라고 달아야 하나...괜히 부풀려 글을 쓰는 건 아닌가... 하고 잠시 고민을 했다가 그대로 가기로 했습니다. 근처에 있는 유힐(University Hill Elementary School)에서도 같은 걸 봤기 때문이지요. 그게 이겁니다. 딸아이가 다니는 학교는 퀸메리 초등학교(Queen Mary Elementary School)입니다. 1학년부터 7학년까지 있고 학년당 20여 명 단위의 두 개 학급이 있어서 전체 학생수가 300여 명쯤 됩니다. 이곳 밴쿠..
병아리 한 마리는 갑자기 쓰러지고는 일어서질 못했다고 한다. 다리에 힘이 풀린 듯 자꾸 주저 앉아 버리고 온몸이 뜨거워진 상태로 그 작은 심장만 바들바들 떨었다고 한다. 곧 죽을 것만 같아 양재천에 데려다 놓아 두자는 얘기도 한편에 있었으나, 결국 동물 병원으로 가서 입원과 치료를 하게 되었다고 한다. 하루 뒤 병원에 들른 정숙 씨는 멀쩡해진 병아리를 보고는 다행이라고 여겨지면서도 기분이 묘했더라고 한다. 그사이 병원에서는 감염 때문인지 어떤지 확인하기 위해 피 검사를 하려고 했으나 100그램도 안 되는 병아리의 핏줄을 찾을 수 없었고 그래서 검사는 못하는 대신 수액을 놓고 산소방에서 넣어 보살폈다고 한다. 정확한 원인은 여전히 알 수 없지만 이 여름에도 장마가 있어서 온도가 낮아진 때문이 아닐까 추측하..
병아리님 둘이 들어오신 지 일주일이 되었다. 그러니까 태어난 지는 열흘 되었다. 그새 죽을 것을 걱정했고 또 죽지 않고 잘 클 것을 걱정했다. 한마디로 대책 없이 일주일을 보낸 셈이다. 그러면서도 밤이면 방에 불을 켜 둔 것 때문에 하루 주기를 놓치실까 지붕도 올려 주고 비 온 날이면 추울까 봐 손난로를 수건을 감싸 깔아 주기도 했다. 먹이 때문에 커피 그라인더 망가뜨리고 좁쌀을 샀는데 먹지를 않아 낭패를 당하기도 했다. 넓은 세상 구경하라고 잠시 박스 밖으로 내어 놓았다가 방바닥에 내려놓으신 변을 치우는 일도 해야 했고 운동 부족을 걱정해서 손등에 올려 놓고 고소 공포를 겪게 하기도 했다. 그걸로 신경쇠약이 생길까 봐 걱정하기도 했지만 그걸로 약간을 재미가 생기니 잔인한 조물주의 심리도 짐작할 만하더라..
말 그대로 새의 생명을 걱정해야 할 판입니다. 유정란의 발생 과정을 관찰하는 과학 수업을 위해 달걀을 부화기 안에 넣어 두었다가 덜컥, 알이 부화해 버렸습니다. 마눌님의 이 얘기를 들은 둘째는 좋다꾸나 하면서 자기가 키우겠다고 나섰고, 부모에게는 걱정이 생겼습니다. 아프거나 죽는 모습 보는 게 무서워서 애완 동물을 키우지도 않고 애완이라는 말도 싫어했는데, 둘째가 곤충학자가 되겠다고 어릴 때부터 그렇게 나설 때에도 못 이겨 허락을 한다는 것이 기껏 개미나 장수풍뎅이나 그런 몇몇에 불과했는데, 그나마 아프거나 죽는 것에 덜 공감이 간다는 점 때문에 그런 것이었는데, 병아리라니..... 데려와서 일찍 죽어도 문제이고 자꾸자꾸 커져 버리는 것도 문제입니다. 하지만 어떻게 일은 진행이 되어 버리고 둘째 아이 포..
일찍 퇴근한 마눌님이 점심을 사 준다고 하기에 꼭 일 없이 빈둥거리다가 점심 얻어 먹는, 시간 많은 남편이 되어 하고 있던 복장 그대로 밖으로 나갔다. (왠지 언젠가 가까운 과거에 해 본 일 같기만 하다.) 6(-,.-) 역시 마눌님은 온갖 무장을 다 하고, 두 귀에 이어폰도 꼽고, 자전거로 인솔을 하신다. 나는 툴레툴레 쫓아간다. 아, 그러고 보니, 정말 주머니에 휴대폰 하나 달랑 있구나. 점심도 얻어 먹어야 하고 집에 들어올 때도 쭐레쭐레 따라 들어와야 한다. 마눌님은 마음 먹었던 식당이 저녁에야 문을 연다는 사실을 알고는 적잖이 실망하는 표정이었지만, 사실은 당황하는 눈치였다. 뭐, 동네 한 바퀴 돌면서 점심 먹을 곳 찾아 보자고 늠름하게 앞장을 섰다. 오늘 돌 거리는 도곡2동 주민센터 서쪽의 뒷골..
자전거 달렸다는 제목을 보고 여유 많네 하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퇴근하신 마눌님 강요로 집에서 입고 있는 옷 그대로 자전거를 끌고 양재천을 나간 일이랍니다. 비는 왔겠다, 아마도 물이 넘쳐 있을 거라는 예상을 재 뿌리는 말로 듣고, 흥! 마눌님은 복장도 다 갖추시고 지난 번 내가 한 걸 따라하시겠다고 아이폰에 아이팟 노래 연결해서 이어폰으로 꽂아 들으며 룰루랄라 양재천으로 들어섰습니다. 나는 따라 나섰고 뭐, 비는 잔뜩 왔고 구름은 낮게 덮여 있고 가시는 (바퀴)-(바퀴)마다 물이 잔뜩 튀어 등에는 벌써 진흙물이 배었습니다. 거 봐, 내 말이 맞지... 이럴 때는 '의기양양'이 맞는 표현이긴 한데, 조금만 더 티를 내면 즉각 보복을 당할 수 있습니다. 그 대신 약간씩 약을 올리며 흉을 봅니다.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