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운이 깔린 저녁이다 전황이 질척일 낌새다 흉흉한 소식을 전하는 전령 같이 밤 바람이 지나자 배수진마냥 도로를 뒤로 하고 희고 검은 참호들이 진지전을 펼친다 ㅡ 하지만 그들은 이동한다 ㅡ 참호마다 눈을 밝히고 짧은 사이렌을 수시로 울려 공습에 대비하는, 준비된 자들이 그 참호 속에 있다 ㅡ 그들은 이동한다 ㅡ 이내 대규모 공세가 시끄럽게 방어진을 흔들겠거니 하던 예상과 달리 하늘은 조용히, 거스를 것 없이 지상에 강림한다 ㅡ 그들은 어디론가 이동한다 ㅡ 그들은 떠나고 벽과 담들은 무너져 버린 전세를 보도한다 하늘은 지상을 거의 점령했고 간신히 남은 전선의 중간지대에서 담배 한 대 피울 동안의 낭만스런 능청을 연기할 여유도 빼앗기고 참호에서 내쫓겨 잠시 담벽으로 피해 서 있던 오후마저 피로했던 외로운 병사..
웃으세요 과도하게 낙천적이세요 이 구물거리는 하늘 아래서 새삼 좋은 표정아 (2019.03) * 조커의 웃음은 이 시의 화자의 그것에 대응한다. 말하자면, 어찌 그렇게 낙천적인 웃음이 가능한 것인가 되묻는 것이다. 그러니 1연에서 '웃으세요'는 '(내가 보니 당신은) 웃으시는군요!'이거나 '웃으시는 거예요?'인 것이다.
잃어버린 많은 노래들 중에 한 자리 차지하는 복음성가, 내게 귀를 울리고 이내 마음을 울리는 복된 소리여야 해서 그걸 다시 노래로 엄숙하게 예배의 의식으로 부르는 게 이상해 보이는 복음성가, 복음이 마음으로부터 울려나와 곡조를 갖게 된 것이 아니라 자기암시를 강하게 걸어 간절하게 염원하며 불렀어야 했으니 어울리지 않는 복음성가, 그중에 그다지 평화롭지도 않으면서 간신히 흐르는 물길 같은 평온이라도 찾으려 불렀던 이 노래, 복음성가였던 것일까, 'We shall overcome'보다 더 긴장되고 맹목이었던 이 노래, 부흥회 분위기와 어울렸던 이 노래, 대학에 들어가면서 더 이상 부르지 않게 된 이 노래, '님을 위한 행진곡'이 가져다 준 평화, 강 같은 평화 넘치네. (2019.02)
아무래도 책이 나온 지 오래 되니 개정의 필요성이 커졌다. 방법이라는 이름을 붙였던 것은 단지 수업 기술을 정리하기 위함이 아니라 수업의 관점과 원칙을 정립하고자 한 목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방법론'에 더 가깝다. 그런데 이 방법론의 준거가 되는 '접근(approach)'이 개념적으로 불분명하게 다루어지고(실제로는 다루어지지 않고) '모형'이라는 용어가 대신 무차별적으로 사용되어 기술 층위에서 혼란이 막대해졌다. 이것을 바로잡고 또한 외국 이론의 수입이라는 원죄 아닌 특수 환경을 정당하게 반영하고 보완하기 위해 새로운 내용 조직과 용어 선택이 필요해졌다. 연구물로서의 성격을 분명히 하는 동시에 교재로서의 성격도 유지되어야 하기에 다음과 같은 검토 사항을 먼저 기록해 둔다. 1. 공동 오리엔테..
융합교육의 유형 1) 일반 교육 : 교과간 융합, 공통 수업, 공통 주제, 일반 목표, 범교과적 관심사 2) 통합 교육 : 교과간 융합, 교과내 융합, 공통 주제, (통합된) 교과 목표, 통합교과적 관심사 (사범교육에서 중등교육으로 교수학적 변환이 적용되는 분야) 3) 주제 중심 교육 : 통합 교육, 교과내 융합, 홀리스틱 교육 융합교육의 방법 1) co-teaching (+parallel teaching) 2) team teaching (+station teaching) 3) alternative teaching (현장교사 멘토링) 4) associative learning (다양한 협동학습) 5) backward design learning 교육적 원리 1) 보편적 지식 2) 교수학적 변환 3) 학습..
강의를 모두 끝냈다 내게 또 다른 4시간, 또는 24시간이 생기지 않았다 과제를 내어 주고 과제물을 받았다 한 장 한 장이 숙제처럼 도무지 넘어가지 않았다 미뤄 두었던 상담 계획을 다시 세우기도 전에 학생들이 집으로 돌아갔다 미뤄 두었던 논문들을 진행하기도 전에 학술대회 발표의 기억들이 사라지고 있었다 새벽은 어제와 다름없이 흰 벽지만큼 밝고 그 틈에 더위가 장마와 함께 밀려왔다 나는 며칠 입은 후줄근한 바지를 다시 입고 샌들을 신고 점심 때 가까이 되어 출근했다 그것이 나의 소심한 반항이었고, 연달아 세 번의 회의가 무관심한 관심의 표정으로 나의 외모를 관조했다 (2018.06.27.)
이 한 장으로 2018년 러시아 월드컵 6월 25일의 상황이 다 설명된다고 한다. 클리앙(http://clien.net)에서 2차 인용했다. 그림을 보니, 한 눈에 알아보겠다. 원 속의 원은 월드컵 우승에 가까워지는 상황임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본선 무대라 할 만한 섬 안에서 해골 표시는 이미 탈락이 확정되었음을 뜻하고 한국은 우승권에서 꽤 떨어진 지역에서 아웅다웅. 여기까지는 지도와 도형들의 배치에서 짐작 가능한 의미이고.... 이제 그 다음이 관심사이다. 이 지도는 라는 게임에 등장하는 지도이다. 게임을 해 본 적은 없지만 눈동냥으로 게임이 진행되면서 전장은 이동하며 좁혀지는 상황을 만든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혼자 전장에서 낙오하여 숨어 있다가는 십중팔구 죽게 되어 있다.(간혹 운이 좋아 최후..
학생은 불완전한 존재가 아니다. 모든 사람은 불완전하다는 의미에서 학생의 불완전성을 말하는 것이라면 모르겠으되, '학생'이라는 존재 조건으로 인해 불완전한 것은 아니다. 학생은 존재 조건이라는 측면에서는 차라리 완전한 존재라는 것이 좀 더 설득력 있는 규정이라 하겠다. 바로 그 성격이 역설적이게도 교육을 필요로 하게 하는 것이다. 사람은 성장하며 그 성장은 현재의 결핍을 충족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의 결핍을 대비하는 것으로서의 지향성을 갖는다. 매순간 사람은 그 삶의 조건에 충족되도록 적응하며 대개 그것에 성공한다. 학생이라 불리는 특정 연령대의 아동들은, 말하자면 성공적으로 아동기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아동을 불완전한 존재로서 규정하는 것은, 명백히 불공정한 것이다. 그들을 성인과 직접 비교..